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가 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회장 김기문)가 발간한 ‘2013 중소기업 위상지표’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최근 5년간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만든 일자리는 194만9000명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29만6000개나 증가했다. 증가 비율로 따지면 고용인원은 18.3%, 사업체는 10.1% 확대된 셈이다.
우리나라 전체 1453만개 일자리 가운데 중소기업 일자리는 ‘88%’가 넘고, 전체 기업 323만개 중 ‘99%’를 중소기업이 차지한다. 이렇게 한국경제의 튼튼한 허리 역할을 하는 중소기업을 두고 ‘9988’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박근혜 정부도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인식해 창조경제의 핵심 원동력을 중소기업의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로 삼고 있는 분위기다. 경쟁적으로 정부 부처들이 솔선해서 중소기업들이 겪는 여러 ‘손톱 밑 가시’를 적극 뽑겠다고 나서는 이유다.

하지만 일할 사람이 없다.
줄곧 중소기업의 일자리는 늘어나는 추세지만, 막상 생산현장에 가보면 일할 사람이 태부족인 경우가 수두룩하다. 중소기업들이 제때 사람을 구하지 못해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중소 제조업체들의 만성적인 인력난은 경영 위기를 초래하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력난은 내수부진, 자금난과 함께 중소기업의 성장 발목을 잡는 악재로 작용한다.
경기도의 한 중소 제조업체 대표는 “생산직 근로자를 모집하는 공고를 내봐도 지원하는 사람은 거의 만나기 어렵다”며 “이제는 주로 인력충원을 고용노동부의 외국인 고용 프로그램을 통해 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생산시설을 돌리는 데에 역부족인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일자리는 많은데 일할 사람이 부족한 중소 제조업체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외국인 근로자(E9 비자) 도입 프로그램도 중소기업 인력 가뭄에 단비가 되진 못하고 있다. 현재 중소 제조업체들은 내국인의 취업 기피로 인해 외국인력 없이는 사실상 생산 활동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문제는 정부의 외국인 근로자 도입쿼터 제도에 따라 매년 쓸 수 있는 인력이 제한된다는 점이다. 올해 배정된 외국 인력은 5만2000명에 불과하다. 지난해 4만명과 비교하면 다소 증가한 수치지만 대부분의 외국인력 배정이 매년 상반기에 거의 소진될 정도로 공급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중소제조업 인력부족률 9.6%
인천에서 파이프 부품 공장을 운영하는 A대표는 “지역 고용지원센터를 통해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 쓰려고 하지만 외국 인력을 요구하는 업체만 수백 곳에 달해 경쟁이 만만치 않다”며 “대기자 명단에 있어도 언제 일손을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외국인 근로자가 없으면 생산현장을 돌릴 수 없는 중소 제조업체의 실상을 말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올해에는 외국인 근로자 가운데 체류기간 만료에 따른 출국 예정자가 6만7000명에 달해 정부 차원에서 외국인력 공급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 입국해서 근로할 수 있는 기간이 최대 4년 10개월이다. 단기 노동인력이기 때문에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해도 중소 제조업체들은 항상 인력충원에 신경써야 하는 상황이다.
중기중앙회가 최근 2101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3 중소기업 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소 제조업의 인력 부족률은 9.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0인 제조업체의 인력 부족률은 20.1%, 5인 이하 제조업체는 26.2%로 집계돼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인력난에 더 시달리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인력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외국인력 신규도입쿼터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주장이다.
중기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외국인 근로자 신청 결과를 감안할 때 내년도 외국인 근로자 도입쿼터는 올해보다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외국인 근로자 고용 이후에도 제도적 장치가 보완돼야 한다는 요청도 쇄도하고 있다. 중기중앙회 조사결과를 보면 외국인을 고용하고 있는 중소제조업의 입장에서 가장 시급하게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제도로 ‘불성실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제재수단 부재(27.2%)’를 가장 많이 꼽았다.
현행 고용허가제에서는 중소기업 대표가 3년 이내의 계약기간에 합의하고 외국인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외국인 근로자들이 불성실한 태도로 생산현장에 근무하고 있어 고용주 입자에선 이들을 제재할 법적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요구한다.

◇주물공장 등 뿌리산업 구인난 심각해
“뿌리산업의 구인난이 특히 심각합니다. 구직자들이 단순히 ‘작업환경이 열악할 것’이라는 편견이 많고 뿌리산업을 이끌어나갈 인력 배출 기관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대전에서 주물공장을 운영하는 B대표의 하소연이다. 그는 “방송이나 언론에서도 주물공장 같은 곳을 극한 상황에나 어울리는 장소로 묘사하는데 이게 구직자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전달될 수밖에 없지 않나”고 비판했다.
뿌리산업은 제조업의 근간이 되는 주물, 도금, 단조, 금형, 용접, 금속열처리 등 6대 산업을 말한다. 자동차·조선·IT 등 다른 산업의 제조과정에서 최종 제품의 품질경쟁력 제고에 필수적인 요소 산업이다.
지난 4월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뿌리산업은 그동안 우리 경제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으나 정부 등 사회적 주목을 받지 못했다”며 ‘뿌리산업특별위원회’를 발족할 만큼 그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분야다.
뿌리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학에서조차 주조공학을 가르치는 곳이 없기 때문에 인력 배출이 안되고 엔지니어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며 “그걸 가르칠만한 교수도 전무한데 어떻게 뿌리산업을 살려야 할지 깜깜하다”고 지적했다.

◇中企에 대한 인식개선도 급선무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청년실업은 넘쳐나는데 중소기업은 인력난에 허덕이는 현실은 새삼스런 것은 아니지만 정부의 온갖 노력에도 뚜렷한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어 문제다”고 역설했다.
지난 8월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울산 온산산업단지를 방문해 입주 제조업체들과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정부가 주택구입 지원이나 대출금리 우대, 산업단지 내 통근버스 운영 등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인력 미스매치를 해소하기 위한 정부차원의 대안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관련 업계는 무덤덤한 분위기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지난 정부 때에도 중소기업 인력 미스매치를 해소하기 위한 국민 캠페인을 실시한 걸로 알지만 중소기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더 나빠졌다”며 근본적인 사회인식 개선 작업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중소기업에 입사하면 장가를 못 간다거나 대출 받기도 힘들다는 등 중소기업에 대한 그릇된 사회인식 개선도 필수적인 해결 과제란 뜻이다.
한편 관련 업계에서는 마이스터고나 특성화고를 중심으로 산업체로부터 요청을 받고 학생을 선발해 학교와 협약하는 산학 연계 프로그램을 확대해 전문대학까지 포함시킨다는 대책을 강구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밖에도 대기업이 하청 중소기업의 근로자 복지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소기업 일자리에 대한 유인책이 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도 쏟아진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정부가 인력난 해결에 있어 시급한 문제부터 해결하는 능동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문한다.
정부는 ‘고용창출’을 목표로 시간을 갖고 다양한 정책을 수립해 시행하고 있지만 수많은 중소 제조업체들은 ‘고용유지’도 어려운 상태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체의 한 관계자는 “당장 외국인 근로자 채용의 문을 활짝 열지 않으면 일할 사람이 없어 폐업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발생할 것”이라며 중소 제조업체의 인력 가뭄에 단비 같은 제도적 장치를 서둘러 마련해 줄 것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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