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필규-중소기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지난 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근로시간 단축법안에 대해 관련주체들은 기대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먼저 기업은 장시간 근로의 단축에 원칙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생산성 향상이 수반되지 않으면 비용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인력난에 시달리고 지불능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은 근로시간 단축이 인력난을 더욱 심화시키고 납기대응능력 등을 크게 약화시켜 경영여건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스타트업이나 R&D부서는 성과를 내기까지 집중적인 몰입기간이 필요한데 근로시간 단축규제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하고 있다.
근로자들도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해져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겠지만, 단축된 근로시간만큼 임금이 감소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임금감소가 지불능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근로시간 단축이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를 확대시키고 양극화를 심화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 입장에서는 근로시간 단축에 의한 신규고용 창출이 가장 큰 관심사이지만 유연성이 높지 않은 노동시장과 취약한 중소기업의 지불능력이라는 제약조건하에서 신규고용창출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 자영업자나 영세기업 등 근로시간 단축의 사각지대가 광범위하게 존재해 단축의 혜택이 일부 근로자에게만 돌아갈 수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삶의 질 향상, 기업경쟁력 제고, 일자리 창출, 양극화 완화 등 다양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근로시간 단축이 이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근로시간의 양적 단축이 지속가능하고 기업과 근로자가 함께 상생할 수 있는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먼저 노동수요의 변화에 따라 근로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근로시간제도의 유연화가 병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 정규직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선택적 근로시간제나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확대, 근로시간저축제의 활성화, 단시간 근로자나 파견 등의 비정규직 유연근로의 규제완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비정규직 단시간 근로는 여성인력이나 고령인력의 활용을 통해 외벌이 중심의 정규직 장시간 근로를 개선할 수 있는 고용형태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고용형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단시간 근로에 대한 보상수준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져야 한다. 비정규직 단시간 근로의 보상수준이 높아지면 장시간 근로의 또 하나의 원인인 자영업자들도 임금근로자를 선택할 유인이 높아져 과도한 자영업자 비중의 축소, 소득상승을 통한 양극화 완화, 근로시간 감소 등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정규직 근로자의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감소 보전이나 비정규직 단시간 근로의 보상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이 필수불가결하다. 이를 위해 업무시스템의 혁신을 통한 근로시간의 몰입도와 효율성 제고, 교육훈련이나 업무환경 개선을 통한 창의성 제고노력이 적극적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한 생산성 향상은 근로시간 단축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기업의 경쟁력 제고와 스케일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근로시간의 단축을 통해 생겨난 여유시간은 보통 휴식이나 여가의 시간으로만 생각되는 경향이 있는데, 인공지능시대와 100세 시대의 일자리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여유시간은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한 재창조의 시간으로도 활용될 필요가 있다. ‘저녁이 있는 삶’ 뿐만 아니라 ‘미래가 있는 삶’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백필규-중소기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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