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에 산자수명한 고장이 어디 하나 둘일까만 경북 내륙 깊숙이 박혀 있는 청도는 그 중 몇 손가락 안에 꼽힐만하다. 아직 처녀티를 벗지 못한 청결한 땅이라고 할까.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운문산, 가지산, 비슬산, 화악산 등은 이 고을의 정결함을 한층 북돋워준다. ‘맑을 청(淸), 길 도(道)-맑은 길이 있는 고장’에서 보듯 언제 찾아도 좋은 곳이다. 하여 이 여름 대구-부산간 고속국도를 타고 청도로 간다.
청도 나들목에서 운문사로 가던 중 만난 운문호의 수려한 풍경이 참으로 절경이다. 호수가 있으면 댐이 있는 법. 물을 가둔 거대한 운문댐도 두 눈에 들어온다. 이 댐은 약 1억3천5백만톤의 담수 능력을 갖추고 대구, 경산, 영천, 청도 주민들에게 식수를 공급한다. 운문호가 바라보이는 길가에 앉아 있으려니 복잡한 마음이 그지없이 평화롭다. 호수는 그렇게 먼 데서 온 여행객을 다소곳이 감싸 안는다.
운문호를 따라 드라이브를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 운문호 드라이브의 참맛을 즐기려면 20번 국도(이 길은 대천리, 공암리를 지나 지촌리까지 이어진다)를 타고 호수 서쪽으로 돌거나 69번 지방도(이 길은 순지리, 방음리를 관통한다)를 따라 남쪽을 일주하면 된다. 두 코스 다 나름대로 운치 만점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번갈아 나타나고 호수 빛은 햇빛의 각도에 따라 달라진다. 은색과 청색의 적절한 배합은 한 폭의 수채화를 만든다. 호수가로는 크고 작은 마을도 들어서 있다. 특히 공암리 마을은 운문호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호수를 품은 개산(316m)과 호산(311m)의 멋도 참으로 아름답다.
운문호에서 마음의 평온함을 누리고 호수가 끝나는 남쪽 길을 타면 운문사(雲門寺)로 갈 수 있다. 청도 하면 운문사가 떠오를 만큼 꽤 알려진 천년고찰이다. 운문사는 들어가는 길부터 예사롭지 않다.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길 양쪽으로 도열한 소나무숲이 내내 길동무가 돼준다. 짧게는 100년, 길게는 200∼3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소나무가 푸른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솔길은 운문사까지 이어진다. 이런 기상 넘치는 소나무지만 어떤 것은 밑동에 생채기가 또렷하게 남아 있어 마음이 편치 않다. 이 생채기는 일본인들이 전쟁물자로 쓰던 송진을 채취하기 위해 칼집을 냈던 흔적이라고 한다. 아무튼 숱한 고난을 이겨낸 나무 한그루 한그루가 대견해 뵌다. 그렇게 길을 걷노라니 시원한 솔바람소리도 정겹게 들린다. 여기선 혼자라도 외롭지 않다. 말을 걸어오는 수많은 생명들이 있으니까.
운문사는 평지 위에 세워진 절이다. 가파른 산에 서 있을 것이라는 길손의 생각은 여지없이 빗나가버렸다. 운문사에 다다르자 절집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범종루를 지나 경내에 들어서니 한쪽으로 처진 소나무(천연기념물 180호)가 보인다. 사철 푸름을 잃지 않고 가지를 사방으로 늘어뜨린 모습이 우람하다. 해마다 봄 가을에 소나무 밑동에 막걸리 12말을 부어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수령 400년을 헤아리는 처진소나무 뒤로는 900년 동안 한자리를 지킨 만세루와 단아한 석등(보물 193호), 삼층석탑(보물 678호), 그 옆으로 조선 초에 세워진 비로전(보물 835호)과 고려 때 지어진 원응국사비(보물 316호) 등이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조용한 산사를 둘러보는데 귓전에 가느다란 예불소리가 와 머문다. 문득 마음이 맑아진다.
신라 진흥왕 때(557년) 세워진 운문사는 1,500년 역사를 가진 대구 동화사의 말사(末寺)이다. 한때 당나라에서 돌아와 세속오계를 전수했던 원광법사와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이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운문사 대부분의 전각은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비구니 승가대학이 들어서면서 스님 260여명이 공부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경내를 돌아볼 때 이따금 비구니 스님들의 독경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텅 빈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준다. 절집을 병풍처럼 두른 운문산과 가지산은 사철 독특한 모습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운문사에 딸린 작은 암자로 가는 길도 수백 년 된 고목들이 들어차 있다. 청신암에서 내원암으로 이어지는 오솔길 옆으로는 전나무와 소나무, 참나무들이 빽빽하다. 고즈넉한 사색의 길이다. 세속에서 묻은 때가 말끔히 씻겨지는 순간이다. 귀를 간질이는 새들의 청아한 지저귐이 연신 들려온다. 운문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북대암. 애기소나무가 자라는 절벽에 매달리듯 붙어 있다. 오르는 길은 시멘트 포장길이다. 그래선지 다른 길보다 운치가 덜하다. 그래도 암자에서 내려다본 운문사 풍광은 멋지다. 북대암과 함께 불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사리암. ‘삿된 것을 여읜다’는 암자 이름이 마음을 울린다. 이 암자 길도 시멘트로 포장돼 있다. 문명이 대세를 이룬다지만 이건 아니다 싶다. 흙길이 주는 소박함, 투박함은 언제부턴가 우리 앞에서 사라지고 있다.
청도가 내세우는 볼거리는 이밖에도 여럿 있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6개의 석빙고 가운데 가장 오래된 청도 석빙고도 그 중의 하나. 조선 숙종 때 축조된 청도 석빙고는 원형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옛 사람들이 얼음을 어떻게 봄, 여름 내내 보관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얼핏 보면 작은 돌무더기에 불과하지만 돌과 돌이 맞물려 아치를 이루고 있는 정교한 형태는 놀랍기까지 하다. 조선시대 상류층 살림집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운강고택과 운문사 가는 길에 있는 매전면의 처진 소나무도 빠질 수 없는 볼거리다.

