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가업승계 발목잡는 세제

 

#(中企승계 애로 사례1) 창업 후 50년 가까이 욕실자재 회사를 운영하는 A대표. 아들이 입사해 함께 근무한 지 10년이 넘는다. 아들은 회사에 대한 책임감과 열정이 A대표 못지않다. 승계를 위해 가업승계 증여세 과세특례를 활용하자니, 당장 증여세 부담이 너무 크다. A대표는 가업상속공제와 달리 사전증여 지원이 작아 실효성이 없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中企승계 애로 사례2) 5년전 B대표는 아버지가 창업한 자동차 부품 회사를 승계받았다. 하지만 자동차 시장이 침체기에 빠지고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가업상속 이전의 기준 고용인원을 100% 유지해야 하는 조건을 지키기 힘든 실정이다.

 

한국의 열악한 가업(기업)승계 제도 탓에 100년 장수기업을 꿈꾸는 중소기업들이 생존 위기에 처해 있다.

창업 CEO의 마지막 소임은 기업을 후계자에게 성공적으로 승계하는 일일 것이다. 한국경제의 풀뿌리 역할을 해 온 중소기업이 1대에서 2대로 대거 가업승계를 준비하고 있다. 재벌기업도 마찬가지다. 주요 그룹사마다 3세 경영자가 오너십을 발휘하면서 가업승계의 고삐를 당기는 중이다. 하지만 재벌기업과 비교하면 중소기업이 가업승계를 준비하는 일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쉽지 않다.

특히 상속세 문제로 승계를 포기하는 경우도 속출한다. 국내 종자회사인 농우바이오는 창업주 고() 고희선 명예회장이 213년 갑자기 타계하면서 그 지분을 물려받게 된 외아들은 110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로 인해 지분을 시장에 매물로 내놨다. 만약 당시 외국계 기업으로 회사가 넘어갔다면, 종자 로열티를 지불하고 청양고추를 먹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될 위기였다. 결국 농협이 농우바이오를 인수하면서 일단락된 안타까운 사례다.

대기업에서 비슷한 이슈가 터지면 어떻게 대처할까? 언론을 통해 접하는 바와 같이 후계자가 겪는 세금 이슈는 그룹의 순환출자구조를 변경하거나 계열사 합병을 통한 오너의 지분율 상승을 도모하며 해결책을 찾는다.

중소기업처럼 자신들의 지분을 팔아 온전히 세금을 내고 심지어 경영권을 넘기는 경우는 없다.

중소기업의 승계에 있어 상속세와 증여세가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국내 중소기업에 부과되는 상속 및 증여세의 세율은 최고 50%에 달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측에 속한다.

특히 가업승계 관련 상속세는 단지 피상속인의 재산이 상속인에게 무상으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실현이득에 대한 과세로 후계자 입장에서는 가장 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 수백억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못 내서 기업을 닫아야 하는 불상사가 앞으로도 계속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세금 이슈 말고도 대를 이어 기업을 지속·유지하는 것 자체가 확률적으로도 매우 희박하다는 지적도 있다. 기업 생존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게 현실이다. 미국의 가업승계 연구 권위자인 레온 덴코 박사는 미국 기업이 승계를 통해 2세대까지 생존하는 경우는 30%뿐이고, 3세대 이상 지속되는 경우는 13%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가업승계를 통한 기업의 평균 수명은 24년으로 추정한다.

반면 한국의 중소기업 승계 현황은 참담하다. 3대 이상 중소기업 승계를 유지하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한국의 중소기업 역사가 길어야 반세기를 넘은 이유도 있겠지만, 1대에서 2대로 넘어가는 수 많은 중소기업이 그 사이에 무수히 쓰러졌다는 걸 추정할 수 있다.

 

세금 무서워 사업장 해외이전할 판

최근 중소기업중앙회(회장 김기문)가 지난 1014일부터 1113일까지 업력 10년 이상 중소기업 대표 및 가업승계 후계자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9 중소기업 가업승계 실태조사결과에서도 중소기업계의 어려운 현실이 그대로 드러났다.

중소기업의 영속성 및 지속경영을 위해 가업승계가 중요하다고 답변한 기업인은 66.8%였으며, ‘중요하지 않다고 답변한 기업인은 5.2%에 불과했다.

