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 규제 양산]
3년간 규제법안 3800건 발의, 1000여건 통과해 ‘규제의 전당’ 오명도
생산현장 도외시한 화평법·화관법 시행에 영세 중소기업 존폐 갈림길
“규제 다 지키면 사업 불가능” 융복합신산업 스타트업, 복합규제에 휘청
중기중앙회 “근로시간제 연착륙의 궁극적 방안은 국회차원의 입법보완”

 

이번 20대 국회는 규제의 전당이라는 말이 있다. 20대 국회가 지난 3년 반 동안 하루 3건씩의 규제 법안을 발의해 이 중 1건을 통과시켰다. 규제를 하루에 1개씩 만들어낸 셈이다. 예를 들어 올해 이슈가 된 BMW 화재 사건으로 리콜 문제가 불거지자 국회에서 발의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만 31개나 된다. 모두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들이다.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에 따르면 20대 국회에 발의된 23887건의 의원법안 가운데 15%가 넘는 3742건이 규제법안으로 분류됐다. 이 법안을 통해 신설되거나 강화되는 규제조항은 7045건이다. 지난 201653020대 국회가 문을 연 뒤 하루 평균 3건의 규제법안, 5건이 넘는 규제조항이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입법기관인 국회 발() 규제의 홍수가 밀려오면서 생존경영을 펼치고 있는 중소기업들의 시름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규제 관련 애로사항이 발생할 때마다 대관(對官) 조직을 가동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대기업은 규제입법에 능동 대응할 수 있는 반면에 중소기업계는 사정이 녹록치 않다.

각종 규제로 회사 경영에 위협을 받는 곳도 수두룩하다. 경기도에서 화학제품을 양산하는 A기업의 CEO하루가 멀다 하고 규제 관련 의원입법 때문에 규제 피로도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주변 동종업계 가운데 화평법·화관법 등의 규제로 폐업을 고려하거나 실제 문을 닫은 중소기업도 비일비재하다고 하소연했다.

 

한쪽선 규제개혁, 다른쪽선 규제 봇물

중소기업이 국회의 의원입법에 신경이 곤두서는 이유가 있다. 의원법안은 10인 이상 의원의 찬성으로 발의된다. 국회 법제실 검토만 거치면 상임위에 바로 직행한다. 이때 해당 법안의 현실화 여부에 소요되는 비용의 경우 국회예산정책처의 비용추계서를 첨부해 제출하면 끝이다.

정부가 규제 관련 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조금 먼 길을 돌아가야 한다. 관계부처와의 협의는 물론 당정협의, 입법예고, 공청회 등의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어 규제개혁위원회의 규제심사도 받아야 한다. 끝이 아니다. 이후에도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 등을 거치고 그제야 국회로 법안을 넘길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정부기관은 규제심사를 피하기 위해 의원실에 입법을 요청하는 이른 바 청부입법도 나타난다. 기업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다른 한쪽에서 규제샌드박스 등 규제개혁을 과감히 진행하고 있지만 이렇게 다른 한쪽에서는 규제개혁을 무색하게 하는 수준으로 규제가 봇물 터지듯이 양산되는 중이다.

규제 입법의 문제점은 막상 시행이 임박하면서 기업에게 각종 부작용을 가중시키는 데에 있다. 대표적인 규제가 52시간제도. 당장 내년 11일부터 50~299인 사업장에 주52시간제 적용이 다가오자, 중소기업계는 경영현장의 대혼란을 야기할 거라 반발했고 결국 고용노동부도 법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계도기간을 1년간 두겠다는 대책안을 지난 11일 발표했다.

52시간제도는 정부 조차 제도의 실효성에 대해 고민하며 멈칫하고 있는 규제다. 앞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나도 (52시간제) 찬성했지만 (지금은) 반성한다고 말할 정도다. 국회가 사전에 중소기업계의 영향이나 부작용을 충분히 심사하지 않은 결과다.

