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계가 막다른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 끝없는 벤처기업 투자시장 위축과 함께 자금난을 겪어오던 벤처기업들이 최근 극심한 내수침체에다 이라크전 발발, 그리고 그에 따른 수출환경 악화 등을 만나면서 힘이 부치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이들을 어렵게 하는 것은 ‘말라버린 자금시장’이다. 지난 2∼3년간의 혹독한 구조조정 과정을 거치면서 기술개발과 틈새시장 공략에 매달려왔지만 정작 지금은 자금이 돌지 않는다.

흑자도산이 ‘이런 것’

사운드카드, LCD모니터 등 컴퓨터 주변기기를 생산하는 벤처기업 D사(서울 용산구 효창동 소재).
회사 대표인 ㄱ 사장은 지난 98년 8월 거의 맨주먹으로 회사를 일으켜 창업 1년여만인 2000년 매출 34억원에 부채비율이 제로에 가까운 탄탄한 회사로 성장시켰다.
특히 이 회사는 온라인을 바탕으로 한 ‘닷컴기업’들과는 달리 경기도 안성에 다품종소량 생산 공장도 가지고 있다.
ㄱ 사장은 “(회사가) 잘나갈 때도 한여름 직원 모두가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고집했던 ‘알뜰정신’과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철저한 신용’이 급성장의 원동력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벤처투자시장이 얼어붙기 시작한 2001년 이 회사는 주거래업체인 ‘KDS(코리아데이터시스템즈)’가 그해 6월 부도가 나면서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다. 당시 이 회사는 주요생산 품목인 LCD모니터의 80%를 KDS에 납품하고 있었다. KDS가 부도 나면서 이 회사는 그동안 발주 받았던 4억원 어치의 물량만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모두 처분이 불가능한 것들이었다.
다른 곳에서도 잇따라 부도가 터지면서 이 회사의 2001년 매출은 14억원으로 크게 줄었는데 당시 부도액은 이의 절반이 넘는 8억원에 달했다.
ㄱ 사장은 40여명의 직원을 10∼15명으로 줄이고 임금을 대폭 삭감하는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그 결과 지난해 드디어 매출 21억원 당기순이익 3억원이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그러나 ㄱ 사장은 다시 고민에 빠져 있다. 정책자금 및 은행대출금중 상당한 금액이 거치기간이 지나 곧 상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 회사는 2억5천만원의 차입금을 상환했다.
“흑자도산이라는 말이 이제야 실감이 납니다. 아무리 물건이 잘 팔려도 자금이 돌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공장 등 모든 부동산은 은행에 잡혀 있어 담보대출은 더 이상 안되는데 기술신용보증기금에서는 신용보증을 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다른 것은 바라지도 않고 원칙대로만 해달라”며 “재무제표상 성적도 좋고 보증한도도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 왜 안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코스닥붐이 꺼진후 지난 2∼3년간 벤처기업들은 혹독한 구조조정기간을 거치면서 이제 한계기업들은 거의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면서 “정부는 기술력 있는 기업들을 선별, 이들에게 원금을 상환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대덕밸리도 위기

‘벤처기업 클러스터’의 대표주자인 대덕밸리도 입주기업들의 자금난 때문에 큰 위기에 봉착해 있다.
대덕밸리연합회 백종태 회장은 “2∼3년전 입주기업들이 대출받았던 정책자금중 상당부분이 거치기간이 지나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원금상환에 들어가게 된다”면서 “따라서 자금여력이 없는 많은 기업들이 연쇄 도산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도권 업체들이 국내 대기업들과 연계, 단기간 수요를 창출하는 것과는 달리 대덕밸리 입주 벤처기업들은 대부분 처음부터 해외시장을 겨냥하고 장기적인 매출전략을 세우는 곳이 많아 정부는 이를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는 “대덕밸리 벤처기업들의 연쇄도산을 막기 위해 상환기간을 연장해주거나 장기대출로 전환하는 등 살길을 터 줘야 한다”고 했다.
특히 그는 “정부가 여태까지 벤처 창업인프라 구축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벤처기업 성장 프로그램이 전무하다”면서 “이는 마치 아기만 낳고 양육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는 “정부가 기술력 있는 벤처기업들을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정한 스타기업을 창출시키고 이들이 새로운 ‘벤처 성장모델’로 제시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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