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대명사, 무등산(1,186.8m). 참으로 익숙한 산이다. 광주 사람들이야 이웃 산이겠지만 외지인들에게는 어찌 그러겠는가? 그곳을 갔다가 의재 허백련 선생의 흔적을 만나게 된다. 증심사 오르는 길목에 의재 허백련 선생 미술관이 있다. 귀에 익숙한 이름. 진도 소치 선생과 연계가 있는 것일까? 또 궁금증이 스멀스멀 고개를 쳐들고 있다.

사람의 인생을 단 몇 글자로 요약해서 알아내는 것은 우스운 일이지만, 유명한 삶을 살았다는 그들의 인생이 흥미진진하다. 허백련 선생은 진도 출생이니 운림산방에 거했던 소치선생과 연계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가 어찌 이 무등산 중턱, 그것도 이렇게 아름다운 계곡 주변으로 들어와 있었을까? 증심사와 약사사 골짜기가 만나는 합수지점. 풍수지리가들은 이런 곳을 ‘기’가 모이는 곳이라 한다. 계곡과 길 사이를 두고 미술관과 춘설헌(광주광역시 기념물 제 5호) 등의 건물이 흩어져 있는 것이다.
30년 동안 화실로 사용했던 건물은 예상보다 현대적이다. 그 주변으로 아름다운 애기 단풍이 막바지 빛을 발하고 있다. ‘무등산 신선’으로 불린 의재는 동양사상과 시서화에 두루 통한 인물. 의재는 이들 손님들이 오면 같이 무등산 차밭을 산책하며 한담을 나누고, 오후가 되면 춘설헌에 모여 그림을 그리면서 서로 같이 놀았다고 한다.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그중 ‘25시’의 작가 게오르규도 두 번이나 춘설헌을 방문했단다.
허백련 선생의 인생이 궁금하다. 의재는 1891년 진도군 진도면 쌍정리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소치가 마련한 운림산방이 있었다. 당시 쌍계사에 놀러 다니면서 운림산방에 드나들 때 소치는 이미 타계했고 그의 아들 미산이 집을 지키고 있을 때다. 의재 선생은 어린마음에도 미산의 그림을 볼 때마다 큰 감동을 받았다. 의재가 본격적으로 그림공부를 시작한 것은 11살 되던 1901년부터. 의재 선생의 그림공부를 측면에서 적극 지원한 사람은 서당 선생인 무정 정만조였다. 서당에서 8년간 한문을 수학하고 서울 기호학교에서 신문학을 접하면서 서화미술회전을 보고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미산의 집에 찾아가 붓 잡는 법과 서화에 대한 지식을 익히게 된다.
그러다 의재가 광주에 머물게 된 계기가 생긴다. 1918년 부친이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고향에 돌아왔다가 우연히 길거리에서 김영수를 만났다. 김영수는 강진 한 부호의 출신으로 변호사였고 일본에서 의재를 많이 도와준 친구였다. 그때 김영수는 불치의 병인 폐병에 걸려 있어 의재는 일본에 가려던 계획을 멈추고 김영수를 광주부립병원(전남의대병원)에 입원시키게 된다. 병원 옆 여관방에 들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광주에 정착하게 된다.
그 후 의재는 광주에 정착해 그림을 그리면서 주로 목포와 강진을 자주 왕래했고 그러다 인촌 김성수 선생과도 해후하게 된다. 김성수를 만남은 그의 인생에 큰 반향을 일으킨다. 이런 저런 정황을 거쳐 유명해졌고 여러곳을 왔다갔다 했다. 금강산, 일본 등등 발빠르게 돌아다녔다. 그렇게 20여년을 방랑으로 보내면서 34살 늦깍이로 22살의 성연옥과 결혼한다. 하지만 그는 불혹의 나이 40살이 됐어도 떠돌이 생활을 했다. 그렇게 의재는 75년 동안의 긴 작가 생활을 통해 1만여 점에 이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리고 또 하나 의재와 춘설차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인연이다. 춘설차밭은 무등산 증심사 언저리 가파른 산비탈에 5만여 평의 조성돼있다. 조선 말, 증심사에서 공양을 위해 조성 됐다고 하며, 일제하에서 일본인 오자끼 이찌조(尾峰市三)가 경영하다 두고 간 것을 의재 선생이 1946년 정부로부터 불하받아 이름을 삼애다원으로 바꾸고, 그가 설립한 광주농업기술학교 학생들과 함께 가꾸었다. 60년 이상된 차나무. 아침이면 무등산 안개구름이 스쳐가고, 낮이면 남향의 햇살을 받은 차. 그 고유의 색과 향이 각별하다. 4월 말~5월 초가 되면 차밭에서 새순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차를 좋아했던 의재는 시간 나는 대로 차밭을 가꿨다. 이 차를 ‘춘설차(春雪茶, 광주특산품 1호)’라 이름짓고 차문화 보급에 앞장섰다. 흐릿한 날씨, 저물어가는 햇살 사이로 막바지 단풍이 가볍게 떨고 있다.

■이신화·『DSRL 메고 떠나는 최고의 여행지』의 저자 http://www.sinhw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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