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에는 산 이름그대로 오대(五臺)가 있다. 동대, 서대, 남대, 북대, 중대가 그것이다. 관광객들은 월정사를 거쳐 상원사를 경유하는 코스를 일반적으로 삼는다.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갈 사람들은 상원사~명계리로 이어지는 길목에 만나는 북대사까지만 기억한다. 하지만 각 산자락에는 고찰들이 하나씩 숨어 있다. 동대엔 관음암이 남대 쪽엔 지장암이 있다. 서대에는 염불암이 있고 북쪽엔 미륵암이 있다. 가운데인 중대에는 중대사와 적멸보궁이 있다. 그 외에 조선실록 사고지가 있고 그 위에 사명대사가 잠시 머물던 ‘영감란야’(蘭若 : 범어로 ‘절집’을 의미함)가 있다.

그중에서 아직까지 사람 손길이 미처 못 미친 곳이 서대 염불암이다. 중대사 위에 자리한 적멸보궁은 기도처로 널리 알려져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든다.
염불암은 사람들이 오는 것을 꺼리는 듯 팻말조차 하나 없다. 인근 사람들도 염불암이라는 이름보다는 우통수에 더 익숙해 있다.
초입 산길은 다소 가파르다. 고갯길을 넘어서면 산죽길이 나오면서 오르막, 내리막을 거듭하면서 1시간여정도 오르면 된다. 습지대인 듯 고비와 죽은 나무 등거리에는 파란 이끼가 많이 생겨났다. 작은 물줄기 소리가 나면서 작은 표주박이 하나 놓여 있다. 등산객이 갖다 놓은 것이리라. 바위 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물은 무척 차서 마치 자연 용출수를 마시는 듯하다. 물통에 물을 채워도 금방 냉장고에서 꺼낸 것처럼 하얀 연기가 솟는다.
이곳에서 고갯능선까지는 길지 않다. 능선을 오르면 이내 편안한 숲길이 나서는데 하늘을 향해 뻗어 내린 전나무와 소나무가 오랜 세월을 느끼게 해준다. 숲길이 편해지면서 평평한 공간에 우통수가 나온다.
예부터 한강의 발원지라 생각했던 곳이다. 지금은 한강의 발원지를 태백의 검룡소로 꼽고 있어서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우통수(于筒水)는 샘물을 조선시대 한양 사람들이 ‘한중수’라 해 다른 물보다 세 배나 비싸게 쳤다고 한다. 신증 동국여지승람에는 “오대산 서대 밑에 솟아나는 샘물이 있는데, 곧 한강의 근원이다…. 이는 물 빛깔과 맛이 다른 물 보다 다르고 다른 물보다 무게가 많이 나간다고 적혀 있다. 그래서 다른 물과 섞이지 않는다고 한다. 가장 깊은 곳에 나가 긷는 한중수는 강가에서 대충 퍼 올린 물보다 값이 3배나 비쌌다고 한다.
또 신라 신문왕(재위 681~692)의 두 아들 효명과 보천이 여기에 와서, 세속의 모든 욕심을 잊고 평생을 살아가리라 다짐했는데 이 물로 차를 끓여 바치고 정성을 다했다고 한다. 나중에 효명은 왕실로 돌아가 효소왕(재위 692~702)이 됐다.
그러나 보천은 오대산에서 50여 년을 더 살았다. 그는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어쨌든 말끔하게 정돈된 약수터 주변으로 주황색 동자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있다. 물줄기는 흘러나오는 데 나가는 곳은 알 수 없다. 기대를 안고 뚜껑을 열고 물맛을 본다.
웬걸, 산행 길에서 마신 물보다 온도가 높다. 아마 위치 탓에 물 기운이 틀려진 듯하다.
