극소수만이 작품가치 이해
화가·화상이 가격 좌지우지

큐레이터·미술전문기자 등
대중-작품 매개자역 중요

1990년 8천250만 달러 경매가를 기록한 빈센트 반 고흐 (Le Docteur Paul Gachet), 1829-1909년
1990년 8천250만 달러 경매가를 기록한 빈센트 반 고흐 (Le Docteur Paul Gachet), 1829-1909년 ⓒ게티이미지

미술과 경제학. 가장 감성적인 활동과 가장 이성적인 학문의 조합은 매우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익숙한 대상을 색다르게 볼 때, 우리는 새로운 생각과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경제학자의 시선으로, 때론 작가의 눈으로 예술과 경제 원리를 마주할 때 우리는 한 차원 다른 예술적 안목을 갖추게 된다.

 

죽음과 작품의 잔혹 공식

지금 이 작품을 사두시면 좋을 겁니다. 곧 가격이 오를 테니까요. 화백님이 요즘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시거든요.”

가끔 갤러리나 아트페어에서 원로 화가들의 작품을 관람할 때면 간혹 이런 얘기를 들을 때가 있다. 이 말은 작가가 세상을 떠나면 작품 값이 뛸 것이라는 말일 테다. 미술시장에서 통상 작가가 작고하면 작품 값이 오른다는 말은 정설로 받아드려진다. 더 이상 작업을 할 수 없으니 미술시장에서 그 작가의 작품은 당연히 공급이 중단되지만, 소비자들은 고인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오히려 소장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지게 된다. 이는 시장에서 해당 화가의 작품 수요 증가로 이어져 미술시장에서 작품의 희소성은 커지고 값이 오르게 된다.

 

순수 독점생산자 시장

미술시장은 미술작품을 생산하는 창작자와 그것을 즐기며 향유하는 소비자로 구성된다. 미술시장에서 재화를 공급하는 생산자는 예술가들이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한 화가가 생산한 예술작품은 다른 어떤 화가들도 공급할 수 없는 유일의 가치가 있다는 점과 당사자만이 자신의 작품을 미술시장에 공급하는 유일한 생산자라는 점에서 순수 독점생산자(pure monopolist)라고 할 수 있다.

화가가 작고하면 그 작품 공급 또한 중단되고 만다는 점에서 미술작품은 독특한 생산품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예술가가 창조한 작품은 그 자체로 시장에서 유일한 것이다. 세계와 역사가 인정한 작가들일수록 그 유일성이 인정받는다.

다른 예술 장르인 음악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같은 전설적인 피아니스트의 독주회는 그가 세상을 떠나는 즉시 공연시장에서 사라져 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이들 예술가들은 그들이 공급하는 재화나 서비스에 대해 독점적인 지위를 갖는 생산자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예술품도 다른 재화나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그 경제적 가치가 수요와 공급에 따른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장의 상황은 수요자들의 취향과 유행의 추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경기변동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경제가 성장기이거나 반대로 불황에 빠지게 되면 미술시장은 경기변동에 따라 부침을 겪게 된다. 우리나라 미술시장도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직격탄을 맞은 것처럼 말이다.

빈센트 반 고흐(이하, 고흐)의 그림은 이 경제 원리를 잘 설명해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인상파 화가의 상징적 인물로 꼽히는 고흐의 작품들은 1980~1990년대에 세계경매시장에서 최고가를 경신한 바 있다. 고흐 그림의 주요 고객은 단연 일본 기업가들이었는데 이들의 수요로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 값이 덩달아 폭등하게 됐다. 당시 일본경제는 유례없는 최고의 호황을 구가하던 시절이었다. 19905월 일본의 거품 경제가 한창일 당시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고흐의 작품 <폴 가셰 박사> 초상이 8250만 달러에 팔렸다. 낙찰자는 일본의 굴지의 제지회사 회장이었다. 이것은 고흐가 죽은 지 꼭 100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그의 그림들, 가령 <붓꽃>이나 <해바라기> 같은 작품들이 미술 경매시장에서 7~8000만 달러의 값에 팔린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고흐가 생존 당시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정도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크리스트, 소더비 같은 경매장에서 1억 달러가 넘는 금액으로 팔린 그림들도 꽤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부인의 초상>과 잭슨 폴록의 <No.5>와 같은 작품은 당시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2015년에는 파카소의 <알제리의 여인들>18천만 달러로 최고가였으나, 201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 나온 <살바토르 문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으로 판명되면서 순식간에 45천만 달러에 팔렸다.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단색화 열풍에 힘입어 김환기의 푸른색 점화(點畵)<고요>65억 원에 팔리는 등 그의 그림들이 2015년 이후 최고가를 기록하면서 기존 국내 작품 최고가였던 박수근 작품 <빨래터>46억 원 경매가를 경신했다.

