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상한 바닷바람이 비릿한 갯내음과 함께 몸으로 와락 달려든다. 이곳은 남도의 끝, 보성땅. 유달리 높은 산과 구릉이 줄지어 있는 데다 바다와 뻘밭이 앞에 펼쳐져 있어 천혜의 요새라는 느낌이 절로 든다. 예로부터 예(藝) 의(義) 차(茶)를 숭상해온 고장답게 곳곳에서 그런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여기에다 질펀한 남도 사투리와 도타운 인심은 언제 찾아도 첫 느낌 그대로다.
남도의 색깔을 가장 진하게 담고 있는 보성은 소리와 차(茶)의 고장이다. 애절한 가락의 서편제가 이곳에서 완성됐고 정응민, 조상현, 이날치, 정재근 같은 뛰어난 소리꾼도 이곳 출신이다.
특히 서편제를 완성한 박유전과 민족음악의 선구자 채동선은 우리나라 음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일찍이 대원군은 박유전의 소리를 듣고 네가 천하제일 강산이라 감탄해 마지않았거니와 영화 서편제 이후 보성은 우리나라 판소리의 성지로 이름을 드높이고 있다.
보성을 보성답게 해주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야트막한 산허리를 가로지르며 펼쳐진 야생 차밭이다. 보성땅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니다 보면 녹색 차밭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실제로 이곳은 차의 품질과 생산량에서 전국 제일이다. 무려 1백27만평에 달하는 차나무 재배 면적도 놀랍지만 그 맛과 향, 색 또한 좋기로 유명하다. 전국 생산량의 30%를 점유하고 있으며 차를 재배하고 쪄내는 생산업체만도 15곳에 달한다.
보성땅을 알차게 돌아보려면 보성읍에서 시작해 다원을 둘러보고 아흔 아홉 고개의 봇재를 넘어 다향각에서 잠시 쉰 뒤 율포해수욕장을 지나 해안도로를 따라 벌교로 이동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봇재 아래 회천의 율포는 보성이 자랑하는 해수욕장이자 항구다. 해송이 빼곡하다. 이곳에서는 율포 앞바다로 떠오르는 일출도 볼 수 있다.
보성읍 봉산리 산기슭. 보성읍에서 득량만으로 이어지는 18번 국도를 타고 가다 활성산 봇재에 이르면 멀리 남해바다가 가물거리고 산 중턱으로 푸른 융단 같은 차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율포 해변에 있는 해수녹차탕에 들러 몸을 씻고 회천면 율포해수욕장을 거쳐 차를 직접 시음할 수 있는 다원까지 두루 둘러보면 후회 없는 여정이 된다. 지하 1백20미터에서 끌어올린 암반해수에 하루 15-45kg의 찻잎을 우려내는 해수 녹차탕은 차 향 가득한 탕 안에 몸을 담그는 것만으로도 피로를 말끔히 풀 수 있다.
바다 쪽으로 통유리가 나 있어 목욕을 하면서 득량만을 바라볼 수 있다. 어른 5,000원, 어린이 3,000원을 받는다. 바로 옆 다비치콘도도 해수녹차탕을 갖추고 있다.
구불구불 이어진 봇재 일대는 온통 차밭이다. 대한다업, 몽중산다원, 봇재다원, 보성 제다, 은곡다원, 반야다원, 보성옥로제다, 차마실다원 같은 대형 차밭들이 산등성이를 따라 계속 펼쳐진다. 계절은 겨울이지만 초록의 융단이 싱그럽다. 이 중에서도 대한다업 제 1다원은 각종 CF와 영화, 드라마에 자주 등장했던 곳으로 보성 일대 차밭 중에서 규모가 제일 크다. 예전 한창 인기를 누렸던 드라마 ‘여름향기’에서 손예진이 자전거를 타고 푸른 차밭 사이를 달린 장면도 이곳에서 찍었다. 들머리에서부터 길 양쪽으로 둘러선 삼나무 터널은 그윽하면서도 운치 만점이다. 전국에서 온 아마추어 사진가들은 포인트를 잡고 셔터를 누르기 바쁘다.
1다원에서 장흥 방면으로 가다 웅치 방면 지방도로로 빠지면 대한다업 제 2다원을 만나게 된다. 1다원에 비해 시설은 뒤떨어지지만 조용하고 오붓한 정취를 즐기려는 이들에게는 딱 좋은 곳이다. 산비탈에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제1다원과는 달리 평지에 만들어져 전망이 시원하다. 다원 뒤편으로는 철쭉으로 유명한 일림산(해발 664미터)이 우뚝하다. 득량만 일대와 고흥반도, 보성차밭 등이 한눈에 들어오는 능선길은 완만해서 가족 산행지로 좋다. 산행은 한치재에서 627m봉→정상→골치재를 거쳐 용추골로 하산하면 된다. 왕복 약 3~4시간이 걸린다.
밤이면 녹차 밭은 또 다른 신세계로 변한다. 새해 희망의 메시지를 기원하는 대형트리가 녹차밭을 환히 밝히는 것이다. 매해 열리는 ‘보성차밭 빛의 축제’다. 50만 여개의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이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으로 환상적 장면과 분위기를 연출한다. 특히 따뜻하고 낭만적인 분위기 연출을 위해 눈꽃이 내리는 듯한 ‘은하수 터널 산책로’와 연인과 가족들을 위한 ‘사랑의 포토샵’ ‘차밭 빛의 거리’ 등 이색 체험 거리도 마련됐다. ‘빛의 축제’는 다양한 축하공연과 함께 2월 15일까지 이어진다.

