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성곽 건축의 꽃’이라 불리는 수원화성의 야경

올해는 수원화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지 2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조선 성곽 건축의 꽃이라 불리는 수원화성을 둘러보는 것은 그래서 더욱 각별한 의미가 있다.
화성 축성은 정조의 효심과 낡은 정치를 개혁하려는 열망에서 비롯됐다. 1762년 정조의 부친인 사도세자가 당쟁의 회오리 속에서 한여름 뒤주에 갇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당시 정조 나이 11세였다. 할아버지 영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정조는 부친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양주 배봉산에서 명당으로 알려진 수원 화산으로 묘를 옮겼다.
그리고 수원을 자신이 이상으로 꿈꾸는 신도시로 건설하고자 1894년 2월부터 2년 반에 걸쳐 성을 쌓았다. 행정·치안 기관인 관아, 교육 기관인 향교, 교통 기관인 역참이 들어섰고 상가, 도로, 교량과 같은 도시 기반 시설도 마련됐다. 성곽 전체 길이는 5.74km, 높이 4~6m의 성벽이 130ha의 면적을 에워싸고 있다.
처음부터 계획된 성곽이라는 점, 거주지로서의 읍성과 방어용 산성을 합해 하나의 성곽도시로 만들었다는 점, 그 이전 성곽에 흔치 않았던 다양한 방어용 시설이 더해졌다는 점, 전통적 축성 기법에 동서양의 새로운 과학 기술과 지식을 활용했다는 점 등이 화성의 가장 큰 특징이다.
다산 정약용은 화성 축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당시 30세였던 다산은 왕실 서고 규장각에 비치된 서적들을 섭렵하고 중국에서 들여온 <고금도서집성>을 참조해 새로운 성곽을 설계했다. 거중기를 고안해 커다란 석재를 옮기고 쌓는데 이용하기도 했다.
1801년에 발간된 <화성성역의궤>에는 축성 계획, 제도, 법식, 동원된 인력의 인적사항, 재료 출처 및 용도, 예산 및 임금 계산, 공사일지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파괴되거나 피해를 입은 시설을 원형대로 복원하는데 <화성성역의궤>의 기록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기록에 의하면 화성에는 성문을 비롯한 48개의 시설물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복원된 것을 포함해 41개의 시설물이 남아 있다.
보물 제402호인 팔달문, 팔달산을 둘러싼 시설 중 가장 높은 서장대, 화포를 감춰두고 적군에게 총을 쏘도록 축조된 남포루, 군 지휘소와 정자의 기능을 함께 지닌 방화수류정 등 200여년 전 건물에 조선 문화의 향기가 가득하다.
수원화성은 1997년 12월4일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창덕궁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현재 화성에는 주요 거점을 순환하는 관광열차인 ‘화성어차’가 운행되고 있어 관람객의 편의를 돕는다. 화성어차는 순종이 타던 자동차와 조선 시대 왕의 가마를 모티브로 제작됐다. 노선과 운행 시간은 수원문화재단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행정보
- 수원문화재단 : www.swcf.or.kr
- 수원종합관광안내소 : 031-228-4672

숙박
- 수원호스텔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행궁로 11, 031-254-5555,  www.swcf.or.kr
- 라마다프라자수원호텔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중부대로 150,  031-230-0001, www.ramadaplazasuwon.com
- 이비스앰배서더수원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권광로 132,  031-230-5000, ibis.ambatel.com/suwon

식당 : 닭 1마리를 통째로 튀긴 바삭한 옛날식 치킨은 수원을 대표하는 먹거리 중 하나다. 팔달문 아래에 통닭 골목이 형성돼 있다. 옛맛손두부청국장(031-243-4243)은 직접 만든 생두부와 청국장, 두부부침으로 유명하다. 에베레스트(031-203-0045)는 수원화성에서 30분 거리로 다소 멀지만 다양한 커리와 난, 탄두리 치킨 등 네팔 전통요리를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어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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