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인내를 실험하기 위함인가? 늦더위는 도심이나 산속에서도 모두를 지치게 한다. 심지어 나무들도, 식물들도 무더위에 지쳐 고개를 숙이고 하루를 견뎌내고 있다. 떠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현실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을 수 있는 섬진강변. 거대한 지리산 산능선이를 지주로 삼고 있는 이곳에 긴 휴가의 여정을 잡아 떠나보자.

섬진강변은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행지로 꼽힌다. 이른 봄 매실 꽃부터 시작해 벚꽃 그리고 여름이면 시원한 계곡, 가을 단풍과 연이어진다. 한번은 가보고 싶은 여행지지만 쉽게 발길을 옮기기 어려운 곳. 하동 읍에서 구례로 이어지는 국도를 따라 잠시 그곳에 숨겨진 여행지를 들러보는 것도 이번 여름에 의미가 있는 일이다.
하동읍내에서 쌍계사로 가는 길목에 잠시 들러볼 곳이 악양면 평사리 마을이다. 이곳은 박경리 소설의 주무대로 오래전부터 알려진 곳. 그저 평범한 시골마을이 지금은 완전히 변신했다. 오래전 잠시 들렀던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변신한 마을에 감탄할 듯. 마을은 드라마 장소는 물론이고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 마을을 테마관광지로 변신시켰다. 하동군에서는 지난 98년부터 시작해 2001년이 되어서야 마무리 했다.
8월부터는 입장료를 받고 있다. 마을 빈집은 초가를 입혀서 옛 모습을 재현해 놓았지만 날림 세트장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여름이어서 인지 마당 화단에 피어난 꽃들과 열매들이 마치 사람이 사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무엇보다 최 참판 댁에 들르면 깜짝 놀랄 지경으로 잘도 집을 만들었다.
소설 속에서 나왔음직한 완벽한 한옥이다. 안채, 사랑채, 별당채, 사당, 중문채, 뒤채를 비롯하여 한옥 10여동을 보면 과연 최 참판 댁이 이랬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지만 소설속 내용을 충실하게 만들었음직하다. 워낙 복원을 잘 해 놓아 문화재 자료로도 손색이 없다. 최 참판 댁을 등지고 서면 평사리의 넓은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많은 땅이 최 참판의 땅이었음을 짐작하기에는 어렵지 않다.
이 곳을 들르면서 토지의 내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며 궁금증을 더하게 한다. 마을에는 한산사라는 절집과 고소성(사적 151호)도 있다.
이곳을 벗어나 하동 여행의 대명사로 일컫는 화개로 발길을 돌린다. 화개에는 유명한 쌍계사와 칠불암 등 고찰이 있다. 그리고 기암이 어우러진 맑디맑은 화개계곡, 의신계곡 등이 이어진다. 어디서나 물놀이가 가능하다.
특히 의신계곡이 아름다우나 입장료를 받고 있다. 용화정사에서 삼정마을 가는 길은 도로공사가 한창이어서 차량 통행이 불가능함을 참조함이 좋을 듯. 이곳에서 꼭 찾아볼 곳이 불일폭포다. 지리산 10경의 하나로 손꼽는 불일폭포. 폭포는 이 곳의 천년고찰 쌍계사를 통해야만 가능하다.
입장료와 문화재 관람료까지 가세해 입장료가 비싼 것이 흠이지만 이곳까지 들러 불일폭포 산행은 한번쯤 시도해봄직하다. 쌍계사 절집 뒤로 난 산길을 따라 아주 느린 걸음으로 1시간40분정도 오르면 된다.
가는 길은 울창한 숲이 가려 따가운 햇살을 막아주고 아름답지는 않지만 간간히 계곡을 만나게 되어서 잠시 더위를 식히면서 올라가면 된다. 한없이 올라가야 하는 2.4km가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이열치열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어느새 홍조 띤 얼굴은 생기가 솟는다. 중간 즈음에는 최치원이 학을 타고 올라왔다는 바위 하나를 만나게 된다. 환학대다. 그저 큰 바위이고 전설이지만 왠지 웃음이 나온다. 숨 가쁘게 고갯길을 오르면 자그마한 주막(?)이 나온다. 봉명산방이라는 산 할아버지가 거하는 집이다. 그저 오가는 등산객들은 편하게 물도 마시고 쉬기도 하는 장소다.
30년이 넘게 이곳에 터를 잡았다는 할아버지가 만든 불로주나 감자전을 안주삼아 술 한 잔으로 피로를 풀어도 좋다. 원래 이곳이 청학동 터였다고 한다. 해발 600고지 즈음이어서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이곳에서 불일폭포까지는 300여m만 가면 된다. 여름철 물이 불어나면 장관인 폭포. 불일폭포는 청학봉과 백학봉 사이 계곡의 60m쯤 높이에서 떨어지는 2단 폭포인데 떨어지는 여름이면 물소리가 계곡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며 이 일대 장관을 연출한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최근에 전망대를 만들어서 땀방울을 식힐 수 있는 물줄기가 있는 곳까지 갈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다. 지리산 종주는 하지 못했지만 이곳까지 트레킹을 하는 것만으로도 산의 정기는 한껏 맡은 것. 일상의 피곤한 몸은 흠씬 땀방울로 어느새 개운해짐을 느낄 수 있다.

■자가운전 : 호남고속도로 전주IC~전주, 남원방면 17번 국도~남원 19번 국도~구례읍-구례 서시교에서 하동방면 19번 국도~연곡사 입구, 1023번 지방도~쌍계사/무주~진주간 고속도로~단성나들목에서 하동쪽으로 들어오거나 시천에서 청암을 거쳐 하동읍내로 들어와도 좋다.

■별미집과 숙박 : 재첩국과 매운탕 등을 파는 음식점이 즐비하다. 여름철 별미인 은어회가 있지만 거의 양식산이라는 것을 참조해야 할 듯. 또 지리산에서 채취한 녹차를 파는 곳도 많다. 원하는 곳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즐기면 등산의 피로가 싹 가신다. 쌍계수석원식당(055-883-1716)은 돌솔밥이 전문이다. 하동읍내에 있는 여여식당(如如 055-884-0080)이 괜찮다. 이 집은 매입 가격에 상관없이 사계절 섬진강 물고기만을 고집한다. 화개, 하동, 강변 등에 숙박할 곳은 여럿 있다.

◇사진설명 : 박경리 소설 ‘土地’의 주 무대로 알려진 평사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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