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년 된 과자공장을 리모델링한 미국 뉴욕 첼시마켓. 과거의 역사와 원형을 보존하려는 뉴욕시민들의 마음이 전해진다.

겉은 허름, 문턱 넘으면 갤러리 방불
[중소기업뉴스=김도희 기자] 1997년 4월 문을 연 첼시 마켓은 뉴욕의 전통시장으로 식재료의 보고다. 허름하기 그지없는 빨간 벽돌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멋진 갤러리에 빈티지한 카페와 즉석에서 빵을 구워 주는 베이커리, 꽃집 등 뉴욕식 문화 공간이 시장으로 들어온 듯하다. 첼시 마켓은 우리나라의 전통시장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데, 자연 발생적으로 생긴 시장이 아니라 1890년 세워진 과자 공장이 시장으로 새롭게 재탄생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번쯤 먹어 보았을 오레오 쿠키가 처음 태어난 곳이 바로 여기다.

100년이 넘어 색이 바래고 낡은 붉은색 벽돌은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해주었다. 천장 곳곳에 노출된 파이프도 허름해 보이기보단 오히려 앤티크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공장에서 작업용으로 쓰던 엘리베이터도 아직 운행되고 있어 현대의 고객들을 실어 나르며 시간 여행을 떠나게 해준다. 버려진 송수관을 그대로 살려 중앙홀에 인공폭포를 조성했고, 원래 공장 건물을 관통하던 기차선로는 인테리어 장식으로 활용했다.

이곳에서 파는 식재료는 품질이 뛰어나 주변의 고급 호텔로도 공급된다고 한다. 시식 코너도 잘돼 있어, 하나 사려던 것도 두개 이상 사게 했다. 구입한 음식을 편하게 맛볼 수 있도록 발길 닿는 곳마다 탁자와 의자들이 설치돼 있었는데, 저마다 독특한 디자인을 자랑하고 있었다. 또한 시장 벽면에는 빵, 쌀, 야채, 과일, 초콜릿으로 만든 익살스러운 작품들이 걸려 있어 갤러리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줬다.

첼시 마켓은 구석구석에서 기발하고 창의적인 보물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했다. 분명 낡고 오래됐는데 오히려 더 세련되고 모던한 느낌이 드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옛것과 새것의 조화였다. 원래 있던 것들의 멋을 살리는 리노베이션으로 시장을 살려 낸 것이다. 첼시 마켓의 성공 사례는 옛것을 부수고 번쩍이는 새 건물을 짓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보여 준다.

오래된 시장을 되살리는 것이 매력적인 이유는 시장이 그 도시의 역사, 나아가 ‘서민들의 삶’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은 단순히 상점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이며 공동체의 철학을 담고 있는 질그릇과 같다. 우리나라의 전통시장도 이제 누군가를 따라 하거나 닮으려는 노력을 멈춰야 한다.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기 보다는 나만 가지고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할 때다.

 
- 글 : 이랑주 한국VMD협동조합 이사장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