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자락에 있는 증심사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그냥 떠나오기 아쉬워서 두 번이나 증심사로 달려간다. 증심사에 멈추려던 계획을 바꿔 우선 약사암(062-222-9844)으로 방향을 튼다. 1km가 채 안되는 거리임에도 가파른 새인봉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길은 한참이나 이어진다.
새로 지은 듯한 건물이지만 경내에는 오래 묵은 삼층 석탑이 남아 이 절의 연륜을 읽게 한다. 잠시 약사사에 대한 자료를 살펴보자. 신라시대에 철감선사 도윤이 847년(문성왕 9) 당나라에서 귀국한 뒤 창건하여 인왕사라고 했다가, 고려 예종(1105~1122) 때 국사 혜조가 중창하면서 절 이름을 약사암으로 바꾸었다고 전해 온다. 증심사보다 먼저 세웠다고 하나 정확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이후 조선시대 때 1856년(철종 7) 3월에 성암이 약사전을 중수하고, 1905년 9월에 선주가 관찰사 주석면 등 관청의 도움과 시주로 중건했다. 1970년대부터 주지 석담이 법당과 요사채 등을 중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마당에 서서 석탑을 기준하여 앞 산을 바라본다. 하늘 향해 오른 바윗돌이 눈길을 끈다. 바로 새인봉(490m)이다. 임금의 옥새를 닮았다 하여 새인봉(璽印峰)이라 불리우는데 절집 마당으로 산 기운이 스며드는 듯하다. 그리고 대웅전으로 들어선다. 대웅전은 1980년대에 지었다는데 안에는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조성한 석조여래좌상(보물 600호)이 본존으로 모셔져 있다. 예사롭지 않은 석조불이다.
약사사를 빠져 나와 또다시 증심사로 향한다. 유서 깊은 사찰이라는 것은 짐작했지만 절집 앞을 버티고 있는 수령 오래된 느티나무에 넋을 잃는다. 그리고 일주문 바로 옆 계곡위로 펼쳐지는, 아직 철수가 안된 듯한 식당건물을 뒤덮고 있는 단풍에도 매료 된다. 증심사는 어떤 사찰일까?
무등산 기슭에는 증심사, 원효사, 규봉암, 약사암, 선정암, 만연사, 동원사 등 크고 작은 사찰이 골짜기마다 있고 소중한 문화재와 전설이 흐르고 있다. 그 중에서 광주 무등산의 서쪽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증심사(062-226-0108)를 대표적이라 손꼽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호남의 빼어난 명승으로 꼽았으며 “광주읍지” 등에도 무등산의 정기를 함축하고 있는 곳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증심사 일원은 모두 광주광역시 문화재 1호로 지정되어 있다.
중머리재로 향하는 가파른 길 왼쪽에 일주문이 있다. 그 언덕받이에 각종 부도와 비석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철감선사 도윤(798∼868)이 세운 절로 고려 때 혜조국사가, 조선 세종 때 김방이 중창하였다. 이때 오백나한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이후 1597년 정유재란 때 다시 소실되어 1609년에 석경, 수장, 도광 등 세 선사가 다시 중수하였다. 그러나 6.25전쟁 때 많은 국보급 문화재가 불타 버렸으나 오백전과 사성전만은 그대로 남아 있다. 건물 맨 뒤쪽으로 가면 나한전을 만날 수 있다. 지금의 건물들은 1971년에 중창된 것이 대부분. 비록 여러 가지 정황으로 원형이 변했다고는 하나 첫눈에도 예사롭지 않은 사찰임을 알게 한다.
필자가 찾은 날, 대웅전은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그래서 철로비로자아불좌상(보물131호)은 볼 수 없다. 대신 나한전 옆에 있는 석탑 두기와 비로전, 요사채 등을 보면서 연륜을 살펴보고 느티나무와 돌담이 어우러진, 멋진 풍치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가파른 그곳을 버티고 서 있는 나무가 생각없이 사랑스럽다.
그리고 찾아간 곳은 광주온천(062-654-3188). 광주시의 제법 사는 사람들만 모여 산다는 봉선동이다. 신도시가 만들어지면서 발견된 온천. 증심사도 보고 수질 좋은 곳에서 온천욕도 하고 그리고 근처에 있는 유명한 남해가든(062-671-8348)에서 고기를 먹는 여행. 광주에 간다면 한번쯤 해볼만한 좋은 여행 코스다.

■이신화·『DSRL 메고 떠나는 최고의 여행지』의 저자 http://www.sinhw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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