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 소송·실적부진·CEO리스크 
마침내 전면전이 임박한 분위기다. 지난달 24일이었다. 건강보험공단은 이사회를 열고 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흡연 피해 소송에 나서기로 의결했다. 보건의료단체들도 건강보험공단을 응원하고 나섰다. 김종대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흡연으로 인한 누수액은 1조7000억원에 달한다”며 “이는 국민이 내는 한달치 보험료에 해당되고 의료수가를 6% 인상할 수 있는 재원이자 4대 중증질환을 추가 재원 투자 없이 보장할 수 있는 엄청난 금액”이라고 강조했다. 법리 근거도 있다. 2011년 고등법원은 소세포 폐암과 편평세포 후두암이 흡연과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건강보험공단은 우선 두 암과 관련한 담배 소송을 제기한다는 방침이다.
물론 건강보험공단의 담배소송에는 장애물이 많다. 무엇보다 정부 안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기획재정부는 반대다. 보건복지부는 미온적이다. 그런데도 김종대 이사장은 KT&G에 대한 담배 소송을 강행할 태세다. 게다가 WTO를 비롯한 국제기구까지도 한국의 담배 소송을 지지하고 나서는 모양새다. 전 세계 흡연 전문가들도 건강보험공단의 담배 소송 재판에서 앞다퉈 증언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전면전이 개전되면 곧바로 확전될 양상이다.
KT&G 입장에서 보자면 전대미문의 리스크다. 미국에서도 반세기 동안 담배 회사를 상대로 한 개인의 소송은 대부분 기각됐다. 담배가 암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담배 회사가 중독성을 높이기 위해 성분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면 전환이 이뤄졌다. 주정부가 원고로 나섰고 1999년 결국엔 담배 회사가 패소했다.
한국 역시 유사한 양상을 띠게 될 수도 있다. 1999년 처음 시작된 개인 소송은 모두 원고가 패소했다. 건강보험공단이 원고로 나서면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 개인 대 회사의 싸움이 아니라 집단 대 집단의 싸움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KT&G는 최근 수년 동안 지속적으로 실적이 악화돼왔다. 2013년 KT&G의 매출은 3조8000억원이었고 영업이익은 1조130억원이었다. 당기순이익은 5593억원이었다.
2012년에 비해 매출은 4.1%가 줄었다. 영업이익은 2.2%가 감소했다. 당기순이익은 무려 22.9%가 줄어들었다. 국내 담배 소비량이 줄어들어서란 분석도 있다. 정작 한편에선 청소년과 여성 흡연량은 오히려 늘었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실적 악화를 시장 변화 탓으로만 돌리긴 어렵단 얘기다.
분명한 건 KT&G의 전략적 실패가 실적 악화의 큰 원인이란 사실이다. KT&G는 담배 사업 이외의 사업에 진출하는 다각화 전략을 써왔다. 2010년까지만 해도 KT&G의 계열사는 15개에 불과했다. 2013년에는 26개까지 늘어났다. 불과 4년만에 두 배로 증가했다. 대부분 담배 이외의 사업에 진출하려고 세운 계열사들이다. KT&G는 화장품업체 KGC라이프앤진을 세워서 700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했다. KGC라이프앤진의 주력 제품은 한방화장품이었다. 소망화장품까지 인수하면서 포트폴리오를 중저가 시장까지 공격적으로 확대했다. 결국 KGC라이프앤진은 130억원이 넘는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KGC라이프앤진 뿐만이 아니다. 전체 26개 계열사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적자 상태다.
지난해 말엔 민영진 KT&G 사장이 부동산 개발 비리에 연루되면서 CEO리스크까지 불거졌다. 민영진 사장은 서울 남대문 레지던스 호텔 지구단위계획 변경 용역을 발주하면서 용역비를 과다지급해서 회사에 30억원 가까운 손실을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KT&G는 민영진 사장에 대한 혐의가 사실 무근이며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었다는 입장이다. 어쨌든 민영진 사장이 지난 5년 동안 KT&G의 경영 다각화를 주도해왔다는 점에서 위기일 수밖에 없다. 다각화의 결과가 안 좋은 상황에서 CEO리스크까지 발생한 꼴이다.
KT&G는 세금 추징까지 당했다. KT&G가 외항선원용 담배를 수출용 담배로 무단 용도 변경한 탓이다. 추징금 규모도 800억원 수준이라 상당하다. KT&G는 의도적이었다기보단 절차상의 문제였다는 입장이지만 어느 쪽이든 내부 조직력의 취약점이 노출된 셈이다. KT&G가 수년 째 주력해온 해외 시장 개척도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전 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금연 운동도 KT&G에겐 좋을 게 없는 흐름이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보험공단이 공격적인 담배 소송까지 제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의 담배 소송은 소송 제기도 쉽지 않지만 시간도 오래 걸릴 일이다. 개인 담배 소송도 1심 판결이 날 때까지 7년이 걸렸다. 정작 담배 소송은 승패를 떠나서 소송 자체가 담배 소비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홍보 효과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KT&G 입장에선 불리한 담배 관련 정보들이 대중들한테 각인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주식 시장에선 2014년 KT&G의 턴어라운드를 기대하는 눈치다. 정작 KT&G를 둘러싼 경영 환경은 먹구름 투성이다.

-글 : 신기주(경영전문칼럼니스트 / 「사라진 실패」 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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