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로 만든 섬유가 철보다 강하고 단단할 수 있을까? 최근 일본의 한 제지업체와 대학이 철보다 단단한 식물섬유를 개발해 주목을 끌고 있다.
철보다 강한 섬유로 불리는 셀룰로오스 나노섬유는 나무 펄프, 볏짚, 보릿짚과 같은 농산폐기물, 사탕무나 사탕수수 등을 분해해 만든 초극세 섬유를 말한다. 여기서 셀룰로오스는 식물 세포벽을 구성하는 기본골격물질로 고유의 미세결정구조를 갖고 있어 장력이 매우 강한 것이 특징이다.
셀룰로오스 나노섬유는 다양한 장점을 갖고 있다. 먼저, 뛰어난 기계적 강도를 들 수 있는데, 철과 비교해 보면 무게는 5분의 1에 불과하나, 강도는 5배나 높다.
또한 열 변형이 대단히 적어 온도변화에 대한 내성도 탁월하다. 산소나 수분의 투과를 막는 배리어 역할도 우수하다. 뿐만 아니라, 바이오매스 등을 원료로 하기 때문에 고갈 염려가 없고, 다 쓰고 나면 생분해돼 환경친화적이다. 
이렇게 장점이 많은 셀룰로오스 나노섬유는 비교적 고가인 생산 프로세스가 상용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런데, 최근 경제성을 높이는 기술적 돌파구들이 나오고 있다.
가장 주목받고 있는 기술은 도쿄대학의 이소가이 교수가 개발한 TEMPO 촉매 기술인데, 종이를 만들 때 사용하는 목재 펄프를 물에 분산시킨 후, TEMPO 촉매를 첨가하고 2시간만 섞어주면 셀룰로오스 나노섬유를 만들 수 있다.
이소가이 교수는 현재 일본제지, 가오, 토판인쇄와 함께 양산을 준비 중이며 2015년 사업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일본 1위 제지회사, 오지홀딩스는 미쓰비시화학과 함께 종이를 뜨는 기술을 이용해 롤형태의 셀룰로오스섬유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기존의 시트공정 설비를 활용할 수 있고, 연속생산이 가능해 상용화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높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방식으로 양산에 성공하게 되면 셀룰로오스 나노섬유의 가격이 1kg당 1000엔 이하, 즉 일반 강재의 10배 수준으로 내려갈 수 있어 본격적인 상용화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셀룰로오스 나노섬유가 상용화되면 다양한 산업에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첫번째는 자동차 업계다. 가벼우면서 단단한 셀룰로오스 나노섬유로 자동차를 만들 경우, 자동차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셀룰로오스 나노섬유는 다른 소재에 소량을 섞는 것만으로도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데, 일부 플라스틱에 셀룰로오스 나노섬유를 10% 정도만 첨가해도 자동차 1대당 약 20kg의 무게를 절감할 수 있다.
전자업계도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유리만큼 투명하면서 열팽창률은 더 낮아 유력한 유리대체소재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리는 전자제품에서 주로 온도변화에 노출되기 쉬운 기판소재로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셀룰로오스 나노섬유가 이를 대체한다면 깨지지 않고 유연한 디스플레이 및 디바이스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화장품, 생활용품, 식품 업계에서 반가워 할 포장재로서의 가치도 높아 보인다. 산소나 수분을 투과시키지 않는 특성 덕분에 셀룰로오스 나노섬유로 제품을 포장하면 향기를 더욱 잘 보존할 수 있고 산화에 따른 제품 변질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매력적인 셀룰로오스 나노섬유의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 화학소재, 바이오 소재, 나노기술 전문업체를 떠올리기 쉽겠지만, 놀랍게도 전통의 제지회사들이었다. 특히 일본 1위의 제지회사인 오지홀딩스는 오랜 시간동안 축적한 자체 종이기술과 시트가공기술에 미쓰비시화학의 화학처리기술을 접목해 셀룰로오스 나노섬유의 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이처럼 축적의 경쟁력에 참신한 아이디어가 더해진 신사업 기회가 우리 주변에는 없는지 찬찬히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강찬구(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