 

2017년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를 경신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Salvator Mundi), 1500년경 추정
2017년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를 경신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Salvator Mundi), 1500년경 추정 ⓒLouvre Abu Dhabi

공급·수요·창의성의 삼위일체

보통 재화시장에서는 가격이 오르면 생산자들이 시장에 공급량을 늘리게 된다. 늘어난 공급량은 가격이 계속 오르는 것을 제어한다. 반면 순수 독점생산자 체계의 미술시장에서는 특정 그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시장에서 수요가 증가하더라도 반드시 공급량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특히 타계한 유명 화가들의 그림은 공급 중단과 초과 수요의 압박이 맞물려 시장에서 폭발적인 가격 상승을 초래하게 된다.

미술시장에서 그림이 고가일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질(quality)적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재화시장의 사례를 빗대 가령 냉장고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소비자들은 상품 품질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으며 그 사용가치나 효용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예술품은 다르다. 생산과정에서 작품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투입(投入) 요소인 예술가의 창의성이 필수적으로 들어가 이것이 곧 작품의 본원적 가치(intrinsic value)를 창출한다. 수요자 들은 일반 재화시장 상품과 달리 예술가의 고유한 창의성을 인식하는 데 필요한 정보나 지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예술작품의 본원적 가치를 이해하기 어렵다.

이러한 미술시장의 구조에서는 공급자, 즉 그림 생산자인 화가가 가격 결정에 어느 정도 독점력을 갖게 된다. 이러한 독점력은 소비자들이 그림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부족할수록 더욱 힘을 얻는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미술시장은 구조적으로 예술품 창조자와 향유자들의 재화 가치에 관한 정보에 있어 비대칭성(非對稱性)이 존재하는 시장이라 할 수 있다. , 작품을 잘 해석하고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은 생산자 본인을 포함해 작가 주변의 소수의 사람, 특정 전문가에 한정되며 일반 대중 소비자들은 그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미술시장에서 가격 결정은 대개 화가나 화상(畵商)이 매기는 호가(呼價)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작품의 내재적 가치를 잘 모른 채 비싼 가격을 지불하는 소비자들도 적지 않다.

 

미술시장 거품 만드는 정보 비대칭성

시장 참여자들 중 한 쪽이 정보가 부족한 비대칭적 시장 구조에 관한 연구는 1970년대 애컬롭(George Akerlof) 교수가 고안한 레몬 시장(Market for Lemmons) 이론에 기초하고 있다. 그는 중고차 시장을 모델로 삼아 정보가 비대칭적으로 존재하는 시장을 분석했다. 중고차 시장은 판매자와 소비자 간에 차에 관한 정보가 불공평하게 편재돼 있다. , 판매자가 자신이 알고 있는 중고차의 결함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손해를 입게 되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지배하는 시장이다.

애컬롭 교수의 이론은 곧바로 미술시장에도 적용될 수 있다. 화가 이중섭의 작품들에 관한 위작 논란이나 최근 이슈가 된 여러 유명 작가들의 위작 감정 파문도 이러한 레몬 시장의 특징을 가진 미술시장에서 생긴 시장실패 사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작품 가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전달해주는 객관적인 전달자나 매개자가 예술시장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예술품 진가를 대중들에게 시그널해주는 매개자가 있으면 시장 기능은 원활해지고 소비자들은 거래에 있어 손해를 보지 않게 될 것이다. 미술시장에서 큐레이터나 미술평론가 또는 미술전문기자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21세기 들어선 2006년 당시 최고 경매가를 기록한 잭슨 폴록 (No.5), 1948년
21세기 들어선 2006년 당시 최고 경매가를 기록한 잭슨 폴록 (No.5), 1948년 ⓒ게티이미지

가장 가치 있는 경제코드, 남다른 안목

예술작품의 가치를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생산자 자신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이 생산된 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인정받고 시장가치를 지니게 된 경우가 많다. 물론 영영 일반 대중이나 시장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사장(死藏)되는 경우도 있지만 후대에 남는 걸작은 언젠가는 안목 있는 누군가를 통해 빛을 보게 된다.

그림에 대해 문외한인 이들도 고흐 이름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된 데에는 단 한 명의 조력자의 힘이 컸다. 동생 테오다. 고흐가 생을 마감하기 5개월 전 400프랑(요즘 가치로 약 100만 원)에 팔린 유일한 그림 <붉은 포도밭>마저도 본인이 아닌 동생 테오가 화상을 통해서 판 것이다. 고흐 회고전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15년이 지난 1905년에 암스테르담에서 처음 열렸는데 그때서야 고흐의 작품이 제대로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고흐의 동생 테오의 끈질긴 노력이 없었다면 그의 작품들은 훼손됐거나 사장된 채 빛을 보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예술품 진가를 대중들에게 시그널해주는 매개자가 있으면 시장 기능은 원활해지고 소비자들은 거래에 있어 손해를 보지 않게 될 것이다. 미술시장에서 큐레이터나 미술평론가 또는 미술전문기자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 editor 이혜영·자료제공 한국메세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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