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물산업의 역사 한눈에 ‘소창체험관’
폐허에서 인생샷 명소 ‘조양방직’

조양방직 내부 전경
조양방직 내부 전경

 

강화도는 1970년대까지 직물 산업이 번성한 고장이었다. 1933년 조양방직이 문을 연 이래, 평화직물과 심도직물, 이화직물 등 직물 공장이 들어섰다. 크고 작은 직물 공장이 60여 곳이고, 강화읍에만 직물 공장 직원이 4000명이 넘었다. 하지만 1970년 중·후반부터 합성섬유를 생산하는 대구로 중심이 옮겨 가면서 강화의 직물 산업은 쇠락의 길을 걷는다. 지금은 소규모 소창 공장 10여 곳이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소창체험관은 강화도 직물 산업의 역사를 한눈에 보고, 소창을 이용한 체험을 해볼 수 있는 곳이다. 1956년에 문을 열어 강화 직물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한 평화직물을 매입, 리모델링해 201712월 개관한 체험관이다. 소창은 목화솜에서 뽑아낸 실을 이용해 만든 23수 면직물이다. 일회용 기저귀가 나오기 전에 사용한 천 기저귀가 소창으로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소창은 무슨 뜻일까? 소창의 뜻은 정확히 나와 있는 곳이 없다. 국립민속박물관이 펴낸 강화의 직물, 소창에 따르면 소창이 일본의 고쿠라오리(小倉織)에서 파생된 것이라 한다.

소창체험관은 소창전시관과 소창체험관, 차 체험을 즐길 수 있는 1938한옥, 소창 제작 과정을 직접 보여주는 직조시연관 등으로 구성된다. 외부에는 소창을 만드는 원료인 목화가 담을 따라 심겼고, 하얀 목화솜 조형물이 보인다. 조형물 뒤로 오래된 나무 전봇대도 있다. 우리나라에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니 꼭 챙겨 보자.

1938년에 건축된 1938한옥에서는 차 체험을 진행한다. 강화 특산물인 순무를 덖어 만든 순무차를 주로 낸다. 정갈한 방에 앉아 구수하고 깔끔한 순무차 한 잔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조양방직은 1933년 강화도 지주인 홍재묵·홍재용 형제가 민족자본으로 처음 설립한 방직공장이다. 조양방직이 생기면서 강화도에 전기와 전화 시설이 들어왔으니, 그 영향력은 실로 대단했다. 하지만 10여 년 뒤 경영이 어려워지자 다른 사람에게 경영권이 넘어갔고, 광복 후까지 명맥을 잇다가 1958년에 문을 닫았다. 초라한 퇴장이었다. 이후 조양방직은 단무지 공장, 젓갈 공장을 거치며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조양방직이 새 주인을 만난 것은 2017. 불과 2년 전 일이다. 1년 남짓 보수공사를 거친 조양방직은 카페로 다시 태어났다. 보수공사를 했다지만 회색빛 시멘트 건물 외관은 그대로 살렸고, 방직기계가 있던 기다란 작업대는 자연스럽게 앉아 커피를 마시는 테이블이 됐다. 테이블이 얼마나 긴지 음료를 주문한 뒤 받는 진동 벨이 어느 지점부터 울리지 않는다.

또 지붕 트러스에 설치된 창이 인상적이다. 트러스 면마다 창이 설치돼 조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많은 빛을 받아들인다. 회색빛 음울한 분위기를 바꿔주는 대표적인 요소다. 내부는 빈티지한 분위기에 예술 작품을 더해 인생 사진을 찍으려는 여행객의 발길이 이어진다. 주말에는 대기하는 줄이 길다니 조양방직 제2의 전성기는 거침이 없다.

조양방직을 찾기 전에 강화중앙시장 B동에 위치한 강화관광플랫폼에 들르자. 다양한 여행 정보를 얻고, 조양방직을 비롯한 카페와 음식점 할인권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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