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에 들르면 으레 들르는 코스가 정해져 있다.
자금성, 이화원 등이다. 북경시내에서 택시를 부여 잡고 우선 이화원을 찾는다.
날씨는 후텁지근하고 사람들은 바글바글, 입장료를 끊는데만도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내외국인들이 바글거리는 곳으로 아무 정보도 없이 들어가보지만,
결국 건물 사진만 찍는 것이 전부. 사람들에 치이고,
건물에 치였지만 건물 꼭대기 즈음에 올라가서 바라본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건물 앞으로 아름다운 인공호 쿤밍호(昆明湖)가 그림처럼 펼쳐지고 조각배가 유람선이 돼 둥둥 떠다니는 모습은 한폭의 수채화다. 서태후가 여름 별장으로 이용했다는 이화원은 속내야 어찌됐든 한번쯤은 가봐야 할 멋진 곳이다. 그래서인지 영문 표기도 summer palace다.
이곳은 1998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천단공원보다 넓은 294만㎡의 땅에 조성한 인공호수와 인공산 그리고 인공섬을 거느린 황실의 별장이다. 그 광활한 평지의 흙을 파내 쿤밍호라는 거대한 인공호수를 만들고, 그 때 파낸 흙으로 만수산이란 인공산을 건설해 그 위에 누각을 지어 피서지로 이용했다고 하니 가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화원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쿤밍호는 겨울에는 얼음이 얼어서 스케이트를 즐기며, 여름에는 보트와 곤명호 위를 운행하는 유람선을 타고 뱃놀이를 즐길 정도로 넓다. 특히 곤명호 동쪽 기슭에 잇는 17 공교의 난간에 새겨져 있는 544마리의 사자도 볼 만하다. 또한 곤명호를 안고 있는 만수산은 역시 곤명호를 팔 때 나온 흙을 쌓아 만든 인공산으로 화려한 누각이 있으며 이화원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서 필히 올라가보는 곳이다.
어쨌든 서태후라는 인물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등지에서 익히 들어온 이름. 가난한 한족 농민의 딸로 태어나 16세의 어린 나이에 궁궐의 수녀가 되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 후궁으로 간택돼 마침내 자신의 야심을 이루게 되었다는 서태후.
서태후는 정실황후인 동태후를 독살하고, 며느리를 감금 자살케 하였으며 자신이 세운 광서황제를 가택연금 시킬 정도의 막강한 실권을 장악한 후 수렴청정으로 청나라 전체를 좌지우지 하면서 거침없는 폭정을 일삼는 등 중국 역사상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무자비한 여걸로 통한다. 반면, 외세의 침략에 흔들리고 있던 말기의 청나라에서 개혁파를 숙청하고 외세로부터 끝까지 중국을 지킨‘철녀(鐵女)’로 통하기도 한다.
이 외, 그녀의 악랄함이나 극도의 사치와 낭비벽 등의 숱한 이야기들은 드라마나 소설에서 보고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역사의 기록들이 전해온다. 서태후의 한끼 식사에는 주식 60가지와 산해진미의 부식 128가지가 상에 차려졌다는데, 낙수당(樂壽堂)이 그곳이다.
이화원의 전신은 북경 청의원으로, 후에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원명원을 불태웠을 때 함께 파괴됐다. 그러다가 광서 14년(1888)에 서태후는 해군 군비를 이용해서 다시 재건했으며 이 때 이름을 현재의 “이화원”으로 바꿨다. 1900년, 이화원은 또 다시 8국 연합군의 선공을 당했다. 서태후는 서안에서 북경으로 돌아온 후에 다시 거대한 자금을 들여 복구에 나섰다. 서태후가 이화원에 각별한 관심을 둔 목적은 피서와 요양이었으며, 1903년부터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 곳에서 보냈다. 서태후는 이 곳에서 신하들과 국정을 논할 일이 많이 생기자 정원 앞 부분에 궁전과 생활거주지구를 짓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화원은 궁전과 정원 두 가지 기능을 모두 갖춘 황족 정원으로 거듭나게 됐다.
어찌됐든 대단한 호사를 누리고 살았던 것만은 확실하다. 인파를 비껴 내려오는 길에서 요상한 머리모양을 한 사람이 악기를 들고 연주를 하면서 경극에서 들었던 목소리로 노래를 한다. 모여든 사람들과 카메라를 의식한 듯 그의 목소리 톤은 더 높아진다. 잘은 모르지만 제법 재능있는 사람임에는 확실한데, 그곳에서 하는 일은 무엇인지 정작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이 성은 중국 명 ·청 왕조때의 궁궐로 500년 이상 최고 권력의 중심지였다. 뛰어난 정원과 가구, 예술품으로 치장된 9,000여개의 방이 있는 많은 건물들은 명, 청 왕조시대 중국문명의 살아있는 증거이다. 이 건물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은 징산공원이다. 구궁 박물원 북쪽 ‘선우먼’으로 나오면 되는데, 택시기사와의 약속 때문에 빨리 가야 한다는 말에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어렵사리 이파 병관(64607782)이라는 곳에 여장을 풀었다. 중국에서 병관급은 우리나라 모텔 수준이라는데, 한국인들이 모여 산다는 ‘왕징’에서는 한국인이 필요한 모든 것들이 있고 가격도 저렴하다는데, 택시는 몇 번이나 그 주위를 맴돌다가 결국 조선족이 운영하는 800위안이나 되는 호텔에 내려주는 바람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뒤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들은 정보로는 왕징에 가면 통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한다. 나중에 북경에 갈 일이 있으면 필히 이 곳을 통할 생각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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