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재근-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이름에는 존재의 특성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나름의 바람이나 의지도 담긴다. 한국경제의 근간인 중소기업에는 그 가능성만큼이나 여러 가지 이름이 있다. 벤처기업, 창업기업, 이노비즈 기업, 스타트업,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 다양하다. 우리말과 외국어를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같은 이름에 대한 관점이나 해석도 미세하게 다르다.
가령, 창업기업과 스타트업이라는 두 이름은 비슷하지만, 결이 다르다. 스타트업이 외국어인 점을 고려하면 스타트업 기업을 창업기업으로 불러도 무방하지만, 스타트업이라는 이름이 창업기업보다는 더 혁신적인 느낌을 준다.
최근 스타트업과 비교되는 또 다른 이름으로 ‘스케일업’이 생겨났다. 외국의 정책사례를 보건데 ‘고성장 기업’과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고성장 기업’은 종사자 10인 이상 기업 중 최근 3개년 이상 고용이나 매출액 성장률이 연평균 20%를 넘는 기업이다. 업력과 업종에 상관없이 ‘성장률’이라는 사후적 속성을 담은 이름이다. 스타트업이라는 이름이 ‘업력’이나 ‘혁신성’ 등 사전적 속성을 품는 것과 차별화된다.
다만, 이러한 차이는 상호 배타적인 구분을 수반하지 않으므로 성과 등을 비교하기는 어렵다. 스타트업이라도 고성장 기업 조건을 만족하면 스케일업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스타트업과 스케일업이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글로벌 기업생태계의 패러다임이 스타트업 중심에서 스케일업 중심으로 옮겨간다거나, 기업생태계의 체질 개선을 위해 스타트업 못지않게 스케일업도 중요하다는 주장이 그러한 경우이다.
스케일업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대두되는 배경에는 세계 경기 회복에 따른 정책패러다임 변화가 깔려있다. 10여년 전 세계는 경기침체 극복을 위해 양적 팽창과 창업 활성화에 집중했다. 창업 활성화는 ‘Start-up America’‘Start-up Chile’‘Start-up Britain’ 등 스타트업 중심의 정책패러다임을 확산시켰다. 스러져가는 기업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업’이 필요했다.
침체의 불씨가 잡혀가고 글로벌 경기회복이 가시화되면서부터는 전환적 시각이 대두된다. 창업 정책이 단순히 ‘새로운 기업’을 만드는 것보다 ‘새로운 성장’을 만드는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Babson 대학의 다니엘 아이젠버그 교수는 창업 활성화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을 ‘나쁜 정책’이라고 비판하기에 이른다. 마침 2014년부터 ‘Scale-up UK’‘Scale-up America’, ‘Scale-up Denmark’ 등 스케일업 중심의 정책패러다임이 싹트고 있다.
또 다른 배경은 지속적이고 질 좋은 일자리 성장의 필요성이다. 낮은 생존율과 때로는 열정페이도 각오해야 하는 창업기업보다는 기존 중소기업을 성장시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일자리의 질도 안정적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기업생태계의 미래에 있다. 투자자금과 고급인재가 창업기업으로 흐르지 않는 기업생태계는 영세한 창업기업들로 가득 찬 채 성장판이 닫히게 된다. 성장을 멈춘 기업생태계는 돈과 사람을 유인할 수 없다. 투자자금은 창업기업이 성장해서 적정 가격에 인수·합병 되거나 주식시장에 상장되는 등 회수가능성이 높아져야 유입된다. 인재는 회사가 성장해서 복리후생이 좋아진다는 비전이 있어야 유입된다. 성장하는 기업생태계만이 경쟁력 있는 창업기업을 배출할 수 있다. 양육부담 없이 아이를 잘 기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야 출산율이 오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새로운 결과를 원한다면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스케일업 기업은 아직은 생소하지만, 일자리 성장이라는 시대적 요구와 글로벌 패러다임의 변화를 잘 반영하는 중소기업의 또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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