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포에서 태하로 간다. 태하에는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우선 ‘성하신당’을 찾는다. 울릉군의 수호신으로 상징화된 동남동녀의 유래 전설이 서린 성하신당. 세월 속에 굵어진 곰솔 나무가 자그마한 신당 앞을 가로막고 있다. 신당에 모셔진 어린 소녀와 소년. 이곳엔 자못 슬픈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조선조 태종 때 울릉도 안무사로 파견된 김인우가 일을 마치고 돌아가려 하자 큰 바람이 불어 돌아갈 수 없게 됐다.
바람이 수그러들기를 기다리던 중 김인우의 꿈속에 바다 신이 나타나 이 섬에 동남동녀를 남겨두고 가라는 계시를 내렸다. 이 계시에 따라 김인우는 어린 남녀아이 2명에게 일행이 묵던 곳에 필묵을 찾아오라고 한 후 몰래 떠나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김인우는 이에 죄의식을 느껴 다시 울릉도를 찾았으나 동남동녀는 이미 죽어 뼈만 남아 있었다. 김인우는 억울하게 죽은 아이들의 혼령을 달래기 위해 신당을 지어 제사를 지냈는데, 이것이 성하신당의 기원이 됐다고 한다. 신당에 모셔놓은 동자, 동녀를 보니 괜스레 눈물이 난다. 폭설에 뒤덮혀 굶어죽은 오세암의 오누이 전설이 영상처럼 흘러간다.
신당을 벗어나 태하항 바닷가로 나가면 선착장 위쪽의 해안절벽 산책길이 있다. 태하등대로 가는 길목이다. 예전에는 걸어서 등대까지 가야 했는데 최근에 모노레일이 들어섰다. 모노레일에 내려 숲길을 산책한다.
울창한 나무는 그늘을 만들어주고 능선길이라 걷기에 최상이다. 등대 주변으로는 공사가 한창이다. 나오는 길에 노인 부부가 살고 있다는 집도 찾는다. 출타중이다. 텔레비전에 소개되고 난 후 사람들이 많이 찾는지 외출한다는 글씨를 써 놓았다. 창문 틈으로 노부부의 사진을 보고, 집 뒤 너른 터에 심어놓은 갖은 야채도 살펴본다. 자급자족 할 수 있을 만큼 넓은 평야다.
이내 현포령을 넘는다. 현포령 고갯길 넘어 전망대에 멈춘다. 울릉도의 가장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자리다. 변함없이 아름답다. 차마 발길을 돌릴 수 없어 도로변을 서성거린다. 아쉬워서, 너무나 아쉬워서다. 해안길을 따라 가면서도 노인봉, 송곳산 등의 기이한 산자락을 눈에 담는다. 바닷가의 공암, 딴바위, 삼선암, 관음도를 거쳐 길이 끊어지는 섬목에 이른다.
그리고 되돌아나오는 길목에서 예림원을 들른다. 도로변에서도 한참 올라와 있다. 높아서, 울릉도 북면 바닷가가 시원스레 조망된다. 분재 뿐 아니라 서각이 예사롭지 않다. 그래서 문자 박물관이라는 팻말이 새겨져 있나보다. 이곳 원장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단지 서각공예를 취미로 하다 전문작가가 됐고 사재를 털어 그가 만든 조각과 분재, 수집한 수석과 꽃, 나무들로 이곳을 꾸미고 있다는 정도다. 솜씨가 놀랍다. 원두막에 앉아 호박 동동주에 파전, 더덕전을 시킨다. 울릉도 푸른 바다를 안주 삼아서.
저녁을 먹기 위해 찾아간 곳은 나리 분지다. 성인봉(984m) 북쪽의 칼데라 호가 함몰해 형성된 화구원. 화산이 폭발한 후 그 분화구가 아래로 푹 꺼져서 생긴 지형. 이 분화구를 알봉(611m)이라고 한다. 평평한 땅. 화산재로 덮여 있어 보수력이 약하기 때문에 밭농사를 할 뿐, 논농사는 불가능한 곳. 사람이 살만큼 넓은 평지가 펼쳐지는 곳. 울릉도 첫 방문때 무릎팍까지 차 오른 눈 때문에 힘겨운 성인봉 산행을 하고 이곳에 도착했었다.
