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길(숭실대학교 명예교수)
류동길(숭실대학교 명예교수)

52시간제 시행이 코앞이다. 내년부터 50299인 사업장에 실시된다. 준비 안 된 중소기업은 아무런 대책이 없다. 눈비오고 찬바람 부는 들판에 아무런 장비도 없이 서 있는 셈이다. 산업현장은 납기 맞추기와 인력 확보의 어려움 등 다양한 부작용이 예상된다. 다급한 중소기업계는 제도시행의 유예를 호소한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절대다수가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준비가 안 됐다는 것이다.

애당초 산업현장의 사정을 외면한 채 제도를 추진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의 준비부족을 탓할 일이 아니다.

정책당국은 근로시간을 법으로 강제해 줄이면 줄어드는 시간만큼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지난해 7월부터 대기업에 시행한 결과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정책을 보완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이제 중소기업이 직격탄을 맞을 위기에 몰렸다. 4차산업혁명이 진행되면 기계가 노동을 대체하는 속도가 촉진된다. 우리의 경우 근로시간 단축은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4차산업혁명이 진행되는 시기에 맞물려있어 문제가 더욱 꼬여있다.

적게 일하고 많이 받고 싶은 건 모든 근로자의 소망이다. 노동시간이 줄면 소득도 줄어든다. 경영자는 근로자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할 수 없지만 노동자가 더 일하고 싶고 노사가 합의하면 그걸 막을 까닭은 없다.

노동자는 자유의사에 따라 일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 더욱이 사무직이나 창조적인 일을 하는 연구개발(R&D)분야에서 일하는 시간을 지키라고 할 이유는 없다.

지난주 대학입학 수능시험을 치렀다. 입시 공부하는 학생에게 공부시간을 규제한다고 생각해보라. 시험을 앞둔 학생에게는 하루 24시간도 부족하다. 할 일이 쌓여있고 인력은 부족한데 납기를 앞둔 기업에게 노동시간을 규제하는 것은 학생에게 공부시간을 규제하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오늘날 과거처럼 장시간 중노동으로 고통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기업은 생산차질이 생겨 불만이고 근로자는 소득이 줄어 불만인 정책을 왜 강행해야 하는가.

52시간제의 문제점을 보완한다면서 탄력근로 단위기간 3개월을 6개월로 연장하는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단순히 6개월 연장하는 것은 해법이 아닌데 노동계는 6개월 연장에도 반대한다. 단위기간을 연장하려면 1년으로 연장하지 못할 까닭이 있는가. 계절성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기업의 경우, 예컨대 1년 중 6개월은 바쁘고, 나머지 6개월은 바쁘지 않은 경우를 생각해보자. 일감이 밀리는 계절에 많이 일하고 그렇지 않은 계절은 느슨하게 일하면 왜 안 되는가. 그렇지 않아도 기업 환경은 어려운데 주52시간제는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려는 기업이 늘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52시간 관련법은 너무 경직된 상태로 국회를 통과했다며 국회의원으로서 때늦은 자성론을 폈다. 국회 입법과정의 졸속과 무책임이 어디 이 뿐이겠는가.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은 52시간 근로시간제는 두발 단속하듯 낡은 규제라며 비판한다.

좋은 뜻으로 추진하는 정책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보장이 없다. 중소기업을 위한다는 열 마디 말보다 산업현장에 큰 혼란이 예상되는 문제를 푸는 게 중소기업정책이다.

급한 불은 꺼야한다. 52시간제의 시행시기를 1년 이상 늦추고, 업종이나 직무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유연 근무가 가능하게 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 류동길(숭실대학교 명예교수)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