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러마켓의 농산물 가게 주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신선한 식재료를 판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버섯과 브로콜리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진열돼 있는 가운데 무섭게 생긴 할로윈 호박이 고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생산 농어민의 ‘신뢰’를 팝니다
[중소기업뉴스=김도희 기자]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이면서 런던 시민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시장이 있다. 바로 1276년 문을 연 버러 마켓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식재료 시장으로 영국 각지에서 최고 품질의 식재료가 판매되는 곳이다. 주말이면 자연산 버섯에서부터 판매자가 직접 재배하고 기른 신선한 야채와 과일, 육류와 해산물, 수제 초콜릿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먹거리를 구하기 위해 이곳으로 모여든다.

이 시장이 왜 이렇게 인기인지 이곳에 처음 와본 나도 그 이유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신선한 먹거리를 팔기 때문이다. 밭에서 금방 따온 것 같은 과일과 야채는 어떠한 연출이나 장치 없이도 자체발광 중이었고, 살아서 펄떡거릴 것 같은 생선과 선홍색 빛깔의 육류 등 세계 최고의 식재료로 버러 마켓은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한 치즈 가게 앞에 재미있는 입간판이 서 있었다. ‘제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요?’ 그리고 그 아래에는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져 여기까지 왔는지 치즈의 유통 경로가 상세히 설명돼 있었다. 그뿐 아니라 가리비를 파는 가게에는 사장님이 직접 잠수복을 입고 보트를 끌고 가리비를 잡으러 가는 사진이, 사슴 고기를 파는 가게에는 주인아저씨가 총을 들고 사냥감을 겨냥하고 있는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이 시장에서 고객들이 사는 것은 물건만이 아니었다. 생산자와 원산지에 대한 신뢰를 함께 사는 것이다. 전국 최대의 농산물 시장인 서울 가락시장이나 부산 감전동 새벽 시장에도 농산물을 재배하는 농민의 모습이나 과일을 따는 할머니의 미소가 담긴 사진을 부착한다면, 시장에서 판매하는 상품에 대해 고객들이 더 신뢰감을 갖게 되지 않겠는가.

또한 버러 마켓에는 시장에서 발행하는 요리책이 있다. 수십년간 버섯을 팔아 온 아주머니만큼 버섯을 가장 맛있게 요리하는 방법을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입으로 전해 주던 것을 나중에는 종이에 적어 복사해줬고, 세월이 흐르면서 그것들을 모아 책으로 내게 됐다고 한다.
‘버러 마켓 요리 책’은 특히 제철에 먹어야 할 음식들이 잘 소개돼 있어 시장을 찾는 고객들에게 인기만점이었다.

버러 마켓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단순 판매 기능만을 가진 대체 가능한 시장이 될 것인가? 스토리와 재미, 경험을 공유하는 대체 불가능한 시장이 될 것인가? 버러 마켓은 내게 그 답을 알려 줬다.

-글 : 이랑주 한국VMD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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