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으로 똘똘 뭉친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상부상조(相扶相助)를 아주 소중하게 여겼다. 이웃의 어려움이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주었다. 이 같은 아름다운 전통은 예나 이제나 면면히 이어져 우리 사회를 더욱 풍요롭고 따듯하게 해주고 있다. 품앗이는 이런 전통에서 생겨난 미풍양속이다.
요즘 농촌은 그야말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밭농사 논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특히 모내기는 5월 중순에서 6월 초순경에 절정을 이루는데 단오 무렵이면 농부들은 모내기를 거의 마치고 잠시나마 숨을 돌리게 된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만 해도 농사철이 시작되면 일손이 없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젊은이들이 다 떠난 지금 농촌도 그때와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좀 큰 힘을 필요로 하는 일은 농기계가 거의 대신해 줘 우리 농민들이 확실히 딴 세상에 살고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기계화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21세기 농촌과 거의 모든 일을 사람이나 짐승(소)이 떠맡아야 했던 저 7·80년대를 비교해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농촌에서 나고 자란 중장년 세대들은 이런 변화를 보고 허전함과 함께 진한 향수를 느낄 것이다.
농기계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고 새로운 농사법이 속속 등장하면서 농촌은 일대 변혁기를 맞이하고 있다. 사람이 하면 며칠씩 걸리던 일을 하루 만에 끝냄으로써 농부들의 짐은 그만큼 가벼워졌다. 그러나 그런 편리함은 농부들에게 많은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 농기계를 사려면 그 값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농부들은 빚을 내서 구입하게 되는데, 이것은 어려운 농촌 살림에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 옛날, 마을 어른들은 모자라는 일손을 덜고자 서로 돌아가며 일을 도와주는 품앗이를 통해 어려움을 헤쳐 나갔다. 품앗이는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온 농촌 풍습이다. 이른바 ‘노동의 교환’을 통해 이웃은 더욱 가까워지고 나눔과 정이 새록새록 싹터갔다.
품앗이의 ‘품’은 일, 즉 노동이라는 뜻이다. 더 정확하게는 <품 勞力 앗이 受>에 대한 <품갚음 報>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 농촌에서 모자라는 노동력을 다른 사람에게 빌리고 빌린 노동력을 자신의 노동력으로 대신 갚는 것이다. 그렇다고 품앗이가 항상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젊은이들이 다 떠난 농촌에서 품앗이 할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품앗이 일꾼이 없어 다른 마을에서 데려오는 일도 다반사였다.
일 년 중 4~6월은 품앗이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시기다. 더구나 모내기철이 오면 마을마다 난리법석을 떤다. 못자리를 만드는 일에서부터 볍씨 뿌리기, 비닐 씌우기, 도랑 만들기, 모 찌기, 거름주기, 모 심기, 잡초 뽑기 등 한 해 벼농사는 이렇듯 시작부터 힘든 노동을 필요로 한다.
노동력이 절실히 필요한 모심기는 단순한 농사일을 넘어 공동체 의식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공동노동이다. 이 땐 남녀노소가 모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모심기는 이런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왁자지껄 어우러져 모를 심던 풍경은 가뭄에 콩 나듯 보이고 여기저기서 자동으로 모를 심는 이앙기 소리만 들려올 뿐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빛나는 우리의 전통이 바로 품앗이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마음에서 절로 우러나오는 ‘정’이 깔려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뭔가를 바라는 계산적인 속셈이 숨어 있다면 진정한 품앗이라고 할 수 없다.
품앗이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새참이다. 마을 아낙네들은 집에서 준비한 먹을거리를 잔뜩 가져와 풀어놓았다.
“새참 가져왔어요. 어서 나오세요.”
일의 능률을 위해서도 새참은 꼭 먹어야 했다. 돌돌 말은 국수에 막걸리 한 사발이면 힘이 솟았다. 일꾼들은 점심이나 새참이 제때에 나오지 않으면 노래로 재촉하곤 했는데 그 노래를 가만히 들어보면 웃음이 절로 나올 정도로 해학적이었다.
어려움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우리의 품앗이 문화. 나만 챙기는 각박한 사회에서 품앗이는 더불어 살아가는 정신을 일깨워준다.

■글·김청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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