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따뜻해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는 날이다. 일조량이 많아지면서 웬일인지 기분도 함께 좋아진다. 아! 싱그러운 봄이구나. 절로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한다. 계절 변화는 이렇게 사람의 마음까지 들썩거리게 만들고 있다. 따뜻한 봄 햇살 맞고 겨우내 묵은 땅을 비집고 나오는 들나물 향연. 길 섶에 솟아오른 봄나물 내음이 향그럽다. 봄비 맞고 앞다퉈 피어난 새싹과 함께 힘찬 봄이 내 곁으로 다가서고 있다.

한낮의 햇살이 따뜻하다. 그 햇살 한줌은 막힌 희망의 줄을 열어주는 듯 기분을 좋게 한다. 일조량이 많아지면 절로 기분도 나아진다는 전문가의 말이 맞는 것 같다. 날씨는 기분을 좋게 하기도 하고 한없이 침체되게 만들기도 한다.
겨우내 묵은 때를 벗어던지고 싶다. 계절 변화는 이렇듯 삶에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그것조차 느끼지 못하는 일상이 이어진다면 ‘불행한 삶이다’ 라고 단언 한다면 지탄받을까?
아주 오랫만에 삼성산(안양시 석수동)을 찾는다. 이미 관악산 산행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다. 당시 삼성산을 뒤로 한 채 다른 방향으로 하산해버렸기에 아쉬움이 남았던 그곳. 이곳을 찾은지 벌써 몇 년의 세월이 흘렀는지 숫자로 따질 필요는 없다.
한번은 꼭 다시 오고 싶었다. 관악산의 지봉(枝峰)인 삼성산. 서울시 관악구와 금천구, 경기도 안양시에 걸쳐 있으며 하루 코스로 산행하기에 좋은 그런 산이다. 아기자기한 바위들, 소나무와 진달래, 단풍나무들이 무성해 사계절 변화무쌍한 운치를 즐길 수 있어 사철 찾아드는 사람이 많은 곳이다.
관악산과 삼성산의 지류가 이어지고 있어서 굳이 따로따로 찾는 사람도 많지 않고 서로 연계한다. 하지만 산허리를 한바퀴 휘돌아야 되는 등산 코스에 무리가 따른다면 가볍게 삼성산만을 택해 삼막사의 흩어진 문화유적만을 감상하면 될 일이다. 가족 중심 나들이라면 매우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안양유원지라는 옛 팻말은 사라지고 예술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관악산(629m)과 삼성산(461m)의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은 안양천의 지류가 됐고, 그 아름다운 지류 주변으로 자연스레 유원지가 만들어 졌다.
몇 개 되지 않았던 식당가도 예전보다 훨씬 많이 늘었고 예술공원 또한 기반시설들을 정비하면서 안양시의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조성했다. 인공폭포, 야외무대, 전시관, 광장, 산책로, 조명시설 등을 설치해 놓고 곳곳에 국내외 유명작가의 예술작품도 있어 한눈에도 어수선한 예전 유원지라는 타이틀이 무색해 보인다.
삼성산 트레킹코스는 여러 곳. 유원지 방면을 기점으로 관악산 깃대봉-삼성산 정상-삼막사 코스를 선택하거나 자기가 원하는대로 맞춰 하면 된다.
하지만 이미 삼막사까지는 찻길 통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일부러 발품을 팔지는 않는다. 절집 신도증이 있어야 차를 운항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다면 절집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구불구불한 시멘트 포장길은 예나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절 앞에는 원효대사가 심었다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천년거목이 되어 반기고 있다. 유서깊은 삼막사 또한 절집 건물이 다소 늘어나 있는 것 이외에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삼성산에 삼막사가 탄생한 내력은 신라 문무왕 17년 원효, 의상, 윤필이 이곳에 들어와 막을 치고 수도해 도가 무르익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일막, 이막, 삼막의 암자를 짓고 수도해 도를 이뤘대서 얻어진 이름. 그 뒤로도 삼막사를 수도터로 거쳐간 분들이 많다. 도선국사, 지공화상, 나옹선사, 무학대사, 서산대사, 사명대사 등 신라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이름높은 선사들은 대개 이곳을 거쳐 갔다. 그만큼 삼성산 기운은 수행의 터전으로 적절했던 것이다.
