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가서 신라음식을 만난다. 한국역사문화음식학교의 ‘라선재’라는 곳에서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BC 57)로부터 경순왕(AD 935)까지 56대, 992년간 존속했던 신라. 지금으로부터 1000년도 넘은 그 시절의 음식은 어떤 것일까? 자료가 남아 있었나? 궁금증과 호기심 가득 안고 떨리는 마음으로 한국역사문화음식학교의 문을 두드린다.

보문관광단지내에 한국역사문화음식학교가 있다. 야외 정원에 눈길을 끄는 것은 항아리인데, 항아리에는 목걸이처럼 목간(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 죽간(竹簡)과 함께 문자 기록을 위해 사용하던 목편, 목첩이라고도 함)이 걸려 있다. 신라시대 때의 장류 문화를 엿보는 것이다. 체험장과 식당을 같이 쓰고 있는 건물은 외관보다 실내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신라의 문화풍습을 읽을 수 있는 그림, 민속품 등으로 꾸며낸 공간은 세련미가 있다.
체험장에서 개량한복을 입고 머리를 딱 붙여 올려 묶어 정갈한 차림을 한 차은정씨를 만난다. 그녀는 빼어난 달변가다. 칠판에 조목조목 글자를 써가면서 설명하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카랑지고 야무진 목소리. 그러면서 간간히 미소 짓는 얼굴에서 개구쟁이 같은 귀염성을 읽는다. 지성과 애교가 뒤섞여 묘한 매력을 풍겨낸다.
신라시대의 음식은 무엇일까? 그녀의 말을 빌리면, 조선시대자료 외에는 신라시대 때 관련 사료는 발견되지 않았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벽화 등에 나타난 단편적 자료를 연결고리로 삼을 뿐이다. 예를 들어 신라 경순왕 때 연회를 베풀던 경주 안압지에서 발견된 동물 뼈에는 사슴, 꿩, 오리 등이 발굴되었다. 통일신라 때는 소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김알지의 신화가 있는 계림이 있기에 닭고기는 먹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이다. 또 삼국사기에는 연회에 50가지 찬이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김치와 간장은 포함되지 않았다. 임금 제사 때 개암, 사슴육포, 토끼, 돼지 등이 진설품목으로 올랐다고 쓰여 있으며 잣, 밤, 복숭아와 함께 개암이 참 많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설명을 들을수록 차교장의 개인적인 이력이 궁금해진다. 설명 중에 아버지가 한의사였다는 것과 고향이 경주가 아니라는 것. 표준말을 쓰고 있었기에 그 부분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식품학을 전공했고 외국에 유학 했다는 말을 내 필요에 의해 듣고 있는 것이다. 제법 학술적인 그녀가 대기업 중견간부를 남편으로 만났다니 미뤄 짐작컨대 집안일은 할 것 같지 않다. 청산유수 같이 잘하는 말 만큼이나 요리를 잘할까? ‘집에서도 요리를 하시나요“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금세 표정이 새초롬해지면서 본연의 학습자세로 돌아가는 그녀. 표정을 애써 숨기지 못하는 그녀의 속내가 귀엽다.
차교장의 이력은 이렇다. 경희대 식품영양학과 석사, 동아대 조리학 박사를 취득하고 부산 코모도호텔 한식당에서 일을 한다. 2003년 부산 영산대 조리학부 교수가 된 뒤 약선학과 개설을 주도했고, 일본 약선학회와 손을 잡으며 중국동방약선식료학회의 첫 한국위원이 됐다. 2003년 8월 중국 약선을 정리하기 위해 1년간 벤치마킹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 학교를 총괄하고 있다.
어쨌든 그녀는 약선(藥膳)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약선은 식물과 동물을 합해 약이 된다는 뜻으로 요즘의 웰빙 음식이다. 체험장에서도 약선 후식을 만든다. 조란, 생란, 율란 세 가지인데, 한자를 풀이해보면 대추, 생강, 밤이다. 원재료를 체에 내려 꿀을 섞는 등 한입 먹기 좋게 모양을 다시 잡아낸다. 만드는 모습이 영상화되기에 따라하면 된다. 완성되면 한정식 후식으로 차려진다.
한정식에는 이사금, 성골, 진골 세 가지의 메뉴가 있다. 가장 비싼 코스는 이사금이다. 신라시대 임금 칭호로 3대 유리 이사금부터 18대 실성 이사금까지 사용된 명칭. 이사금은 떡을 어금니로 깨물어 이(齒) 숫자가 많은 사람이 왕이 됐다는데서 유래한 말이다. 한정식은 그저 한상 가득 차려지는 것이 아니다. 메인 요리가 줄줄이 이어진다. 대부분 담백하고 맛이 좋다. 요리 중에 눈길을 끈 것은 어록구이. 마른 생선 위에 사슴고기를 얹고 찹쌀가루를 입혀 대추로 치장한 요리. 신라때 주로 이용됐다는 사슴고기를 쓰는 것이 특이점이다. 체험과 상차림은 10명 이상이 되어야만 가능하다.

여행정보
☎054-771-6005/www.culinaryschool.co.kr/ 보문단지내에 위치

■이신화·『DSRL 메고 떠나는 최고의 여행지』의 저자 http://www.sinhw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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