특히, 업력이 높거나 가업승계를 경험한 2세대 이상의 대표자일수록 중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 가업승계가 장수 중소기업을 향한 주요한 밑거름인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업승계의 주된 어려움으로 막대한 조세 부담 우려’(77.5%)가업승계관련 정부정책 부족’(49.0%)을 꼽았다. 가업승계에 대한 정부 종합대책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경기도에 있는 제조 중소기업의 1세대 창업자는 세금 때문에 문을 닫겠다는 곳이 주변에 많다중소기업이 사업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세제 완화와 가업상속인에 대한 면세가 다른 국가와 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제적으로도 한국은 과도한 상속세를 적용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7월 발표한 원활한 기업승계를 위한 상속세제 개편방향에 따르면 실제로 높은 상속세율과 까다로운 가업상속공제 때문에 기업승계가 어려워진 창업주들이 한국M&A거래소(KMX) 또는 사모펀드에 회사매각을 의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행 직계비속에 대한 상속세 최고세율 50%OECD 국가 중 일본(55%) 다음으로 높아 2위 수준이다. 2017GDP 대비 상속·증여세수 비중도 OECD 국가 중 3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획일적인 최대주주 할증평가로 인해 상속세율이 65%까지 적용될 수 있는 점은 큰 조세장벽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상속재산 감소와 경영권 승계가 불확실해지면서 기업가 정신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국가의 경우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은 획일적으로 최대주주에 대해 할증평가를 하지 않고 있으며 영국, 독일 등은 소액주주에 대해 할인평가도 적용하고 있어 한국만 획일적으로 최대주주에 대한 할증평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한국 특유의 높은 조세장벽을 제거하고 기업승계를 지원한다는 취지로 정부가 현행 가업상속공제제도를 내놓고 있지만, 중소기업계는 적용대상이 제한적이고 적용요건이 까다로워 활용도가 매우 낮다고 평가하고 있다.

 

최대주주 지분율 완화 서둘러야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가업승계 계획이 있는 기업 가운데 가업상속공제 제도의 활용할 계획이 있다고 답변한 기업은 30.0%에 불과했다. ‘없다고 답변한 기업은 25.8%나 됐다.

가업상속공제제도 이용계획이 없는 이유로는 사후요건 이행이 까다로워 기업의 유지·성장에 도움 될 것 같지 않아서’(25.8%) ‘사전요건을 충족시키기 힘들어서’(19.5%)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중소기업들은 사전·사후요건으로 인해 제도 활용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가업상속공제란,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영위한 중소기업을 상속인에게 승계하는 경우 가업상속재산가액 중 업력에 따라 최대 500억원까지 공제하는 제도다. 지난 6월 정부와 여당의 관련 개편안은 사후관리 기간과 업종변경범위 등을 일부 완화했지만, 근본적인 개편이 필요한 적용대상이나 사전요건에 대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아 중소기업 현장에서 체감이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구에서 섬유공장을 운영하는 A기업의 대표는 매출과 고용이 매년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전요건과 사후조건이 너무 까다롭다제도가 너무 복잡하고 비현실적이라서 완화하고 간편화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특히, 응답기업 가운데 제도 개선 관련 사전요건에 대해서 피상속인의 최대주주 지분율 완화가 필요하다는 답변이 59.0%, 사후요건 중에는 근로자수 유지요건 완화가 필요하다는 답변이 75.0%로 각각 가장 높게 나타났다.

 

상속사전증여로 승계문화 전환 필요

가업승계 방식에 대해서는사후상속만을 계획하고 있는 경우는 13.5%에 불과했으며, ‘사전증여’(28.1%) 또는 일부 사전증여 후 사후상속’(51.0%)을 계획하고 있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가업승계를 위해 사전증여를 계획하고 있는 중소기업인들의 비중이 높아, 사후상속 중심의 가업승계 세제를 사전증여 문화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한편, ‘사전증여를 지원하는 가업승계 증여세 과세특례제도개선에 대해 가업상속공제 수준 한도확대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69.4%로 나타났다.

현행 증여 시 과세하고 상속 시 합산과세 하고 있는 증여세 납부 방법에 대해서는 상속개시 시점까지 증여세 납부유예를 도입해야 한다는 비율이 50.6%로 가장 높았다.

가업승계 증여세 과세특례란, 60세 이상의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계속 경영한 중소기업을 증여하는 경우 증여재산가액(최대 100억원)에서 5억원 공제한 후 10~20%의 세율로 증여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이후 상속을 할 때 상속세 과세가액에 합산·정산하는 제도다.

정욱조 중기중앙회 혁신성장본부장은 중소 법인 CEO 4명 중 1(27.5%) 이상이 60대 이상으로, 가업승계는 우리 경제의 당면문제라며 “20대 국회에 가업승계 중소기업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법안들이 많이 발의돼있는 만큼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세법개정에 꼭 반영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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