이러한 졸속 입법, 과잉 입법은 아주 사소한 것부터 중대한 부분까지 다양하다. 산업재해, 성희롱 등 직장 내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만드는 직장인 교육 강제, 실업자·해고자도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노조법 개정안 등을 비롯해 각종 노동 규제와 화평법·화관법 등 환경 규제까지 등장하면서 중소기업들이 큰 고통을 받고 있다.

국회에서 쏟아내는 각종 의원 발의 내용의 대부분이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규제라는 것이다. 결국 쉽게 양산되는 각종 규제의 문제점을 보완하자는 취지의 입법보완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시점이다.

이에 중소기업중앙회(회장 김기문)도 주52시간제와 관련해 근로시간 제도의 연착륙을 위한 궁극적인 해결 방안은 국회 차원의 입법보완이라며 탄력근로제의 경우 경사노위 합의안대로 조속히 입법화하고, 선택근로제 역시 정산기간 확대를 통해 현실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데이터 3법 처리 감감 무소식

반면에 개혁입법은 감감 무소식이다. 예를 들어 서비스산업 제도개선과 세제지원 등을 담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제정안과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개정안 등은 18대 국회에서부터 발의됐으나 여전히 처리되지 않고 있다. 또 빅데이터산업 활성화를 위한 데이터 3등은 19대 국회부터 처리가 되지 않고 계속 미뤄지고 있는 중이다.

이번 20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법안 중에서도 52시간제 보완(근로기준법) 및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최저임금법) 클라우드컴퓨팅 규제완화(클라우드컴퓨팅법) 핀테크산업 등 자본금요건 축소(보험업법 등) 일본수출규제 대응(소재부품특별법, 조특법 등) 등은 이번 회기에 통과되지 못하면 입법지연이 장기화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규제 일변도의 입법발의 행태는 국내 신산업 육성에도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8일 발표한 신산업 규제트리와 산업별 규제사례를 살펴보면 최근 정부가 선정한 신사업에도 각종 규제가 난무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정부 9대 선도 사업 중 바이오·헬스, 드론, 핀테크, AI 4개 분야를 들여다 본 대한상의는 신산업은 대못규제 중복규제 소극규제에 막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산업 발전을 막는 대못규제데이터3으로 드러났다. 데이터3법이란 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법, 정보통신망법을 말한다. 4차 산업혁명의 원유는 데이터인데 데이터3법 규제가 데이터 수집조차 못하게 막고 있다.

산업별 연관규제를 분석하니 바이오·헬스는 개인정보보호법, 의료법드론은 개인정보보호법, 항공안전법핀테크는 신용정보법, 자본시장법AI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등으로 데이터3법이 걸려 있었다. 특히 19개 세부 산업분야로 분석했더니 19개 중 63%에 달하는 12개 산업분야가 데이터3법에 가로막혀 있었다.

또한 신산업은 복합규제에 막혀 있었다. 기존 산업을 융복합하는 신산업은 최소 2~3개의 기존 산업들이 받는 규제를 한꺼번에 적용받고 있었다. 한 청년벤처 기업인은 융복합 신산업의 스타트업이 모든 규제를 다 지켜서 사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며, 이런 현실에 사업을 접을까 몇 번이나 고민했다고 호소했다.

한국경제가 저성장 랠리에 들어서면서 위기 상태에 직면했다. 경제 활력을 위해 정부는 재정을 확대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기업이 과감한 투자와 고용확대를 이어나가야 반등의 기미가 보일 것이다.

이 때문이라도 우리 기업을 옥죄는 각종 졸속 규제와 과잉 규제를 하루빨리 없애는 게 중요한 때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규제가 1건 생기면 기존 규제 2~3건을 폐지하는 미국과 영국의 규제비용 총량제를 이제는 국회가 적극 참고할 단계라고 일성한다.

김주홍 자동차산업협회 실장은 규제비용 총량제와 더불어 의원발의 책임제를 도입해 입법 결과에 책임을 지도록 하고, 산업 경쟁력과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규제 법안을 발의하면 감점하는 국회의원 평가 시스템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회 차원의 규제개혁 시스템의 손질 없이는 한국경제의 미래는 불확실성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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