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소기업중앙회는 한국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大·中企 양극화 실태와 구조적 문제점을 조명해 보고 동반성장을 위한 대안 모색을 위해 지난달 31일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대·중소기업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책세미나’를 개최했다. 사진=나영운 기자

빠듯한 납품단가 ‘머나먼 상생’…‘갑질문화 청산 하루가 시급’공감대
“최근 들어 원청업체에서 글로벌이라는 명목으로 납품단가를 중국이나 베트남 가격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공장을 놀릴 수도 없는 터라 기존보다 7%까지 내려 납품을 하고 있어요. 물론 외견상으로는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윤이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정말 초저마진이에요.”  < 자동차 부품 하청업체 A대표 >

“저희는 그나마 물량을 더 받는 조건으로 가격을 내렸습니다. 납품 다각화를 하려고 기술개발을 해서 일부 대기업의 납품 의존도를 낮추려고도 해봤지만, 쉽지 않은 길입니다. 그렇다고 기술개발 부족의 문제만도 아니에요. 자칫 원청업체를 여럿 뚫는 사실이 기존 업체에 알려지면 아예 거래가 끊길 수도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하청 공화국에 사는 기분입니다.”  < 전자기기 부품 하청업체 B대표 >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위해 정부와 유관기관이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이러한 어려움과 애로가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대기업의 하청업체들은 원청업체와의 양극화 심화에 따른 미래 성장을 점칠 수 없는 실정이다.        

50년 하청경제…양극화 잉태
사실 한국경제는 하청경제 구조로 일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1970년대 중화학 산업을 집중 육성할 때부터 단일 하청경제 구조를 서서히 구축해왔던 셈이다. 이어서 대기업들이 완제품을 해외시장에 내다 팔면서 수많은 부품 업체와 협력 업체들이 꼬리를 물었다. 하청은 재하청으로 이어졌고 또 재재하청까지 파생되면서 거대한 피라미드를 형성했다.

문제는 하청경제 구조 아래에서 대기업인 원청업체와 협력업체들 간의 상생 생태계가 점점 무너져 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제조업 중심의 한국경제에서는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에 끊임없는 품질 개선, 납품단가 인하, 이윤 독점 등을 반복해 온 것. 반면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같은 대기업들은 가격과 품질 경쟁력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단시간에 성장하는 성공신화를 이룩했다. 이러한 착취구조의 생태계는 21세기 들어서도 전혀 변하지 않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달 29일 산업연구원이 △자동차 △전자 △철강 △조선 △기계 등 5개 업종 대기업에 납품하는 1, 2차 협력사 1186곳의 1999∼2013년 매출, 영업이익, 부채비율, 연구개발(R&D) 투자액, 임금 등 경영지표를 분석한 결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양극화의 심화가 어떻게 진행돼 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

조사결과, 삼성전자의 국내 영업이익률은 2008년 5.7%에서 2009년 7.2%, 2010년 11.0%, 2011년 8.1%, 2012년 13.1%, 2013년 13.8%로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같은 기간 삼성전자 협력업체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4.6%, 6.4%, 7.2%, 4.5%, 4.2%, 4.2%로 오히려 후퇴한 것으로 파악됐다. 2012∼2013년 협력사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삼성전자와 비교하면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현대자동차도 삼성전자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현대차그룹 계열 부품사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008년 8.2%, 2009년 9.7%, 2010년 10.0%, 2011년 9.3%, 2012년 9.9%, 2013년 9.3%를 기록했다. 하지만 비계열 부품사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같은 기간 3.6%, 3.3%, 5.4%, 4.2%, 3.6%, 3.3%에 그쳤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하청업체 관계자는 토로한다. “하청업체들에게는 3%의 불편한 진실이 있습니다. 대부분 하청업체의 영업이익률은 3%대를 유지합니다. 이는 간신히 생존할 수 있는 이윤폭이에요. 남는 게 없는데 어떻게 기술개발을 하고 고급인력을 충원하겠어요.” 그는 덧붙인다. “그렇다고 이마저 내팽개치고 홀로 독립하기도 막막합니다. 국내 제조업은 내수시장만 가지고 먹고 살기가 힘들어요. 수출 대기업의 하청업체가 되지 않고 기업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3% 늪을 벗어날 수 없는 겁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1월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 산업에서 독과점 구조가 형성돼 선도 대기업의 지배력이 강화되고 협력업체의 의존도가 높아졌습니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국내 제조업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대기업과 달리 협력업체들은 성장의 과실을 제대로 향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그는 지적한다. “종속도가 높아진 협력업체들이 빠듯한 납품단가를 맞추려고 설비 자동화에 치중하다 보니 고용도 둔화되고 있는 거죠. 대기업의 산업별 수직계열구조 및 중소기업 전속거래의 효율성에 대한 점검과 임금 수준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내수시장이 취약한 한국경제에서 수출 대기업이 언제나 갑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기중앙회, 양극화 해소 화두 던져
이러한 대·중소기업간 오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중소기업중앙회(회장 박성택)는 지난달 31일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대·중소기업 양극화 해소 위한 정책세미나’를 열고 양극화 현황 진단과 해결방안에 대한 본격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이날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인사말에서 “최근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경제의 불확실성이 증가하면서 가계와 기업의 소비와 투자가 줄어들어 내수부진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며 “이에 반해 대기업의 유보금은 사상 최대(10대 대기업 500조원)를 갱신하면서 수출로 번돈이 가계소득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박 회장은 “지난 1월 중소기업 경영환경조사 결과 응답기업의 절반이 지난해보다 올해 경영환경이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고 투자와 자금, 가동률 등 대부분의 지표 또한 부정적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특히 박 회장은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구조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위기의 한국 경제를 살리는 해법은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에 있다”며 “중소기업이 땀흘린 만큼 정당한 값을 받을 수 있도록 중소기업경제구조위원회 설치를 통해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만들어 나가는데 노력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날 세미나에는 정우택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 김동철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장, 대·중소기업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의 ‘주력산업 협력업체 경영성과 분석과 시사점’을 주제로 발표를 했다.

