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재근(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불평등의 확대, 반복되는 호황과 공황 같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은 19세기부터 계속된 숙제이다. 구체적으로는 ‘분배와 성장 중 무엇이 먼저인가?’라는 질문이 핵심이다.

자본주의의 파멸에 대한 조급하고 과장된 신념에서 출발한 공산주의라는 실험이 실패한 지금도, 분배와 성장의 접점을 찾는 논의는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다.

최근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듯이, 우리나라 중소기업을 둘러싼 정책환경에서도 분배와 성장에 대한 논의는 가열되고 있다. 중소기업 3불(거래 불공정, 제도 불합리, 시장 불균형)의 개선, 영세 자영업자의 생존지원 등이 대표적인 이슈이다. 과거에는 이런 이슈들이 고성장 우산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았다.

중소기업 3불은 중소기업 지원의 효과를 상쇄시키거나 이전시켜 정작 수혜기업에는 지원의 실효성 논란을 일으킨다. 한국 치킨집은 전 세계 맥도날드 매장보다 많아져 버렸고, 다산다사의 창업생태계는 OECD 최저 수준의 창업 3년 생존율이라는 오명마저 남겼다. 생존한 다음에야 성장을 논할 수 있으므로 생존지원이 곧 성장지원인 셈이지만, 안타깝게도 생존지원은 ‘연명’이라는 표현으로 도매금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논쟁

그 밖에 임금정체와 근로시간, ‘금수저’와 ‘흙수저’, 복지와 증세 등 경제 전반에서 성장과 분배의 관점이 어지럽게 충돌하고 있다.

이제는 이러한 정책환경이 중소기업지원의 효과 판단에도 고려돼야 한다. 분배와 성장의 관점에 따라 정책을 구분해 비판의 목적을 명확히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소모적이고 이분법적인 논쟁만 남긴 채 비판은 시간 속에 메아리로 사라지게 된다.

분배 관점의 해법들로는 동반성장, 적합업종지정, 소상공인 금융지원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호혜와 유대의 차원에서 자원의 과도한 쏠림을 막고 기업의 생존유지를 돕기 위한 수단이다. 반면, 한계기업 구조조정, 벤처투자확대, 중견기업지원, 수출지원 등은 성장 관점의 해법들이다.

분배 관점의 정책에 성장성을 강조하거나, 성장 관점의 정책에 형평성을 문제 삼는다면, 정책의 타당성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생기고, 애초 기대했던 결실을 보기 어려울 것이다.

아울러, 분배와 성장의 딜레마는 중소기업지원의 체감도가 낮다는 비판에도 영향을 미친다. 서비스 품질이론인 카노 모델에 따르면, 지원의 적절성과 무관하게, 정책의 속성에 따라서 이용자의 만족도 변화는 달라진다. 어떤 정책은 애초부터 체감도를 높이기 어렵지만, 또 다른 정책은 손쉽게 체감도를 높일 수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컨트롤타워’강화 고민해야

일반적으로 분배 관점의 정책은 ‘정의(justice)’의 차원에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으므로, 제대로 집행돼도 당연하다고 생각할 뿐 만족도는 많이 증가하지 않는다. 카노모델에서는 이를 ‘당연적 품질’이라고 한다. ‘당연적 품질’을 지니는 분배 관점 정책은 체감도에 존치 여부가 영향을 받으면 안 된다.

새로 구매한 신차에 흠집이 없는 경우 고객은 이를 당연하다고 받아들이지만, 만족도 증가가 확연하지 않다고 해서, 신차의 흠집 방지를 소홀히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근본적으로는 중소기업 정책의 컨트롤타워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속적인 지적들도 단순히 부처의 직제와 기능, 재정지원의 효율화를 논하는 차원을 넘어 이러한 딜레마를 풀려는 방편으로서 출발해야 한다.

“배는 엔진의 힘으로 나아가지 않고, 저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아는 힘으로 간다.”
소설가 김훈의 ‘자전거 여행’에 나오는 글이다. 배의 이동력을 생산해 내는 것은 엔진이지만, 이동력이 방향성의 인도를 받지 못하면 눈먼 동력일 뿐, 추진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분배와 성장에 대한 딜레마를 고려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그 접점을 찾아 나가는 것이 중소기업정책의 새로운 방향성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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