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한 우중충한 날씨가 지속되면 여행을 떠나기가 마땅치 않다. 이럴 때 꼭 권하고 싶은 곳이 안성으로의 여행이다. 서울과 가까워 서두르지 않고 찾아가도 볼거리가 많은 곳. 우선 안성하면 떠오르는 것이 유기와 포도 등이다. 최근에는 태평무 공연과 함께 남사당 전통놀이를 함께 즐길 수 있다. 귀찮아하던 남편도 돌아올 때는 함지박 만한 웃음으로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는 가족 동반 나들이장소로 손꼽을 수 있다. 안성시에서는 토요상설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기대하지 않은 여행지에서 만족을 느꼈다면 기쁨은 몇 배가 된다. 장마철에 마땅한 장소가 어디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안성을 떠올렸고 공연일정에 맞춰 토요일에 여행채비를 차렸다. 여행의 주목적은 태평무와 남사당 공연을 보는 일이다.
공연을 보기 전에 우선 둘러봐야 할 곳이 청룡사다. 안성에는 청룡사와 석남사, 칠장사 등의 고찰이 있다. 많은 이야기가 서리서리 묻어 나는 사찰은 세 곳 모두 손색이 없을 정도로 문화재와 보물이 산재해 있다. 하지만 저녁의 남사당 공연을 보기 위해서는 남사당이 거했던 청룡사를 둘러보고 그들의 옛 삶을 잠시 돌아보는 것도 의미있다. 청룡사는 1900년대부터 등장한 남사당패의 근거지로 알려져 있다.
남사당은 농사철이 시작되는 봄부터 추수가 마무리되는 가을까지 마을을 떠나 천지사방을 떠돌며 살다가 추운 겨울이 되면 이곳 둥지로 찾아들었다. 남사당은 절 집 일손을 거들면서 식솔들을 거뒀다. 원래 남사당의 신분이 천시되는 시절. 마을 출입마저 수월치 않았다. 남사당은 서민들의 환영을 받았지만 지배층에겐 멸시의 대상이었다. 마을에서 겨우 받아들여 주면 길놀이를 펼치며 연명했던 것. 한바탕 신명을 일으키면 먹고 잘 곳만 제공받았던 사람들. 처음에는 남자들로만 시작했다가 나중에 여자도 합세했다. 그 중에서 가장 이름을 떨쳤던 여장부가 바우덕이다.
바우덕이의 본명은 김암덕(金岩德,1847~ 1870)이며 출생지는 어디인지 분명치 않다. 다만 5세에 남사당에 들어가 15세에 꼭두쇠(우두머리)가 됐다고 한다. 바우덕이는 꼭두쇠로 뛰어난 기량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미모 또한 빼어나 많은 사내들의 가슴을 태우고, 보는 사람들을 매혹시켰다고 한다. 바우덕이는 경복궁 중건 때 뽑혀서 소고와 선소리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대원군과의 만남을 갖게 됐고 대원군은 일꾼들을 신명나는 세계로 인도하는 그녀의 예술성을 칭찬하고 옥관자를 하사했다.

태평무 전수관

절 집과 주변 관광지를 둘러보고 찾을 곳이 태평무 전수관이다. 토요일 오후 4시부터 태평무 전수관(031-676-0141-2, 안성시 사곡동)에서는 공연이 펼쳐진다. 자그마한 전시관 앞. 정원 잔디밭에는 쉴 수 있는 의자 몇 개가 놓여 있다. 가족들은 하나 둘 공연장 앞으로 모여들고 뒤에는 많은 사진가들이 대기하고 있다. 에어컨이 있지만 무더위가 느껴지는 공연장. 하지만 더위는 공연에 빠져들면서 어느새 사라진다. 태평무를 시작으로 장고춤, 부채춤, 북춤, 무당춤 등이 연이어진다. 나라의 풍년과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뜻에서 왕과 왕비가 춤을 추는 내용을 담고 있는 태평무는 말 그대로 우아함이 느껴지고 부채춤은 화려함의 극치를 달린다. 가장 신명나는 것은 무당춤. 같이 몸이 움직여질 정도여서 관중도 소리치며 박자를 맞추기도 한다. 진한 화장을 한 무희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웃고 있지만 몸짓은 무수한 연습을 통해 얻어진 것으로 완성미가 느껴진다. 화면으로 볼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감동과 전율이 전해져 온다. 공연은 1시간이지만 짧게 느껴진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무용 배울 사람을 수시로 모집하고 대회를 열기도 한다.