이어 김상조 한성대 교수, 조동근 명지대 교수, 이봉의 서울대 교수,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 박충렬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 김관주 동반성장위원회 본부장, 김경만 중기중앙회 본부장이 패널로 참여해 대·중소기업 양극화 문제 해법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이날 이항구 연구위원은 “국내 5대 제조업종 협력업체의 영업이익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으며, 특히 대기업 계열·비계열 및 규모별로 그 격차가 확대되는 추세”라며 “협력업체의 성과 격차 심화는 투자부진과 임금 격차 확대로 이어져 중소기업의 혁신 저해는 물론 우수인력 기피 현상을 심화시키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패널들은 대기업과 협력업체(중소기업) 간 거래에 있어 무조건적인 정부개입은 지양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면서도 불공정한 거래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봉의 서울대 교수는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자금과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가 대기업과의 불공정 거래”라며 “협상 시 대기업의 지나치게 우월한 지위를 어느정도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중기중앙회가 지난해 말 대기업 협력 중소제조업체 3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중소제조업 하도급거래 실태조사’을 살펴보면 이같은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조사 결과, 협력업체의 46.0%가 납품단가의 적정성에 대해 ‘적정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납품단가가 적정하지 않다고 응답한 이유로는 ‘원자재 가격상승분이 부분반영 됐으나 가격인상이 충분치 않음’(36.2%)을 우선 꼽았고, 다음으로는 ‘치열한 가격경쟁으로 납품단가 인하 불가피’(31.9%)가 그 뒤를 이었다.

또한 이른 바 ‘납품단가 후려치기’(부당한 하도급대금 결정·감액) 관행도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당한 방법으로 인해 일반적인 지급 대가보다 현저하게 낮은 수준으로 하도급대금(단가)이 결정된 경험이 있는 업체는 전체의 8.0%로 조사됐다. 아울러 하도급대금 감액(단가인하)을 경험한 업체는 10.3%로 조사됐다. 특히 조사대상 기업의 6.0%에 해당하는 18개사는 귀책사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부당하게 감액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양극화…대·중기간 임금격차 원인
이처럼 중소기업이 정당한 몫을 챙기지 못하면서 대기업과의 임금 격차는 점점 벌어지는 추세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사업체 규모별 임금 및 근로조건 비교’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각각 359만8000원, 204만원이었다. 10년 전인 238만원, 142만3000원에서 각각 121만8000원, 61만7000원 늘어난 것이다.

이를 월평균 상대임금 격차로 따져보면 대기업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을 100원이라고 가정할 때 2004년에 중소기업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59.8원이었는데 지난해에는 56.7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시간당 평균임금은 1만2311원, 7179원에서 2만397원, 1만1424원으로 올랐는데 이 역시 대기업 근로자의 시간당 평균임금을 100원으로 봤을때 중소기업 근로자의 시간당 상대임금은 58.3원에서 56원 수준으로 하락했다.

김경만 중기중앙회 본부장은 “기업의 양극화 문제는 산업별로 서로 다른 기준으로 접근해야 실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중기중앙회가 산업정책본부 신설을 통해 업종별, 산업별 정책방안을 제시하고 오늘 논의된 현장의 목소리도 정부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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