이미 사진 속에서 보았던 운치 있는 옛 화전민들의 가옥인 너와집. 이곳에 사는 스님이야 불편하기 짝이 없는 집이지만 절집이 오래된 화전민이 살던 너와집이라는 것부터가 가슴을 설레게 한다. 염불암은 삼국유사에서는 미타방 또는 수정사(水精寺)라 한 고찰이었다고 한다.
켜켜이 잘 쌓아올린 통나무 서까래 밑에 서대 염불암(念佛庵)이라는 조촐한 현판이 있고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로 작은 풍경이 걸려 있다. 절집 앞은 시원하게 트여 있고 스님이 먹을 수 있는 고추, 상추, 아욱 등이 작은 텃밭에 심겨져 있다. 마침 스님 한분을 만나게 된다. 간혹 자리를 비울 때도 있지만 하안거, 동안거 등 수행 기간에는 절집을 떠나지 않는다. 쌀이 떨어지면 모체인 상원사에서 필요한 것을 가져오면 된단다. 그래서 아직까지 한번도 헬기가 떠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차량 통행이 불가능한 고찰을 들러보았어도 헬기가 한번도 뜨지 않은 곳은 이곳뿐이 아닌가 한다.
그는 이 절집 주춧돌을 가리키며 신라 때의 것이라고 한다. 보편적으로 스님들이 거하는 기간이 6개월인데 교체자가 아직 없어서 1년이 다 됐다고 한다. 이제 이 절집을 허물고 새로 지어야 하지 않겠는가 한다. 국내에 너와집 형태의 절집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화전민이 살던 문화재가치가 있는 곳은 필자가 아는 상식으로는 단 하나뿐이지 않는가. 그래서 기를 쓰고 염불암에 오르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염불암에 오르기 전에 들었던 정보로는 이곳에 뱀이 많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올라가는 내내 뱀에 대한 공포는 시들지 않았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 말은 어김없이 나왔다. 이곳에 뱀이 많은 이유를 설명해주기도 하면서 숲속에 들어가지 말라는 조언까지. 사람들은 늘 자기 기준으로 느끼고 판단하면서 살아간다. 수행자의 마음을 어찌 속가인이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저 뱀과 생활하는 것이 일상이라는 스님의 말을 듣고서도 내내 얼마나 무서울까, 이 산꼭대기에서 세우는 밤은 얼마나 고달플까 하는 생각뿐이니.
하산하는 길에 지금까지 한번도 채취하지 못한 삼지구엽초를 두어 개를 발견했으니 이것만으로도 기쁜 여행길이 아니겠는가. 초가을이면 느타리버섯이 많이 생겨난다는 이곳. 지금 봇짐을 챙겨 한걸음에 달려가 보면 어떨는지.
■자가운전 ; 영동고속도로~진부 나들목~6번국도 따라 가면 월정삼거리. 삼거리에서 강릉 쪽으로 가다가 직진하면 월정사 매표소. 주차장에서 상원암을 지나 중대로 잇는 차가 다닐 수 있는 찻길을 따라 걷다보면 벽돌 보도가 끝이 나고 다리가 나오면서 비포장이다. 그리고 적멸보궁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는데 그 옆을 잘 살피면 산행길이 나선다.
■별미집과 숙박 : 필자는 진부에 가면 감미옥(033-335-6337)에서 올갱이 해장국을 먹는다. 오대산 월정지구에서는 괜찮은 산채집이 많지만 주로 비로봉식당(033-332-6597)을 찾게 된다. 늘 맛있다는 생각을 하는 곳이다.
숙박은 오대산호텔(033-330-5000)이 시설이 빼어나다. 혹은 진부읍내의 서림호텔을 이용하기도 하는데 시설은 오래돼 무척 낙후돼 있지만 숙박 후에는 목욕이 무료다. 시설은 미흡하지만 냉탕 물이 무척 시원하다.

◇사진설명 : 염불암은 사람들이 오는 것을 꺼리는 듯 팻말조차 하나 없다. 인근 사람들도 ‘염불암’이라는 이름보다는 ‘우통수’에 더 익숙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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