보성의 맛과 태백산맥의 무대

보성에서도 율포는 맛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율포 바로 앞 보성만에서 잡히는 바지락, 키조개, 새조개, 전어, 숭어, 낙지, 꼬막, 짱둥어, 모시조개, 굴, 칠게, 개불, 주꾸미, 양태, 갑오징어, 서대 같은 해산물은 요리법에 따라서 별미로 탄생한다. 이 중 득량만에서 나는 꼬막은 알이 굵고 꽉 찬 속살이 먹음직스럽다. 짭찌름하면서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어서 임금님의 수랏상에도 올라갔다는 특산물이다. 벌교5일장에 가면 꼬막을 위시해 싱싱한 해산물을 만나볼 수 있다. 벌교 5일장은 4일과 9일로 끝나는 날에 벌교역 삼거리와 부용교 사이의 왕복2차선 도로변에 왁자하게 펼쳐지는데 이날이면 이른 새벽부터 장꾼들과 관광객들이 모여들어 모처럼 활기에 넘친다.
보성은 녹차의 고장답게 찻잎을 사료로 먹여 키운 소와 돼지고기도 유명하다. 특히 녹돈(綠豚)은 돼지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없고 쫄깃쫄깃해 입에 착 달라붙는 맛이 그만이다. 율포 해변에서 장흥 수문포-소등섬을 잇는 해안도로는 탁 트인 바다와 갯벌을 바라보며 달리는 맛이 그만이다.
한편, 보성군 벌교읍 일대는 조정래 선생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다. 이곳에는 서슬 퍼런 소설의 현장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친일파와 지주들이 숙청당했던 소화다리를 비롯해 빨치산 염상진이 설을 앞두고 지주들로부터 쌀을 빼앗아 소작인들에게 나눠주었던 홍교, 소설의 첫 장면을 열어 가는 현부잣집 등이 그곳들이다. 보물로 지정된 홍교는 세 칸의 무지개다리로 국내의 무지개다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여행수첩(지역번호 061)=자가운전: 호남고속도로 동광주 나들목에서 광주제2순환도로를 타고 화순(29번국도)을 거쳐 보성으로 간다. 서해안고속도로 목포 나들목-영산강하구둑-2번국도-강진-장흥-보성읍. 호남고속도로 승주나들목-22번국도-서평삼거리-857번 지방도-선암사 입구-낙안읍성 입구-벌교읍내. 보성읍에서 율포 쪽 18번 국도를 타고 가다 보면 길가에 차밭들이 늘어서 있다. 대중교통: 광주-벌교/ 광주 송정리역에서 무궁화호 1일 4회 운행. 약 1시간 50분 소요, 순천-벌교/ 순천역에서 무궁화호 1일 4회 운행. 약 25분소요.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보성행 고속버스 하루 2차례(오전 8시10분, 오후 3시10분) 운행. 5시간20분소요. 보성읍에서 율포까지 군내버스 수시 운행. 광주, 순천, 목포에서 보성행 버스 수시 운행.

●잠자리와맛집=보성읍내에 보성관광모텔(853-7474), 골망태펜션(852-1966), 나인모텔(852-5695), 귀빈장(852-2131) 등이 있고 율포해수욕장 옆에 있는 보성다비치콘도(850-1100, www.dabeach.co.kr), 녹차향펜션(853-7754), 골망태관광펜션(852-1966),풀하우스펜션(852-8428), 꽃뜰펜션(852-9633), 그린티하우스(853-7221), 동트는집(852-8533) 등도 권할만하다. 벌교읍내에도 궁전모텔(858-5252), 화이트모텔(858-2261), 그랜드모텔(858-5050) 등이 있다. 인근에 산막을 갖춘 제암산 휴양림(852-4434)과 천관산자연휴양림(867-6974)이 있으며 벌교에서 10-20분 거리의 낙안읍성 민박집을 이용해도 좋다. 보성역(852-7788), 벌교역(857-7788), 보성버스터미널(852-3646), 보성다원(852-2593). 해수녹차탕(853-4566) 이용료는 어른 5000원, 어린이 3000원. 개장 오전 6시-오후 8시. 보성읍에 수복식당(한정식, 853-3032), 특미관(녹돈, 852-4545) 등이 있다. 장흥 수문에 있는 바다하우스(862-1021)는 삼합요리가 유명하고 벌교읍에 있는 홍도횟집(857-6259), 우렁식당(857-7613), 갯벌식당(858-3322), 벌교꼬막식당(857-7675)은 꼬막정식(1만2000원)이 별미다. 벌교읍사무소(061-857-3001)

김초록Ⅰ여행플래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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