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철기업 마구잡이 인수 ‘잃어버린 5년’
지난 1일 포스코가 인도네시아에 세운 인니 제철소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제철소 고로의 출선구에 균열이 발생했다. 틈새로 쇳물이 흘러내렸다. 지난해 12월23일 화입식을 갖고 공장을 가동시킨 지 일주일만이다. 화입식 직후 고로에서 쇳물이 흘러나오는 사고가 난 건 포스코 철강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실적 악화에 사고까지 겹쳤다. 안 그래도 포스코는 지난 수 년 동안 고전에 고전을 거듭했다.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이 결정타였다. 2012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38%나 줄어들었다. 무디스는 재빨리 포스코의 신용등급을 낮췄다. 이젠 Baa2까지 곤두박질쳤다. 신용도가 바닥을 쳤다.
지금 포스코는 잃어버린 5년을 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포스코는 2008년에 매출 41조원, 영업이익 7조원의 초우량 기업이었다. 영업이익률은 18%에 달했다. 위대한 기업이었다. 정작 2013년 영업이익은 2008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영업이익률은 5%다. 고만고만한 기업 수준이다. 실적만 놓고 보면 분명 포스코는 위대한 기업에서 평범한 기업으로 전락했다.
물론 외부 환경적 요인이 컸다. 2008년 금융위기로 시작된 전 세계 경기 침체로 철강 수요가 쪼그라들었다. 세계 철강 시장은 사실상 아르셀로미탈과 신일본제철과 허베이, 바오산이 유럽과 일본, 중국 철강 시장을 분점한 구조다. 게다가 이들은 불황에도 생산량을 줄이지 않았다. 특히 중국 업체들은 가격까지 낮췄다. 과잉 생산이 발생했다. 여기에 원자재 가격 상승까지 겹쳤다. 포스코로선 사면초가였다.
그렇다고 포스코가 하늘만 탓하며 넋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위기에 대응했다. 경쟁 철강 업체들의 마수가 미치지 않는 신시장을 개척했다. 인도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세웠다. 중국에도 여러 곳에 공장을 건설했다. 단순히 철강 제품을 팔고 마는 게 아니라 현지에 공장을 세워 해당 시장의 철강 산업을 선도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철강 일변도의 사업 포트폴리오도 재편한 셈이다.
포스코는 적극적으로 인수합병 시장에 뛰어 들었다. 비철 기업들을 마구 인수했다. 대우인터내셔널 같은 굵직한 인수합병도 성사시켰다. 현재 포스코의 계열사는 70개가 넘는다. 몇 년 사이에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게다가 해외자원 사업에도 주머니를 아낌없이 열었다. 원재료 상승 압박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철강 업체 사이에선 원자재 쟁탈전이 벌어질 정도였다. 포스코는 동남아와 남미부터 아프리카와 시베리아까지 종횡무진하며 해외 자원 개발에 매진했다. 지난 5년 공격적인 경영 드라이브를 걸었다.
결과적으로, 지금 포스코는 위기다. 이 모든 전략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외환에 내우까지 겹쳐버렸다. 포스코가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은 이유다. 투자자들과 전문가들은 당장 적자투성이의 해외공장을 정리하라고 난리다. 2012년엔 중국과 인도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일제히 당기순손실이 나면서 포스코의 실적을 악화시켰다. 아연도금강판을 만드는 중국 다롄 공장은 자본 잠식 상태다. 돈 못 버는 비철 계열사를 구조조정해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다시 철강에만 집중하라는 주문도 이어진다. 쇳충이는 쇳물을 먹어야 한다는 논리다.
포스코가 철강에 집중해야 하는 건 맞다. 인니 공장에서 망신스러운 사고가 발생한 건 분명한 적신호다. 포스코가 믿을 건 언제나 기술력뿐이었다. 규모로는 아르셀로미탈을 넘을 수가 없다. 가격으로는 허베이보다 불리하다. 이제 권오준 포스코 신임 회장이 복원해야 할 포스코의 기술 DNA다. 권오준 신임 회장은 기술부문 사장이었다. 적임자다.
다만 포스코가 지난 5년을 몽땅 부정해야 하는 건 아니다. 포스코의 위기 대응 전략은 틀린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위기를 맞아 움츠리기보단 블루오션을 찾아 나섰다.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려고 해외로 나섰다. 현지 공장을 세워서 시장 지배력을 높이고 물류비용도 낮추려고 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던 전략에서 탈피했다. 비철 계열사를 늘렸다. 해외 자원을 개발해서 우선 철강 원자재 수급 불안부터 해소하려고 했다. 동시에 자원 개발로 대박도 내보려고 했다. 분명 포스코의 위기 대응 전략은 전형적이고 교과서적이었다. 그렇다고 오답도 아니었다. 겨냥을 제대로 했으나 과녁을 꿰뚫지 못했을 뿐이다.
포스코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최고경영자가 흔들리는 CEO리스크를 여전히 안고 있다. 태생적 약점이다. 포스코가 진득하게 수확기를 기다리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어떤 사업은 정리해야 하고 어떤 사업은 정돈해야 하는데도 도매급으로 넘어가기 쉽다. 여론이 그런 포스코를 더 흔든다. 당장 갈아엎으라고 요란을 떨기 마련이다. 그런 여론에 휘둘렸다가는 실적 악화를 견뎌가며 심어놓은 성장의 씨앗들이 싹도 못 틔울 수도 있다. 분명한 건 포스코는 과거의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는 거다. 그렇다고 과거를 모두 부정할 필요도 없다. 권오준 신임 회장의 머릿속이 복잡한 이유다.

글 : 신기주(경영전문칼럼니스트 / 「사라진 실패」 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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