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등과 손잡고 블록체인·AI에 올인
‘라이프 블록체인’으로 MS에 도전장

한국인만 쓰는 아래아한글.’ 한글과컴퓨터그룹(한컴)이 서비스하는 국민 워드프로세서다. 하지만 한컴에게 아래아한글 히트작의 이미지는 한동안 너무 강했다. 한컴은 1990년에 창립한 우리나라 1세대 사무용 소프트웨어 전문기업이다.

지금이야 한국이 세계적인 IT강국으로 우뚝 일어섰지만, 1990년만 해도 한국에 IT산업은 매우 낯선 분야였고,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쉽게 점칠 수 없던 시기였다. 한컴은 그렇게 열악한 시기에 한국의 IT산업에서 아주 중요한 한축을 담당하면서 성장했던 것이다. 1990년대 PC가 막 보급되던 당시만 해도 단순한 게임을 하는 것을 빼고는 PC를 자유롭게 활용할 프로그램이 별로 없었던 때다.

그래서 당시 한컴의 워드프로세서와 스프레드 시트 등이 포함된 소프트웨어(SW) 프로그램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컴이 만든 아래아 한글은 한국만의 워드 프로그램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오늘날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대부분이 매일매일 한컴의 아래아 한글 SW를 사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세계 워드프로세서 시장은 마이크로소프트(MS)가 독식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한국만의 자체 워드프로세서를 만드는 한컴이 있었기에 우리의 평소 생활에서도 큰 자부심을 느낄만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 한컴이 SW업체가 아닌 세계적인 첨단 IT기업을 지향하고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블록체인은 인터넷 대체할 뉴트렌드

김상철 한글과컴퓨터그룹 회장은 자사의 블록체인 기술을 세계적이라 자평한다. 그는 블록체인은 인터넷을 대체할 수 있는 뉴트렌드라고 강조했다.

한컴그룹은 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 박람회 ‘CES 2020’에 참가해 블록체인, 인공지능, 로봇, 스마트시티 관련 제품 및 솔루션을 선보였다. 한컴은 3년 연속 CES에 참가 중이다. 한컴은 그룹으로 움직인다. 이번 행사를 통해 한글과컴퓨터, 한컴MDS, 한컴로보틱스, 한컴위드, 한컴모빌리티, 아큐플라이AI 등 여러 그룹사들의 신기술을 한껏 뽐냈다. 또 글로벌 기술 동향을 파악하고,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에 힘썼다.

특히 한컴그룹은 미래 성장동력으로 블록체인 분야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번 CES에서는 출생 등록, 디지털 신분 증명, 학력 및 취업 이력 검증, 의료기록 관리, 디지털 자산 거래 등 블록체인과 접목해 구현 가능한 미래 서비스들을 망라했다. 이른 바 라이프 블록체인모델을 제시했다.

조금 어려운 영역의 이야기일 수 있지만, 한컴의 라이프 블록체인의 핵심은 한컴위드의 블록체인 플랫폼 한컴에스렛저(Hancom SLedger)와 레그테크(Regulation+Technology), 스마트 컨트랙트(Smart Contract) 등 제반 기술에서 나온다. 한컴에스렛저는 프라이빗과 퍼블릭을 함께 담은 하이브리드 형태의 블록체인 플랫폼이다.

김상철 회장은 한컴위드의 블록체인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자신한다. 그는 블록체인하면 코인이나 ICO(암호화폐 발행)를 떠올리지만 블록체인은 인터넷을 대체할 수 있는 뉴트렌드라고 밝혔다.

이어 김 회장은 우리는 라이프 블록체인을 추구하고 있으며, 산업분야뿐만 아니라 금융 쪽 선물 거래나 금, 에너지 거래도 블록체인 접목이 가능하다부동산 거래 역시 블록체인으로 가능해 부동산 중개업도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한컴의 이러한 선언이 조금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들릴 수 있다. 과연 실현 가능한 이야기들인가? 한컴은 글로벌 파트너가 있다. 현재 블록체인 사업과 관련해 중국 텐센트 등과도 논의 중이다. 텐센트는 세계적인 IT기업이다. 세계가 아직 블록체인 걸음마 단계지만, 한컴은 CES라는 행사에서 조금은 앞선 감이 있는 블록체인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기업은 물론 세계적인 기업들 사이에서도 한컴그룹처럼 블록체인 기술을 강조한 전시업체가 없었다.

 

데이터 위·변조방지 플랫폼도 개발

한컴은 블록체인 기술을 수출하려고 한다. 특히 가장 큰 파트너사인 중국 시장을 기반으로 베트남, 미국 쪽이 타겟이다. 이쯤되면 한컴은 도대체 블록체인 기술을 실생활에 어떻게 적용한다는 건지 궁금할 수 있다.

