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기업투자환경이 급격하게 경색되고 있는 분위기다. 반도체 설비투자 조정 등에 따른 영향으로 투자 지표가 20년 만에 최장기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등 심각한 조짐이 보이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2일 발표한 8월 산업활동동향을 살펴보면 설비투자는 올해 3월부터 6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9월~1998년 6월까지 10개월 연속 감소를 기록한 이후 약 20년 만에 최장기간 감소하고 있다. 호조세를 보이던 반도체업체 설비투자가 올해 3~4월경 마무리되면서 투자 지표 둔화세가 계속되는 것으로 통계청은 분석했다.

문제는 현재의 경기상황을 보여주는 지표인 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전달보다 0.2포인트 하락한 98.9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는 2009년 8월(98.8)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앞으로의 경기를 예측하는 지표인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도 전달보다 0.4포인트 떨어진 99.4를 나타냈다. 이번 낙폭은 2016년 2월(-0.4) 이후 2년 6개월 만에 가장 컸다. 앞으로 남은 4분기 경기 전망도 어둡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투자 부진 원인 중 하나로 경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정책 불확실성을 꼽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비용이 증가할 수 있는 상황에서 기업이 지갑을 선뜻 열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미·중 무역분쟁,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자금 이탈 우려 등 커지는 대외 불확실성도 기업이 투자 결정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한국경제의 성장세에 대한 우려는 주요 해외투자은행(IB)들도 제기하고 있다. 지난 9월골드만삭스는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 전망을 7월말 2.9%에서 8월말 2.7%로 0.2%포인트 떨어뜨렸다. 내년 성장률도 2.9%에서 2.7%로 조정했다. 7월말까지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을 각각 3.0%로 제시한 UBS도 지난달 말에는 올해와 내년 모두 2.9%로 낮췄다. 한국경제 성장률을 하향 조정하는 IB는 최근 부쩍 늘고 있는 추세다. 고용환경, 투자환경, 내수부진 등 4분기도 여전히 한국경제 기상도는 흐림이 예상된다.

중소제조업 절반 “투자 안해”
상황이 이렇다보니 중소기업계도 선뜻 지갑을 열고 투자에 나서는 것에 주춤할 수밖에 없다. 특히 중소제조업체 절반은 4분기 투자 의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가 불확실한 업체도 3분의 1에 달해 중소제조업 투자 위축이 예상된다.

중소기업중앙회(회장 박성택)가 최근 중소제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중소제조업 투자 현황 파악 및 정책의견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4분기(10월~12월) 설비투자, 연구개발투자, 인력개발투자 등의 투자 의향이 있는 중소제조업체는 15.7%에 불과했다.

응답기업의 50.0%가 투자의향이 ‘없다’고 답했고, ‘미정’인 업체도 34.3%로 나타났다. 단기적 여건에 따라 유동적으로 투자를 계획하는 기업이 상당하다는 뜻이다.
투자 의향이 없는 기업들은 투자를 안하는 이유로 ‘투자여력 없음’(42.0%)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수요부진 지속 예상’(25.3%) 때문이라고 답했다.

업체들은 투자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내수활성 정책을 추진하기를 기대했다. ‘내수활성화’(63.0%) 다음으로 ‘고용안정·인력난 해소’(32.7%), ‘자금조달 경로 다각화’(32.7%), ‘수출활성화’(26.0%) 등을 필요한 경제정책으로 꼽았다.
경기부양 효과를 위해서는 ‘금리 인하 정책’(58.7%), ‘개별소비세 인하 정책’(30.0%)을 펼쳐달라고 요구했다.

업체들은 동종업계의 투자수준도 부정적으로 예측했다. 조사대상 업체 49.7%가 전년동기 대비 업계 투자가 축소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업체는 46.7%였다. 투자 확대를 기대하는 업체는 3.0%뿐이었다.

또 응답기업의 11.0%는 현재 해외 생산시설이 있거나 향후 해외 생산시설을 설립할 계획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인건비·근로시간 등 노동조건이 국내보다 좋아서’(30.3%), ‘거래 기업의 해외 진출에 따른 동반진출’(30.3%)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올해 1~9월 투자실적이 있었던 기업은 63.3%로 실적이 전년동기 대비 비슷한 수준이었던 기업은 37.7%, 축소된 기업은 13.0%, 확대된 기업은 12.6%였다. 실적이 없었던 기업도 36.7%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재원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최근 내수부진과 인건비 부담 가중 등 중소기업이 체감하는 경영여건이 매우 안좋다”며 “4분기 투자 의향이 미정인 중소제조업체가 3분의 1에 달하는 만큼 투자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전방위적인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10월 중기경기전망지수 소폭 상승
투자환경과 내수시장 환경이 흐린 가운데서도 중소기업계는 조금씩 업황이 개선되지 않을까 하는 실낱 같은 희망을 품고 있다. 중소기업이 체감하는 경기가 다음 달에 다소 개선돼 2개월 연속 나아지고 있다.
중기중앙회가 최근 315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10월 중소기업경기전망조사’를 한 결과 업황전망 중소기업건강도지수(SBHI)가 89.5로 전달보다 1.0포인트 높아졌다.

이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7.8포인트 나아진 것이다. 그러나 지수가 90을 밑돌아 여전히 경기를 부정적으로 보는 중소기업들이 더 많다. 이 지수는 100 이상이면 경기를 긍정적으로 본 업체가 그렇지 않으리라고 응답한 업체보다 많음을 나타내며, 100 미만이면 반대를 뜻한다.

제조업의 10월 경기전망은 전달보다 2.5포인트 높아진 89.8로 조사됐다. 특별한 경기개선 호재가 없는 비제조업 지수는 89.3으로 0.1포인트 낮아졌다. 제조업에서 ‘인쇄 및 기록매체복제업’은 84.6에서 104.0으로 개선됐으며 전기장비(87.9), 종이 및 종이제품(95.0) 등 14개 업종이 높아졌으나 109.8에서 90.6으로 낮아진 음료 등 7개 업종이 떨어졌다.

비제조업에서 건설업이 정부의 수요억제 정책과 공공발주 부진 등으로 90.0에서 85.2로 큰 폭으로 내렸다.
서비스업은 89.2에서 90.3으로 높아졌다. 숙박 및 음식점업(91.1), 운수업(96.4), 부동산업 및 임대업(90.9) 등 6개 업종은 높아진 반면 교육서비스업(79.1) 등 4개 업종은 떨어졌다.

항목별(전산업) 전망을 보면 내수판매(89.0), 수출(93.5), 영업이익(84.7), 자금 사정(82.8) 등에서 개선세를 보였으나 역추세인 고용수준(98.4)은 다소 악화했다.

최근 1년 항목별 지수 평균치와 비교해보면 제조업의 경우 경기 전반과 생산, 내수, 수출, 영업이익, 자금 사정 전망이 지난달보다 개선돼 1년 평균치를 상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제조업은 수출전망과 고용전망을 제외하고 경기 전반, 내수판매, 자금 사정 전망에서 지난달보다 나아져 1년간 평균치를 웃돌았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