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군포에 있는 한 건설인테리어 중소업체의 A사장은 이번 추석을 코앞에 두고 극심한 자금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20년 가까이 회사를 운영했지만 올해처럼 돈 걱정을 한 때도 드물다”고 심경을 토로할 정도다. 특히 건설경기 불황이 장기화되고 수주 물량도 매년 곤두박질치고 있는 상황에서 추석 명절이 마냥 반갑지만 않다고 호소한다.
A사장은 “주변을 보면 추석을 기점으로 회사 문을 닫는 중소업체들도 부지기수”라며 “은행권이나 거래업체에 추석 자금을 구하러 발품 파는 일도 이젠 지쳤다”고 하소연 했다. 평소 자금난을 겪는 중소기업에겐 이번 추석이 사업존폐를 결정해야 하는 고비가 되는 셈이다.
특히 추석 자금난이 중소기업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추석 자금은 주로 임금(상여금 등)과 원자재 구입 등 단기 운전자금을 말한다. 평소 여분의 운전자금을 비축하고 있지 못하는 중소기업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자금 지출이 가중되는 추석 명절은 그야말로 경영위기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중앙회(회장 김기문)가 최근 전국 631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추석 자금난에 곤란을 겪고 있다’고 응답한 중소기업은 43.6%에 달했다. 회사 운영을 위협할 만큼 ‘매우 곤란하다’고 답한 중소기업도 11.5%에 달했다.
이에 비해 ‘자금 사정이 원활하다’고 답한 중소기업은 13.4%에 불과했다.
최근 5년간 ‘곤란하다’고 응답한 중소기업은 평균 45%를 넘어 추석 자금난이 중소기업에게 있어 고질적인 ‘손톱 밑 가시’인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중기업(31.2%)보다 소기업(45.7%)이, 수출기업(34.7%)보다 내수기업(45.4%)의 자금 사정이 상대적으로 곤란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수중심의 소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추석 자금난에 더 노출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중소기업들이 추석 자금 사정에 부담을 느끼는 원인은 뭘까. 가장 큰 이유로 68.2%(복수응답)의 중소기업이 ‘매출감소’를 꼽았다.
이어서 ‘판매대금 회수지연’(49.2%)을 자금 사정의 부담 원인으로 답했다. 이밖에도 납품단가 인하(34.1%), 은행차입 곤란(15.9%) 순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추석과 비교해보면 올해도 내수부진 등에 따른 매출감소와 판매대금 회수지연,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어려움을 가장 많이 지적하고 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은행들의 옥석가리기 때문에 추석 돈가뭄이 더 심해졌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우량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 쏠림 현상과 같은 문제점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은행들이 자금이 절실한 중소기업은 외면한 채 우량 중소기업에만 돈 빌려주기에 급급하지는 않은지 정부와 금융당국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꼬집어 말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은행을 통한 자금조달 상황에 대해 ‘곤란하다’는 업체가 26.3%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소기업 가운데 은행차입이 곤란하다고 답한 비율은 27.6%로 나타나 중기업 17.9%로 보다 1.5배 이상 높았다. 소기업의 경우 은행들이 우량 중소기업 기준으로 삼는 신용평가등급 기준 등에서 불리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은행의 높은 문턱을 실감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은행으로부터 자금조달이 곤란한 이유로 ‘신규대출 기피’(43.9%, 복수응답)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혔다. 그 다음은 ‘금융비용 증가’(34.4%), ‘추가담보요구’(29.8%)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추석과 같이 매출감소로 경영여건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신규대출이 어려워지고 금융비용에 대한 부담으로 중소기업은 은행차입에 어려움을 크게 느끼는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 발표한 한국은행의 시중은행 기업대출 분석 자료를 살펴보면 은행의 대출차별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중소기업 대출 가운데 우량기업(회사채 등급 AA 이상)에 대출된 금액은 182조원(2007년 6월말)에서 308조원(지난 3월)으로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중소기업 대출에서 절반을 약간 웃돌던 우량기업 대출 비중이 65.6%로 증가했다. 반면에 비우량 중소기업(회사채 등급 BBB 이하) 비중은 같은 기간 42.4%에서 28.4%로 축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계의 한 관계자는 “돈을 떼일 가능성이 낮은 우량 중소기업에게 돈을 빌려주는 게 은행을 운영하는 경영진과 주주들의 기본 방침이겠지만 돈이 필요한 곳에 흘러가도록 힘써야 하는 은행의 본질적인 기능은 점점 퇴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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