한컴위드는 출생증명, 성적증명, 경력증명, 가족증명서 등 증명이 필요한 모든 부분을 한컴DSB(Digital Safety Box)에 저장한다. 한 번의 등록과정을 거쳐 블록에 올라가면 위변조가 불가능하다. 수정이력이 모두 남는다. 출생에 대한 증명만 갖고 있으면, 여권이나 운전면허증을 대체할 수도 있다. 국내에서도 분산 신원증명(DID)인프라 구축이 이뤄지고 있는데, 여기에 한컴의 기술이 접목될 수도 있다..

한컴위드는 자체 블록체인 플랫폼 한컴 에스렛저를 활용해 한컴오피스 2020’에 문서진본 확인 서비스를 적용했다. IoT 기기로부터 수집되는 데이터의 위변조를 방지하는 BIoT 플랫폼도 개발했다. 최근에는 모든 계약정보가 분산 저장되는 퀵서비스 플랫폼인 말랑말랑 아니벌써를 출시하는 등 블록체인 기술 보급과 확산에 집중하고 있다.

한컴그룹은 블록체인과 인공지능 등 다양한 분야의 글로벌 기업과 손을 잡으려고 한다. 공격적인 M&A 보다 협력과 기술제휴에 전략적 우위를 두고 있다. 그래서 한컴의 올해 최고 목표는 사업의 글로벌화다. 지난해 해외사업 총괄 사장으로 윤원석 전 코트라 본부장 출신을 영입했다. 해외지사도 8개로 재편했다. 그룹 차원에서 해외진출 전략을 강화하는 중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협업 모델이 있다. 한컴은 미국 아마존과 손을 잡고 글로벌 오피스 소프트웨어 시장을 노리고 있다. 지난 2016년 기준으로 한컴의 세계시장점유율은 고작 0.4%. 그런데 세계 2위다. 글로벌 1위는 MS. 1개 기업 독주 구조다. 한국 시장에서도 지난 30년간 한컴과 MS의 시장 비율은 37 정도다.

MS와 한컴의 공통점은 오피스 소프트웨어에 있어 ‘PC-모바일-기반을 구축한 유일한 기업들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MS는 아마존과 협업의 대상이 아니다. 지금 아마존의 친구는 한컴이다. 어쩌면 아마존 입장에서는 경쟁상대인 MS와 손을 잡는 것이 평생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한컴은 최근 3년간 아마존과 협력을 다져 나가는 중이다. 세계 오피스 소프트웨어 시장 5%만 가져와도 한컴 매출은 12000억원이 된다. 현재 한컴이 글로벌 시장 진출에 몰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호환성 강화한 한컴오피스 네오 출시

현재의 한컴은 지난 2010년 김상철 한컴그룹 회장이 인수를 하면서 아홉번째로 오너가 바뀐 한컴이라고 봐야 한다. 그는 한컴의 지분(28%)670여억원에 인수했다.

김상철 회장은 인수하자마자 한컴이 짊어지고 있던 각종 금융 부채를 하나씩 해결하기 시작했으며, 다른 업체와의 거래 대금을 모두 현금으로 결제하는 등 혁신적인 투명경영에 나섰다. 동시에 김 회장은 한컴의 캐시카우라고 할 수 있는 한컴 오피스프로그램에만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신제품 개발과 사업 다각화에 매달렸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SW들이 바로 한컴의 클라우드, 사진편집 프로그램들이었다.

20161월에 선보였던 한컴오피스 네오(NEO)’는 김상철 회장이 해외 시장진출을 위한 포문을 연 작품이다. 이 프로그램을 혁신적인 사무용 SW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그동안 국내에서는 두 종류의 워드 프로세서를 같이 써야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한글(hwp)파일과 워드(doc)의 문서형식은 서로 만든 기업이 달라서 잘 호환되지 않았다. 워드 파일이 한글 파일에서 못 읽는 일도 많았고, 반대의 경우에도 불완전하게 구동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한컴이 내놓은 한컴오피스 네오는 바로 해외 고객들이 한컴에 모바일, , PC를 모두 연동해서 쓸 수 있는 풀오피스(Full office)를 추구한다. 문서형식이 hwpdoc든 상관하지 않고, 또한 언어가 달라도 호환성을 대폭 강화해 다채롭게 호환되고 번역이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MS와의 호환성이 강화된다면, 말 그대로 사용자들이 한글 오피스와 MS의 워드프로세서를 왔다갔다 할 필요성이 줄어드는데 이때 한컴으로 사용자를 끌어 모으겠다는 계산인 것이다.

한컴의 최대 경쟁사는 두 말할 것 없이 MS. MS는 한컴을 경쟁사로 보지 않을 만큼 변방의 작은 기업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한컴의 블록체인, 한컴의 오피스 소프트웨어가 어느 순간 비상을 할지 누구도 모른다. 원래 IT 시장의 변혁은 한순간에 이뤄진다. 한컴은 지금 그 변곡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 차병선 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