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정전 야경
명정전 야경

 

창경궁은 다른 궁궐과 조금 다르다. 왕실의 웃어른을 위한 공간으로 지었기 때문에 정치 공간인 외전보다 생활공간인 내전이 넓고 발달했다. 정전인 명정전(국보 226)은 정면 5, 측면 3칸 단층 건물로 경복궁 근정전이나 창덕궁 인정전에 비해 아담하지만, 우리나라 궁궐의 정전 중에 가장 오래됐다. 1484(성종 15)에 건립해 임진왜란 때 불탄 건물을 1616(광해군 8)에 복원해 오늘에 이른다.

명정전에는 12대 왕 인종의 꿈이 서려 있다. 조선 왕 가운데 유일하게 명정전에서 즉위식을 올린 인종은 미처 뜻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재위 9개월 만에 승하했다. 명정전을 가장 알뜰살뜰 사용한 임금은 영조다. 명정전에서 혼례를 올렸고, 명정전 뜰에서 치러진 많은 과거를 지켜봤다. 명정전 옆 문정전 마당에서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기도 했다.

창경궁은 다른 궁궐보다 친근하게 느껴진다. 숲이 울창해 도심의 수목원 역할도 한다. 창경궁은 9대 왕 성종이 할머니인 세조 비 정희왕후, 어머니인 덕종 비 소혜왕후, 작은어머니인 예종 비 안순왕후를 모시기 위해 지었다.

정문인 홍화문(보물 384)을 통해 창경궁으로 들어서면 돌다리가 나온다. 여기가 옥천교(보물 386)로 봄이면 매화, 살구꽃, 앵두꽃 등이 흐드러지게 핀다. 옥천교 아래 금천은 사철 맑은 물이 흐른다. 옥천교를 건너면 명정문(보물 385)을 거쳐 명정전으로 들어선다. 명정문을 지나면 박석이 깔린 넓은 마당이 나오는데, 이곳이 조정(朝廷)이다. 조정에는 문무백관의 자리를 정한 품계석이 늘어섰다. 명정전은 널찍한 기단인 월대에 올라앉아 위엄이 넘친다. 월대에서 조정을 내려다보니 왕이라도 된 듯 기분이 좋아진다.

명정전 현판 아래 문살이 눈에 띈다. 꽃잎이 사방으로 활짝 핀 모습을 형상화해 아름답다. 문살은 밤에 진가를 발휘한다. 건물 내부에 조명이 들어오면 은은한 빛이 비쳐 그야말로 꽃이 활짝 핀 것 같다.

열린 문으로 명정전 안을 들여다본다. 내부 바닥에는 검은 전돌이 깔렸다. 기둥 뒤로 임금이 앉는 붉은색 보좌가 당당하게 놓였다. 보좌 뒤에는 다섯 봉우리와 해, , 소나무 등을 소재로 그린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병풍이 있다. 보좌 위에는 구름무늬와 덩굴무늬 등으로 화려하게 꾸민 닫집이 있고, 그 위 움푹 들어간 천장에는 봉황과 구름을 매달았다.

명정전에서 즉위식을 한 왕은 인종이 유일하다. 조선 12대 왕 인종은 즉위한 뒤 도학 사상을 현실 정치에 응용하고자 사림 세력을 등용했다. 하지만 뜻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재위 9개월 만에 31세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21대 왕 영조는 명정전에서 혼례식을 했다. 영조는 정성왕후가 승하하자 66세가 되던 1759, 15세 꽃다운 정순왕후를 계비로 맞아들인다. 흔치 않은 국왕의 혼례식에 창경궁 일대 거리는 인파가 넘쳤다고 한다. 월대 위에서 마주 봤을 영조와 정순왕후를 생각하니, 실실 웃음이 나온다. 영조는 이곳에서 큰 아픔도 겪었다. 명정전 바로 옆 왕의 집무실인 문정전 마당에서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뒀다. 사도세자는 끝내 뒤주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명정전 왼쪽으로 돌면 외전과 내전의 경계인 빈양문이 나온다. 빈양문에서 보는 명정전이 특히 아름다워 포토 존으로 인기다. 명정전 둘러보기는 빈양문에서 마무리된다.

한편 창경궁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야간 관람이다. 창경궁은 밤이 낮보다 화려하다. 제각각 다른 전각의 문살과 창살에서 나오는 은은한 빛과 밤하늘의 검푸른 빛이 어우러져 환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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