그에 반해 경내에는 문화유적이 남아 있지 않다. 산자락에 새로 지은 듯한 건물에는 묵은 향기가 배어 있지 못하고 가람배치 또한 어수선하다. 그래도 수령 오래된 나무와 삼막사의 승도 김윤후가 몽고군 대장 살이타이를 죽여, 그 승적을 기념한 삼층석탑에서 연륜을 읽어본다.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점심 공양시간이라 공양간을 기웃거리면서 호기심 삼아 점심도 먹는다. 그리고 천천히 삼막사에서 길게 이어진 대리석 계단을 따라 오른다.
칠성각까지 가면 마애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인데 무엇보다 남녀 근석을 보기 위함이다. 오솔길 곳곳에 오히려 옛 향기가 가득하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5호인 삼막사 사적비, 원효가 수도했다는 석굴, 거북구(龜)자 3개가 써있는 삼구자라는 돌부적을 살펴보면서 걷다보면 드디어 남녀근석 앞이다. 삼막사의 남녀근석은 묘하게도 사람의 그것과 많이도 닮아 있다. 이런 자연석은 일찍이 우리네 민중의 토속신앙의 대상이 돼 왔다.
이 두 기의 바위는 원효가 삼막사를 세우기 이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앉아 백성들의 기원을 들어줬는데, 바위를 만지면 순풍순풍 아이를 잘 낳는다고 하고, ‘가문의 영광’과 무병장수를 빌기도 했다고 한다. 누군가 일부러 빚은 돌이 아닐진대 신기할 따름이다. 경복궁내 국립민속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는 작품이 바로 이 여근석을 본뜬 것이라고 한다.
그 앞에 있는 자그마한 전각, 칠성각 안에는 마애삼존불이 있다. 조선 영조 39년에 암벽에 새겨졌는데 이때가 1763년이니 삼막사가 세워진 677년부터 따진다고 해도 1000년여 세월이나 뒤쳐져 있다.
칠보전 위로 올라 능선을 타면 주산인 관악산(629m)에 이를 수 있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보면 송신소가 보이고 동북쪽은 관악산의 주능선이 안개속에 감춰져 있다가 이따금 거친 등걸을 드러내곤 한다. 관악산의 가장 아름다운 암릉, 삼성산에서 망월암 앞으로 나와 무너미 고개 아래의 개울을 건너면 8봉능선으로 올라설 수 있다. 그 산행이 어렵다면 다시 삼막사로 내려와 찻길을 따라 위로 오르면 삼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 국기봉(446m)까지만 발품을 팔아 보자. 그곳에 펼쳐지는 관악산의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기암이 모습을 드러내고 사방팔방 발아래 풍치를 조망할 수 있다. 이 정도만으로도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곳. 욕심내지 않은 가벼운 산행 정기가 일상을 며칠 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 찾아가는 방법:굳이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지하철이나 버스등 대중교통이 무척 편리하다. 지하철 1호선 이용해 관악역이나 석수역에 하차해 2번 버스 이용. 종점 하차하면 예술공원. 안양에서 수시 운행하는 시내버스를 이용. 또는 관악역을 기점으로 산고개를 넘어 하산하는 방법도 있다. 차를 이용한다면 시흥시 금천구에서 안양 수원을 잇는 1번국도를 따라 가다 예술공원이나 삼막사 팻말을 찾아가면 된다.

● 먹거리:도시락을 준비해 가는 것은 기본. 또는 하산해서는 예술공원쪽으로 내려오면 많은 음식점이 있다. 김경진 녹두빈대떡집은 가볍게 하산주를 즐기기에 괜찮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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