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민주당과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을 위한 기술 유용행위 근절 대책’을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례1. A 대기업에 납품하던 B 중소기업은 대기업으로부터 ‘공정 프로세스 및 설명서, 제품 설계도’ 등 관련 기술자료 일체를 요구받았다. 주요 기술이 포함된 내용으로 유출을 꺼렸지만 B사는 대기업과의 거래가 끊길 것을 우려해 관련 자료를 제공했다. 하지만 오히려 자료를 제공한 이후 B사는 급격한 수익성 악화에 시달렸다. A사가 관련 자료를 여러 납품업체에 제공하고 동일한 부품을 제조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B사에는 자료를 기반으로 납품단가 인하도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사례2. C 대기업으로 부터 기술 탈취를 경험한 D 중소기업은 기술유용 행위에 대한 민원을 접수했다가 황당한 답변을 들어야했다. 상대 대기업이 협약평가 우수기업으로 선정돼 있어 ‘직권조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해당 대기업은 3년간 공정거래 협약제도 등 평가에서 우수등급을 받아 1년 동안 직권조사 면제의 인센티브를 부여받은 것이다. D 업체 대표는 기술유용에 대해서는 직권조사 면제 혜택이 없어져야 한다고 호소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를 막기 위해 신고에 의존하지 않고 적극적인 직권조사를 벌여나가기로 했다. 중소기업 기술유용 사건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내년 기계·자동차 분야를 상대로 집중 감시를 벌인다.
기술자료의 ‘유용’사실이 입증되지 않아도 ‘유출’만으로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고 수급사업자에 대한 원가 내역 등 경영정보 요구 행위가 금지된다.
더불어민주당과 공정위는 지난 8일 당정 협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을 위한 기술 유용행위 근절 대책’을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번 대책은 정부의 노력에도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자료 요구·유용이 줄지 않고 있어 산업 경쟁력과 기술 개발 유인이 크게 저해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공정거래 관련 법 중 하도급법에 최초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등 중소기업 보호 대책은 강하게 구축이 됐지만, 법 집행 조직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기술유용 행위 적발이 신고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보복성 거래 단절 등 우려로 신고가 적어 효과적인 대처에 한계가 있다는 문제도 있었다. 지금까지 기술유용, 부당 기술요구 등으로 공정위로부터 제재를 받은 사건은 각각 1건, 기술요구 서면 미교부도 3건에 불과했다.
당정은 전문적인 법 집행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올해 말 공정위에 기술유용 사건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기술심사자문위원회도 설치하기로 했다.
기술유용 사건 전담조직에는 변리사, 기술직 등 기술 전문 인력이 배치되며 관련 직권사건뿐만 아니라 지방사무소에서 담당하고 있는 신고사건도 맡게 된다.
기술심사자문위원회는 전기·전자, 기계, 자동차, 화학, 소프트웨어 등 5개 분과별로 총 5명의 전문가로 구성되며 정책을 수립하거나 사건을 처리할 때 자문하는 역할을 한다.

내년 기계·車부문 집중 감시
공정위는 전담 조직을 신설한 뒤 내년부터 매년 집중 감시 업종을 선정하고 실태조사를 벌여 신고보다 한발 앞선 직권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직권 조사 대상은 대기업 대부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동반성장위원회는 ‘동반성장지수’ 평가에서 최우수와 우수 등급을 받은 대기업들에게 공정위의 직권 조사에 대한 면제 혜택을 주고 있다. 최우수 등급은 2년, 우수 등급은 1년이다. 다수의 대기업들이 동반성장지수에서 최우수와 우수 등급을 받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재벌들이 공정위의 직권 조사를 피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동반위는 올해부터 동반성장지수 최우수, 우수 등급 기업에게 직권 조사 면제 혜택을 주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지난해 최우수 등급(직권조사 2년 면제)을 받은 기업은 내년이 되면 직권 조사 면제 혜택이 없어진다. 우수 등급은 직권조사 면제가 1년이기 때문에 올해부터 이미 직권 조사 면제 혜택이 없다. 공정위는 대기업들의 직권 조사 면제 혜택이 없어지는 내년부터 집중 조사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내년 첫번째 집중 감시 업종에는 직권조사 한시적 면제 기업이 많아 규제의 사각지대로 꼽혔던 기계·자동차 업종이 선정됐다.
공정위는 이들 업종을 상대로 서면 실태조사를 벌이고 혐의가 발견되는 기업에 대해서는 직권조사를 하기로 했다. 기계·자동차에 이어 2019년에는 전기전자·화학, 2020년에는 소프트웨어가 공정위의 집중 감시를 받게 된다.
기술자료 요구 여부 등에 한정됐던 서면 실태조사도 정당한 사유에 따른 요구 여부, 유용행위 발생 여부, 피해 규모 등을 추가해 이전보다 더 촘촘해진다.
법 위반을 적발하면 일벌백계한다는 방침이다. 기술유용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앞으로 과징금 산정을 위한 관련 매출액 산정이 어렵더라도 정액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고발 조치하는 등 제재 수위가 높아진다.

기술 유출도 적발, 조사 대상 기간도 확대
기술유용은 법 위반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정액 과징금(최고 5억원)을 부과하고 고발한다. ‘3배 이내’로 돼 있는 3배 손해배상제도의 배상액은 ‘3배’로 일괄 적용하는 방안도 공정위 내 법 집행 체계 개선 TF에서 논의할 예정이다.
기술자료의 제3자 유출만으로 처벌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된다.
지금까지 대기업의 기술 유출 행위가 확인되더라도 유용 여부가 입증되지 않으면 처벌이 불가능했다.
수급사업자에 1∼2% 내외의 최소한의 영업이익을 강제하는 족쇄로 악용됐던 원가 내역 등 경영정보 요구 행위도 금지된다.
중소기업이 적정한 기술 단가를 보장받아 혁신과 기술개발에 전념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준다는 취지다.
원사업자의 무임승차를 방지하기 위해 기술 개발에 참여하지도 않은 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공동 특허 요구 행위도 불법으로 규정된다.
‘목적물 납품 후 3년’으로 돼 있는 조사 시효도 7년으로 확대해 기술유용으로부터 더 오랜 기간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거래 전 협상 단계에서 벌어지는 기술유용을 제재할 수 있도록 위법성 판단의 기준을 완화하고 기술자료의 비밀관리 요건 중 비밀 유지를 위한 ‘상당한 노력’은 ‘합리적 노력’으로 개선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대책으로 기술유용은 억제되고 중소기업은 실효성 있는 피해구제가 가능할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는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유인 효과로 산업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신고사건 위주의 적발 제재는 한계가 있는 만큼 피해기업 신고가 없어도 정부 차원의 선제 직권조사 등 보다 강력하고 근본적인 개선책을 만들 것”이라며 “올해 정기국회에서 하도급법 관련 내용을 개정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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