남사당 바우덕이 풍물단 공연

태평무 공연을 보고 나면 15분 거리에 남사당 전수관(031-678-2064, 안성시 보개면 복령리)을 찾으면 된다. 매주 토요일 저녁 6시30분부터 3시간(30분은 뒤풀이) 동안 남사당 풍물놀이 여섯 마당이 무료로 펼쳐진다. 풍물단은 바우덕이를 기리고 과거 남사당놀이를 본격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2002년 5월 시립으로 정식 창단했다.
비 오는 날 이외에는 야외 상설 무대에서 펼쳐진다. 사각진 공연장 계단에는 공연을 감상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외국인도 눈에 띈다. 살판(땅재주), 네 명이 서로 바꾸는 기교를 펼치는 버나(대접)돌리기가 이어진다. 공연장 정 중앙에서 가면극(덧뵈기)이 펼쳐지면 아이들은 마냥 신기한 표정을 지으며 공연에 빠져 들어간다. 뱀이 사람을 잡아먹는 장면에서의 몰입은 극보다 아이들 표정을 보는 것이 더 나을 정도다.
이내 이 공연의 백미인 줄타기(어름)가 시작된다. 줄타기의 명인은 세 명. 상황에 따라 돌아가면서 줄타기 시연을 하고 있다. 이번 공연은 어린 여학생. 외줄을 오가며 펼치는 한바퀴 돌기, 외무릎 꿇기, 양발 들어 코차기 등 아슬아슬한 묘기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철렁 내리게 하면서 공연에 깊숙이 빠져들게 한다. 묘기에 매료된 사람들은 탄복하면서 돈을 주기도 한다. 어린애의 노력이 갸륵한 모습에 모두 흐뭇해진다. 구전을 줘서 그런지 줄타기는 더욱 탄력을 받는다.
줄타기가 끝나면 신나는 풍물(농악)놀이가 이어진다. 칠흙같은 어둠 속을 비추는 조명등 사이로 땀을 펄펄 흘리며 심취된 농악단의 몸짓과 북소리에 모두 하나가 된다. 12자 짜리 상모가 돌아갈 때 쯤이면 기분은 최고조에 달한다. 이것으로 공연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관중과 함께 어우러진 뒤풀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행여 여행이 귀찮았던 마음은 봄눈 녹듯이 한치도 남아 있지 않고 입가에 미소만 번진다. 뜨거운 여름 열기도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연 중에 비가 내리지 않기만을 학수고대하는 마음을 갖고 찾아가면 좋을 듯.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안성나들목~안성읍내로 들어오는 38번 국도 이용. 중대 옆에 박물관-청룡사는 안성시내로 들어와서 57번 지방도 이용.
■태평무 전시관=박물관에서 곧추 직진해서 외곽도로 이용. 나오는 길을 비껴 가면 돌려나오는 것이 어려우므로 유의. 용인 고삼이라는 팻말을 따라 나오면 70번 지방도.
■남사당 전수관=태평무 전수관에서 안성시내로 나오면 외곽도로를 만나게 된다. 다시 이 도로로 올라타고 보개쪽으로 가면 원삼으로 우측에 팻말이 나온다. 길을 나오자 마자 유턴하게 되고 외곽도로 바로 밑에서 우측으로 가는 길이 있다. 초행자는 팻말을 잘 확인해야 한다.
별미집과 숙박
청룡 저수지 주변으로는 매운탕집이 여럿 있다. 또 안성읍내에는 안일옥(031-675-2486, 674-9494) 설렁탕집이 소문난 곳이다. 한적한 산 속에 자리잡고 있는 안성맞춤한우촌(031-673-5550, 삼죽면 미장리)은 안성 한우의 제 맛을 즐길 수 있다. 번듯한 한옥건물이라서 분위기도 좋지만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전수관 앞에는 아트센터 마노(031-676-0756, 보개면 복평리)가 있다. 너리굴 문화마을(031-675-2171, 보개면 신장리)은 수련원 성격이지만 가족체험장으로도 찾아볼만하다. 또 안성천문대(02-777-1771, 미양면 강덕리)도 있다. 숙박은 금광저수지 주변이나 안성읍내를 이용하면 된다.
데이터
토요상설투어=서울 서초구민회관(양재역)에서 오후 1시30분에 출발-안성맞춤박물관(중앙대학교 정문옆)에 도착(오후 2시30분경), 태평무 공연관람-저녁식사. 참가비:1인당 15,000원. 참가문의:안성문화관광 정보센터(031-673-0824, 673-8200). 단, 남사당 공연까지는 연결되지 않는다.

◇사진설명 : 남사당놀이의 백미인 외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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