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진주간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모습을 감추고 있던 관광지에 사람들이 찾아든다. 첩첩 오지로 지리산자락에 꼭꼭 숨겨져 있던 산청에도 도로 덕분인지 조금씩 변모를 하고 있다. 산청 시천에서 청학동 청암으로 이어지는 도로도 개통되면서 천왕봉을 첩경으로 오른다는 중산리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고 있다. 지리산 등반객들은 하염없이 이어진다. 이 산은 늘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힘겹지만 그들은 산속에서 받는 표현할 수 없는 느낌에 빠져드는 것이리라. 벼르고 벼르던 지리산 1500고지에 자리하고 있는 법계사. 절집을 목적으로 한발 한발 지리산속에 발길을 옮겨본다.

지리산 중산리 매표소 근처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리산을 찾아 오르내리고 있다. 그 이유는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1,915m)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고 오를 수 있다는 지리적 상황 때문일 것이다.
깎아지를 듯한 산 중턱에 자리한 매표소에서 산행을 시작해야 한다. 두류동 자연학습원까지는 포장길이 이어지고 이내 차량 통행은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국립공원이라서 이곳까지 차량을 운행하는 것도 쉽지 않다.
법계사(055-973-1450)의 허락이 있으면 가능하다는 것을 참조하면 된다. 천천히 산속으로 발길을 옮기면 곳곳에 빨치산이 거하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흔적들이 나온다. 이곳 뿐 아니라 지리산 어느 곳에서나 빨치산에 대한 이야기는 곳곳에서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6. 25전쟁 후에 북으로 후퇴하지 못한 잔류병인 남부군의 투쟁근거지였었다. 이들과 국군과의 싸움은 너무나 처절한 것이었다. 영화나 소설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그때를 기억하면서 색깔이야 어떠하든 한 인간으로써 이 첩첩한 산속에서 무엇을 먹고 견뎌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산길은 초입에는 오르막 내리막을 거듭하다가 이내 한없이 올라가야 하는 돌길이 이어진다. 곳곳에 잠시 지친 발을 식혀줄 계곡이 있어서 다행이다. 시원한 계곡에 잠시 흘린 땀을 씻고 2.4km를 오르면서 많은 등산객들과 마주친다. 산행 길에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 인사를 하면서 서로에게 힘을 북돋아 준다.
법계사 절집을 바로 앞두고 로타리 산장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간단히 요기를 할 수 있는 라면과 과자를 팔고 등산에 필요한 물건들을 판다. 몇 박을 걸었음직한 산행객들은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밥을 먹기도 한다. 비닐봉지에 넣어 온 밥과 코펠에 끓여낸 라면과 김치 한 조각만 있으면 허기진 배가 행복해지는 시간이다.
산장을 벗어나면 식수대가 나오고 이내 천왕봉과 법계사로 길이 갈라진다. 이곳에서 천왕봉까지는 2km 정도. 보편적으로 이곳까지 오르는 사람들은 천왕봉에 오르는 것에 목적을 둔다. 하지만 이미 지친 발은 더 이상 한발자욱도 뗄 수가 없다. 절집 안으로 들어선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법계사(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절집은 예상했던 것보다 건물이 많다. 이곳까지 헬기로 모든 것은 수송해야 왔을 터.
법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다. 지리산 천왕봉 남쪽 중턱, 해발 1,450m에 위치하고 있다. 544년 연기조사가 창건했고, 1405년 정심선사가 중창했다. 그 뒤부터 수도처로 알려져 고승들을 많이 배출했다. 6·25전쟁 때 불에 탔지만 워낙 높은 곳에 있어 재건을 못하고 토굴로 명맥을 이어오다 최근에야 법당이 세워졌다고 한다. 지리산 7대 사찰로 꼽히며 사찰 뒤로 암봉과 문창대가 보인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는 적멸보궁. 건물 뒤쪽으로는 수백 명이 앉을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암석이 턱 버티고 있다. 암석 위에는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법계사 삼층석탑(보물 제473호)이 세워져 있다. 이 석탑은 부처님 진신 사리가 봉안된 탑.
법계사를 제대로 보려면 석탑과 산신각쪽 돌계단을 타고 올라야 한다. 산신각에는 할머니 산신이 모셔져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 산신각을 내려가면 약수가 있고 그 옆으로 극락전도 있다. 이곳에서 훤하게 트인 지리산 자락을 한눈에 내려다보면 금세 시원해진다.
이른 아침 6시에 출발해 도착했다는 어르신 세분. 설악산 봉정암도 여러 번 갔다 왔다는 노보살은 살아생전 다 봐야 한다면서 천왕봉 산행을 계획하고 있다. 살아생전 어찌 다 볼 수 있을까? 그저 인연 닿아 볼 수 있으면 좋은 것. 하지만 그런 마음이 있다면 삶이 훨씬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런지. 보편적으로 2박3일 일정으로 지리산 종주를 기획하는 사람들이나 지리산을 수도 없이 찾아다니는 마니아들에 비할 수는 없지만 잠시 그 속에 발길을 내 디뎠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여행이었다. 잠시 잡고 있는 일손을 놓고 영산 지리산으로 발걸음을 돌려보는 것은 어떨는지?
돌아 나오는 길에는 비구니 사찰인 대원사와 계곡이 아름다운 내원사 등지를 연계하면 좋다.
■자가운전 : 대전~진주간 고속도로~단성나들목으로 나서서 20번 지방도 따라 시천팻말따라 가면 된다. 시천에서 청암쪽으로 가다보면 중산리 팻말이 나선다.
■별미집과 숙박 : 중산리 지구에는 많은 토속음식점이 있다.
중산리 지구 가는 길목에 산청 양수발전소를 만나게 되는데 그 안쪽에 들어가 있는 지리산 황토찜질방 민박(055-973-9044)은 가정집같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숙박을 이용할 수 있다. 약간 더운 것이 흠이지만 황토 방에서 하룻밤을 유하면 건강에는 매우 유익하다. 저렴한 가격으로 내놓는 식사도 있는데 음식 맛은 기대치 이상으로 맛깔스럽다.
중산리 매표소 앞에 있는 여럿 토속음식점 중에서 산꾼의 집(055-972-1212)의 비빔밥이 아침 요깃거리로 괜찮다.

◇사진설명 : 법계사는 6·25전쟁 때 불에 탔지만 워낙 높은 곳에 있어 재건을 못하고 토굴로 명맥을 이어오다 최근에야 법당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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