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장소의 여행지라도 찾아가는 시점과 눈여겨 보는 것에 따라 새롭게 다가선다. 조금만 더 움직이면 새로운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모처럼 괴산 쌍곡계곡의 쌍곡폭포와 대야산 용추폭포를 들른 후에 화북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화북은 상주시지만 괴산과 문경에 인접해 있다. 일교차가 커서 포도의 당도가 높은 곳이라서 초가을 여행지로 참 좋은 곳이지만 골골히 맑은 계류가 흐르고 있어서 여름철에도 손색이 없다. 작열하는 햇빛에 몸이 지쳐간다. 시원한 곳에서 잠시 쉬었다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찾은 곳이 장각폭포다.
장각폭포는 위치가 희한하다. 웬만한 폭포라면 산길을 한참이라 올라가서야 만날 수 있을 텐데 주변은 온통 포도밭과 논뿐인 곳에서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폭포가 형성돼 흐르고 있다. 폭포 밑으로는 나무가 없어서 뜨겁지만 위에 금란정이라는 정자와 소나무가 있어서 시원하다. 정자 위에 앉아 있으니 여름이 무색할 정도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댄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먹었던 달디 단 포도 생각이 간절하다. 시원한 바람을 쐬고 자리를 뜨려는데 여학생들이 수박과 튜브를 들고 걸어 들어온다. 그들은 이내 연못으로 들어가 수영을 즐긴다. 같이 합류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들을 뒤로하고 쌍룡계곡으로 발길을 옮긴다.
화북에서 문경 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도로변 옆으로 쌍용계곡(문경시 농암면 내서리) 물줄기가 이어진다. 계곡은 도로변에 있어서 햇살을 가려주지 못한다. 간간이 다슬기 잡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심원사를 찾는 일. 도장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안내표지판을 보니 무척 애매하게 만들어 두었다.
무엇보다 현 위치에 대한 표시가 없으니 어쩌란 말인가. 장비를 챙기고 계곡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 보니 웬걸, 쌍룡계곡의 아름다운 절경이 펼쳐진다. 전에 봤던 계곡은 새발의 피다.
수십 길 높이의 암벽과 집채만한 바위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물놀이를 즐길 수 있을 충분한 물이 바위 사이로 흐르고 있다. 계곡 주변에는 모래사장이며 물속에서는 다슬기도 지천이다. 이 아름다운 풍광을 깨지 않으려고 쌍룡터널을 만들었다는 말이 실감난다.
도장산 등산로를 따라 심원사(054-534-7545)를 찾아간다. 울창한 숲길에 굵은 돌이 깔려 있다. 초입은 다소 가파라 숨이 가쁘지만 이내 능선길이 이어진다. 숲이 우거져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어 금새 땀이 식는다. 표시가 끊어지면 전깃줄을 기점으로 길을 찾는다. 가는 중간에 목을 축일 수 있는 약수터(?) 옆에 바가지가 있다. 물맛은 매우 시원하다. 조금 더 올라가다 보니 계곡 옆으로 폭포가 있다. 이끼가 껴 있고 그늘이 많아져 매우 음습해 보인다. 게다가 깎아지른 듯한 산길을 내려가야만 되니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다.
그렇게 30여 분 정도 걸으니 등산로와 절집 가는 길로 나뉜다. 심원사(문경시 농암면 내서리)는 660년(신라 태종무열왕 7년) 원효대사가 세운 고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창건 당시에는 도장암이라고 하였다. 오래된 고찰이지만 그 연륜을 읽을 수 있는 문화재는 전혀 없다. 판자로 얼키설키 세워놓은 일주문으로 들어서니 공사가 한창이다. 물건을 공수해올 수 있는 찻길이 있느냐고 물어보니 헬기가 아니고서는 등짐을 짊어져야 한단다. 지금처럼 공사자재가 필요한 때가 아니고서는 헬기는 엄두도 못 낼 형편. 본당도 시골집과 같은 형태. 고찰 덕분으로 문화재청 직원들이 와서 산신각만 새로 짓고 있는 것이다.
절집을 지키는 사람은 편안한 인상을 가진 인심 좋은 비구니. 초파일에 신도가 많았느냐고 물어보니 50명 정도였단다. 유명한 설악산의 봉정암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등짐 나르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그래도 이곳이 너무 좋다는 스님의 말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것은 속가인의 ‘분별심’일 것이다. 스님은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배어 있기 때문. 어쨌든 얻어 마신 석간수는 달기만 하다.
돌아나오는 길에 고승 서암이 거했다는 원적사를 찾기로 한다. 워낙 존경받을 만한 스님이었기에 호기심과 기대가 크다. 마을 초입의 부도밭을 지나서 길은 절집까지 포장이 돼 있다. 거의 산꼭대기까지 가파른 길을 포장해 놓은 것이 못내 의아스럽다. 차라리 울창한 숲길을 걷게 하였으면 고생이 되더라도 참으로 아름다울 것 같은 위치다. 절집 앞 주차장으로 커다란 석축이 쌓여 위압감을 준다. 계단을 따라 오르니 수염 기른 스님이 나서서 사진을 못 찍게 한다. “왜요”라고 물었더니 번거롭기 때문이란다. 문경 사불산의 대승사도 선방이다. 아주 많은 스님들이 정진 중이었지만 “공양하고 가라, 사진은 어떻게 찍느냐” 하면서 관심을 보였다.
여기는 그런 곳과 다르단다. 뭐가 다른가? 대승사 스님은 그날 청소하고 밭일하느라 분주했었다. 하루 세 시간 자는 시간도 아까워했었다. 그러나 이곳엔 사람도 없었고 절집도 특별히 할 일도 없는 듯 보였다.
그런데 이런 민감한 반응은 왜 보이는지. 법당에 들어가도 되느냐고 했더니 안 된다는 것이다. 법당에 문안인사 드리는데 왜 안 되느냐고 했더니 그건 된다는 것이다. 차라리 모른 체 했으면 원적사에 대한 이미지는 별반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분별심을 없애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뱅글뱅글 돌지만 속가인은 어쩔 수 없나보다. 머리는 깎으면서 수염은 왜 기르는지부터 시작해서 따져 묻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가운전 : 문경시를 기점으로 한다면 가은을 기억하면 된다. 서울 방면에서는 중부고속도로 이용해 화양동이나 선유동 쪽을 이용하면 된다. 이곳에서 문장대 가는 길인 화북 쪽으로 오다가 쌍용계곡이라는 팻말 따라 가면 된다. 이 길은 가은-문경으로 이어진다.

■별미집과 숙박 : 문장대 주변인 화북면에는 송어회가 일품이다. 대부분 양식장을 겸하고 있으며 직접 기른 야채와 향 진한 들기름 맛이 고소한 양념장이 일미다.
화북문장대회가든(054-533-8934)나 오송횟집 등이 있다. 괴산방면에서 들어오면 만나는 청화산관광농원(054-536-8586)은 쌈정식이 유명하다. 도로변에도 토속음식점이 많다. 민박을 이용하면 된다.

◇사진설명 : 수십길 높이의 암벽과 집채만한 바위가 조화를 이루는 쌍룡계곡은 수량이 충분해 물놀이 즐기기에도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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