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설국의 진수는 울릉도다. 특히 성인봉(984m) 설경, 빙화는 살아 생전 봐야 할 것이다. 대륙에 봄이 찾아 와도 산정의 눈은 오랫동안 녹지 않는다. 그 설산의 비경에 흠뻑 빠져보자.
울릉도의 멋진 설경을 꼭 보고 말리라 다짐하고 울릉도의 북면, 추산에서 하룻밤을 유숙한다. 새로 산 체어젠, 스패치, 헤어밴드, 모자, 스틱 등. 나름 철저하게 등산채비를 한다. 추산부터 나리분지까지 걷는다. 송곳산을 뒤로 하고 숨 가쁘게 올라가면 이내 평길로 주변으로 울창한 숲이다. 나리분지에 도달함을 알려주는 것은 ‘울릉도 눈꽃축제’를 위해 만들어 놓은 조형물들. 원두막, 체육시설 등에 눈이 소복히 쌓여 있다.
원시림보호구역(천연기념물 제189호)인 나리분지. 성인봉을 중심으로 모두 300여 종의 식물이 분포하는데, 그중 40여 종의 특종식물이 서식하는 지역이다. 그러나 겨울철에는 눈에 뒤덮혀 고립된다. 눈이 쌓여 4륜구동 차량만 이동할 수 있다. 주민들도 겨우내 칩거하거나 외지로 나가 살다 고로쇠를 채취할 즈음에서야 찾아든다. 인적 뜸한 나리분지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산나물과 숭늉을 먹고 든든하게 배를 채운다.
하지만 머릿속은 한없이 갈등한다. 과연 산행을 할 수 있을까? 오늘 못하면 또다시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다. 일단 알봉까지 걷기로 한다. 알봉에서 상황에 맞춰 선택하리. 평지라서 눈이 많아도 걷기 좋고 길은 잘 나 있다. 섬고로쇠, 우산고로쇠가 많은 지역. 고로쇠 채취가 한창이다. 미처 수거하지 못한 채 얼어 있다. 울릉도 고로쇠는 다른 곳과 달리 질이 좋다고 평가받는다. 수액이 달고 향이 난다.
알봉 투막 집에 잠시 발길을 멈춘다. 투막집은 울릉도의 전통가옥으로 바람과 폭설에 대비해 만든 이중벽 구조인 우데기가 독특한 집. 사람 떠난 투막 집에 눈만 소복하다. 주변의 형제봉, 미륵봉이 알봉을 옴팍하게 감싸고 있다. 사방팔방 눈부신 설산이다. 이제부터는 모험을 감행해야 한다. 동행한 울릉도 주민도 산행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전날 산행객이 있다 해도 바람이 불어 발자욱을 덮어 버리면 길을 잃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오던 길 되돌아갈 바에는 차라리 산행을 할거다. 마음 다짐하고 신령수까지 오른다. 다행히 사람 발자욱이 남아 있다. 눈은 무릎팍까지 빠진다. 나무 계단이 있지만 많은 눈은 계단인지 구릉인지 구분할 수 없게 뒤덮어 버렸다. 미끄럽다. 앞서 간 사람이 남겨 놓은 고마운 발자욱. 한걸음 한걸음 떼어 어렵사리 알봉 전망대에 선다. 나무 잎 사라진, 황망한 겨울 산이라 오히려 알봉이 눈에 쏙 들어온다. 형제봉, 미륵산, 나리령, 송곳산 등, 말 그대로 닭이 알을 품는 듯 너른 평야를 산자락이 휘감고 있다. 간식, 물을 먹어 둔다. 행여나 힘을 빼면 안된다.
설화다. 아니 빙화다. 눈이 많이 내려 미쳐 바람에 떨어트리지 못한 채 얼어붙은 빙화. 그동안 설화, 상고대 많이 봐왔지만 이런 진풍경은 태어나 처음이다. 이런 비경을 어디서 볼 수 있단 말인가? 한낯 문명의 이기인 카메라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해주겠는가? 직접 눈으로 봐야 할 일이다. 눈동자가 커진다. 추위도, 휘날리는 눈발도, 갑자기 들이닥친 먹구름도 이 순간은 중요치 않다. 비경을 빠져 나가 막바지 고개를 넘어서니 평평한 곳에 성인봉 표시석이다. 울릉읍, 서면, 북면 등 울릉군의 3개 읍·면의 공통된 경계점인 성인봉. 성인봉은 두 개의 전설에 의해 붙여진 지명.
순간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 멋진 설경에 반해, 얼음 꽃에 반해, 내려오는 길 잃어, 성인이 되어 버린다는 의미가 아닐까?
정상까지 왔으니 이제 한시름 놓아도 된다. 성인봉의 정기를 담아 정상 표지석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다.
제1전망대에 도착하니 도동과 독도전망대가 환하게 내려다보인다. 한숨 돌리면서 이제는 괜찮겠지 했다.
하지만 점입가경. 길은 갈수록 힘겹기만 하다. 능선길이 길다. 사다리골(300~500여m 지점)부터는 조금 나아진다. 구름다리와 데크로드(1.7㎞)를 건넌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도동에 도착한다. 나리분지∼정상∼도동 코스는 약 8.5㎞. 오전 10시경에 알봉을 출발해 오후 6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평상시 산행시간보다 두 배는 더 걸린 것이다.
그런데 머릿속은 성취감에 한없이 상쾌하다. 즐거움이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냈을 때, 가장 큰 것 같다. 아 행복한 성인봉 설경 산행이여!

■이신화·『DSRL 메고 떠나는 최고의 여행지』의 저자 http://www.sinhw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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