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내년 최저임금 결정 시 경제와 고용에 미치는 영향, 경제 주체의 부담 능력, 시장에서의 수용성 등 3가지를 논의 과정에서 함께 고려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최저임금의 빛과 그림자가 드러났다. 정부가 처음으로  최저임금의 영향과 실태를 조사해 공개했다. 지난 2년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임금 격차는 줄었지만 일자리 감소라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논의 과정에서 ‘속도 조절론’에  한층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임금격차 줄었지만 사업주는 고용 줄여

고용노동부는 지난 2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최저임금 영향 분석 토론회’를 열고 최저임금 인상이 지난해 근로자 임금, 고용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분석해 발표했다. 

우선, 최저임금 인상은 ‘임금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준영 한국고용정보원 고용동향분석팀장은 ‘2018년 최저임금 인상 이후 임금 분포의 변화’를 발표하며 “지난해 임금 불평등도가 큰 폭으로 개선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 기준으로 저임금(중위임금의 3분의 2 미만) 근로자 비중은 19.0%에 그쳤다. 2017년 6월과 비교해 3.3% 포인트 줄었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처음으로 20% 선을 밑돌았다. 임금 5분위 배율(하위 20% 평균임금 대비 상위 20% 평균임금)도 4.67로 떨어졌다. 그만큼 근로자 사이의 임금 격차가 줄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수치를 마냥 좋게 보기는 어렵다. 일자리에서 밀려난 구직자·실직자나 자영업자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한계 때문이다.

같은 자리에서 발표된 ‘최저임금 현장 실태 파악 결과’를 살펴보면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면서 인건비 부담이 커진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 등 일부 업종의 사업주가 고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한 것으로 조사됐다. 

노용진 서울과기대 경영학과 교수는 고용부 의뢰를 받아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까지 최저임금 영향을 많이 받는 사업체의 대응 실태를 집중적으로 살폈다. 조사 결과 저임금 근로자 비중이 높은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 사업주는 근로시간을 단축하거나 아예 고용을 줄였다. 

노 교수는 “다수의 기업에서 고용 감소가 발견되고 있으며 고용 감소와 근로시간 감소가 동시에 나타나는 기업도 상당수 존재했다”며 “단시간 근로자의 근로시간 단축으로 초단시간 근로의 확대 사례도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초단시간 노동은 1주 노동시간이 주 15시간 미만인 경우를 가리킨다. 사업주는 초단시간 노동자에 대해서는 주휴수당을 주지 않아도 된다.

노 교수는 음식숙박업에 관해서도 “사례를 살핀 대부분 기업들에서 최소한 고용이나 근로시간 중 하나는 감소했다”며 “‘피크 타임’에 단시간 근로자를 활용하면서 단시간 근로자가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공단 내 중소 제조업체들은 근로시간 감축을 택하는 사례가 많았다. 숙련 근로자 확보가 어려운 만큼 기존 근로자를 줄이는 경향은 덜했다.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역시 조업시간을 줄이면서 초과근로시간을 단축하는 식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대응했다. 결국 근로자 입장에서는 일자리를 잃거나 줄어든 근로시간 때문에 총임금 상승률이 최저임금 인상률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실태를 파악한 4개 업종은 다양한 이유로 경기가 나쁜 가운데 최저임금 인상으로 부담이 가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은 업종 내 과당경쟁과 온라인 상거래 확산 등으로 실적이 나빠지는 상황이다.

노 교수는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할 때 경제 전반 환경, 취약 업종과 영세기업의 여건 등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소상공인 구분적용 근거 마련해야”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기업인에게 경영부담으로 이어지고 근로자들에게는 실제 임금 상승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다 보니 기업인과 근로자 모두 내년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바라봤다. 

중소기업중앙회(회장 김기문)가 지난 23일 발표한 ‘2020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중소기업 의견조사’에 따르면 600개 중소기업 중 69.0%가 내년 최저임금을 동결해야 한다고 답했다.

올해 최저임금 수준이 ‘높다’고 답한 비율은 62.6%(‘매우 높다’ 26.8%·‘다소 높다’ 35.8%)에 달했다. 특히 직원 5인 미만의 영세업자들은 70.9%가 올해 최저임금이 높다고 답해 최저임금 부담을 더 심각하게 느끼는 것으로 드러났다. 내년 최저임금 동결을 희망하는 비율도 77.6%로 전체 평균보다 높았다.

응답 기업의 83.2%는 법 개정을 통해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고정상여금과 복리후생비가 단계적으로 포함된 것에 대해 ‘도움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상여, 복리비가 없거나 낮아서(68.1%) △어려운 계산 방법으로 활용이 쉽지 않아서(18.5%) △포함 금액보다 인상 금액이 더 커서(13.4%) 등이 꼽혔다.

이태희 중기중앙회 스마트일자리본부장은 “이렇게까지 중소기업들이 최저임금 동결을 호소한 적은 없었다”며 “소상공인과 외국인에 대한 구분적용 가능 근거를 마련하고, 내년도 최저임금은 올해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소기업계 뿐만 아니라 일반국민들도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와 같은 수준으로 동결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는 여론조사도 나왔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 21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9명을 대상으로 내년도 적정 최저임금에 대해 조사한 결과, 최저임금을 올해와 같은 8350원으로 해야 한다는 답변이 34.8%로 가장 많았다.

이어 지난해 경제성장률만큼인 2.7% 인상안인 8580원으로 해야 한다는 응답이 17.9%로 두 번째로 많았고, 10% 이상을 인상해 9190원보다 더 올려야 한다는 답변이 14.3%로 뒤를 이었다. 5%를 인상한 8770원은 11.9%, 7.5%를 인상한 8980원은 7.7%를 각각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리얼미터에 따르면 최저임금을 동결해야 한다는 응답은 대부분의 연령과 지역, 계층에서 고루 높게 나타났다. 이 가운데 특히 보수층(42.4%)과 중도층(38%), 한국당 지지층(52.8%), 가정주부(47.8%)·자영업자(42.6%)에서 동결 의견이 가장 많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 최저임금 속도조절 의사 피력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우려는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우리정부와 연례협의를 하면서 “최저임금 인상을 노동생산성 증가와 연동하라”고 권고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지난 21일 “한국의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 창출의 걸림돌로 작용해 저숙련 노동자에게 타격을 주고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완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에 따라 정부도 최근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에 속도조절 의사를 피력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KBS와의 대담에서 최저임금 속도조절을 시사한데 이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3일 정부세종청사 기자간담회를 열고 “내년 최저임금 결정 시 경제와 고용에 미치는 영향, 경제 주체의 부담 능력, 시장에서의 수용성 등 3가지를 논의 과정에서 함께 고려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홍 부총리는 “내년 최저임금은 노사 대표와 공익위원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가 결정하는데, 3가지가 충분히 감안돼 결정하길 희망한다”며 “최저임금 개편 작업이 아직 입법으로 이어지지 않아 2020년 심의는 기존 결정방식대로 시작하게 됐지만, 공론화 과정에서 가능한 국회에 제출한 입법 취지가 충분히 반영돼 이번 심의가 진행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 24일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을 위촉 완료하고 오는 30일 전원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최근 일자리사정 등 우리 경제상황이 엄중한 만큼, 새롭게 위촉된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은 이 같은 경제현실을 감안해 구국의 심정으로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에 임해주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