새마을 운동 발상지
청도읍에서 밀양 방면 25번 국도를 따라 7km쯤 가면 '새마을운동 발상지'란 표석을 만나게 된다. 화악산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들이 그림자를 만들어낸 산비탈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림 같은 마을인 신도1리. 마을 앞으로는 청도천과 국도, 신대구부산 고속도로가 지나고, 경부선 철로를 달리는 열차의 기적소리도 들을 수 있다. 아담한 양옥집 50여 가구에 주민 130여 명이 사이좋게 모여 산다. 아득한 역사가 된 이 마을에서 우리는 새마을운동의 정신을 다시금 되새겨볼 수 있다. 길가에 붙어 있어 오가는 길에 한번쯤 들러볼만하다.

청도반시(盤枾)와 한재 미나리
청도는 청도반시(씨 없는 감)로 해서 더 유명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도반시는 육질이 부드럽고 과즙이 많은 것이 특징. 자연바람에 말린 홍시는 씨가 없어 감 가공식품을 만드는 데 제격이다. 이른바 '아이스 홍시'는 청도의 대표적인 감 가공품으로 대형할인점이나 백화점에서 선보인다. 또한 감을 발효 숙성시켜 감와인을 만들기도 하는데 1, 2단계 과정을 거쳐 병에 주입한 후 보통 1년 이상 숙성시킨다. 청도에 가면 일제가 1896년에 착공해 1904년에 완공한 철도터널(길이 1015m)이 있는데 요즘 이 터널이 관광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폐기됐던 터널이 감와인 저장고와 시음 공간으로 변한 것. 터널 안은 연중 기온이 14~15도, 습도가 60~70%로 일정해 와인 숙성의 조건을 갖췄다. 두꺼운 철제문으로 만든 터널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직선으로 쭉 뻗은 아치형 터널에 수백 병의 와인이 전시돼 있고, 그 앞에 시음코너가 꾸며져 있다. 이곳은 문화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각종 전시회는 물론, 공연도 가능하도록 스테이지와 객석이 갖춰져 있다. 더운 여름에 마땅히 갈 곳이 없다면 이곳에서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청도와인 홈페이지(www.gamwine.com, 054-371-1100) 참조. 이서면의 예던길따라(054-372-8314)에서는 전통염색기법을 이용, 감물 들인 천으로 염색옷을 비롯해 커튼, 베개, 보자기, 버선, 지갑 등 각종 소품과 생활용품을 만든다. 천연염색 체험을 할 수 있고, 주인이 직접 다양한 종류의 차를 대접한다.
미나리도 청도를 알리는 대표적인 농산물이다. 청도읍 남쪽 화악산 자락의 작은 고개 한재골 일대에서 생산되는 한재미나리는 지역의 명칭을 따 붙여진 청도 특산물이다. 보통 8, 9월에 파종하여 1월에서 5월까지 꾸준하게 출하된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미나리는 화악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과 지하수로 재배해 고인 물로 재배하는 일반 미나리와는 다르다. 농약도 전혀 사용하지 않아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다. 그래서인지 향이 유독 진하고 고소한데 미나리를 즙으로 짜서 마시면 피가 맑아지고 변비가 없어지며 해열, 해독, 간 기능 강화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2차선 도로를 따라 한재골로 올라가다 보면 미나리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 수십 동을 볼 수 있는데 이곳 마을에서 미나리만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연간 60여 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한재미나리작목회(054-371-5597)를 중심으로 4개 작목반이 미나리를 재배하는데 생산, 출하, 품질, 가격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여행쪽지(지역번호 054)=새로 뚫린 신대구부산간 고속국도를 타고 청도 나들목으로 나오면 운문사(운문호), 운강고택, 석빙고 등지로 갈 수 있다. 경부고속도로 북대구나들목에서 나와 신천대로-30번 지방도를 이용하거나 동대구나 경산나들목에서 나가 25번 국도를 타고 가도 된다. 부산에서는 김해 방향 14번 국도를 타고 진영, 밀양, 유천을 지나면 청도에 닿는다. 1시간40분 소요. 서울역(KTX)-청도역(동대구역 환승, 무궁화호)까지 2시간 30분 소요. 청도시외버스터미널(372-1565)에서 운문사행 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있다. 운문사 입장료: 어른 1,300원, 어린이 500원. 운문사 종무소(372-8800), 청도군 문화관광과(370-6376)
■맛집과 잠자리=운문사 입구에 있는 성원식당(371-6649)은 어탕국수가 맛있고, 청도읍(청도역 앞)에 있는 원조할매추어탕(371-2349), 자연산청도추어탕(371-5510)은 맑은 국물에 시래기를 듬뿍 넣은 경상도식 추어탕을 내놓는다. 1인분 4000-4500원. 운문사 앞에 후레시힐(371-0700), 운문댐 하류에 산수장(373-4335), 운문파크(371-5951), 낙원장(373-6113) 등이 있다. 운문면사무소 뒤의 청운장(371-9700)도 깨끗하다. 지하 1008미터에서 끌어올리는 용암온천은 청도 여행을 마무리하기 좋은 곳이다. 43도의 게르마늄 유황탄산온천수로 용암온천관광호텔(371-5500)이 가장 유명하다. 데우지도 식히지도 않은 적당한 온천수는 객실까지 공급되며 스파시설, 찜질방, 풀장 등도 갖추고 있다.

글: 김 초 록(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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