당시 나리분지는 구세주였다. 그곳을 차로 휑하니 달려 온 것이다. 성인봉 산자락에 구름이 유영을 한다. 마을의 너와집과 투막집을 찾아본다. 너와집은 주로 너도 밤나무를 이용해 지붕을 얹고 투막집은 울릉도 갈대를 이용한다. 사람은 살지 않는다. 맛있는 산채요리를 먹고 울릉도에서 가장 전망 좋은 추산일가에서 여장을 푼다. 숙소 베란다 발 밑으로 바다가 방석처럼 깔린다.
3일째 아침, 날씨는 흐릿해서 그저 희뿌옇게 섬을 감싸 안는다. 민박집 주변의 절집을 구경하고 석포에서 내수전까지 트레킹을 할 생각이다. 온통 더덕밭이다. 여행내내 ‘더덕밭이다’고 탄성을 지르길 여러 번. 얼마나 많은 더덕이 이곳에서 생산되는 것일까? 후두둑 비가 내린다. 석포와 울릉읍을 잇던 옛길.
아직 해안길이 완성되지 않았으니 지름길이다. 비옷 챙겨 입고 산길을 오른다. 경사도가 약하고 숲길이 무성해 더위도 없다. 무성하게 피어나던 야생화도, 나물도 이제는 보기 힘들다. 4km 남짓 걸었을까? 아주 천천히 걸어서 땀 한방울도 나지 않는다.
도동항에서 뭍으로 돌아갈 배를 기다리면서 특산물을 구입한다. 명이나물, 호박엿, 더덕 등. 이 섬 벗어나면 먹기 힘든 특산물인 게다.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해안 길 난전 횟집에 앉아 싱싱한 해산물을 앞에 두고 맥주 한잔으로 목을 축인다.
성게알, 멍게, 쥐치, 굴 등. 암벽 스피커에서 7080노래가 흘러나온다. 술에 취한 것일까? 분위기에 취한 것일까? 아쉬움인 게다. 이렇게 울릉도를 떠나면 언제 올지 모른다. 관광객을 떠나보내는데 익숙해진 현지가이드지만 그의 얼굴에도 아쉬움이 아롱거린다. ‘물소리 까만밤’ 대학때 들었던 그 노래가 지금도 귓전에 머무는 것은 울릉도의 그 날, 그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여행정보
독도는 독도 관광해운(054-791-8111-2, http://dokdotour.com)에 미리 신청서 제출(독도입도신청서 1부, 독도입도신청자명단 1부(단체의 경우)해야 한다. 문의:울릉군청 문화관광과(054-790-6425, 6420 Fax:054-790-6399 메일:dokdo@ulleung.go.kr).
-배편정보 : 포항여객선터미널:054-242-5111, 후포여객선터미널:054-787-2811, 묵호여객선터미널:033-531-5891, 울릉여객선터미널:054-791-0801.
- 추천 별미집 : 홍합밥은 보배식당(054-791-2683)이 따개비밥과 약초해장국은 99식당(054-791-2287)이 괜찮다. 울릉도에서는 약소고기는 향우촌(054-791-8383, 0686)이 맛있다. 등뼈감자탕(054-791-3760)은 따개비밥이나 등뼈찜 등이 괜찮고 밑반찬도 맛있다. 다애식당(054-791-1161)은 오징어 순대를 예약자에 한해서 받는다. 나리분지쪽에는 산마을 식당(054-791-4643 토종닭)이 있고 씨앗주를 맛볼 수 있다. 나리촌(054-792-6082)에서의 산채정식중에서 삼나물 무침이 맛있다.
-숙박정보 : 대아호텔(02-518-5000)이 괜찮다. 도동항에서는 칸(054-791-8500)이 괜찮고, 통구미에서는 거북모텔(054-791-0303)이 파도소리 들으며 잠들 수 있다. 추산쪽에서는 추산일가(054-791-7788)가 전망이 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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