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리스본에서의 남은 시간은 단 하루뿐이다.
에부라를 우선 선택한 것은 서쪽의 동선을
생각해서다.
코임브라는 포르토로 돌아가는 중간지점이니
무리를 한다면 반나절 정도는 소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전날 일본인 여성에게 들은 정보를 따라
시외버스 터미널로 나선다.
jardim zoologlco sete Ruis라는 역이었는데
그녀는 ‘세테’라는 말을 여러번 했다.

역무원들은 보편적으로 친절했고 플랫폼 번호나 차 시간표를 상세하게 잘 가르쳐 주었으며 안내대에서는 차 시간표를 구획마다 나뉘어서 준다.
포르투갈은 시내 지하철과 시외버스를 이용하는 것에는 아무 불편함이 없다. 에부라 역사 지구(Historic Centre of Evora)까지 가는 동안 버스 차창으로 비쳐진 풍치가 매우 멋지다.
올리브 나무 밑으로 피어난 야생들꽃, 그리고 흔하게 보았던 방목된 소들의 한가로움이 카미노 길에서 보았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선다. 햇살을 받으며 슬슬 밀려오는 졸음도 달게 받는다. 바로 옆에 동양인 여자가 앉아 있었지만 말을 건네진 않았다. 그가 한국인일지라도 말을 건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유럽 여행에서 느낀 점이다.
그런데도 옆자리에 혼자 앉아 있는 동양인에 대해 언급하는 이유는 그녀를 다시 한번 만났고 그녀가 한국인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학생이라고 했으며 카미노를 10일 정도 걸었고 남미를 거쳐서 배를 타고 포르토로 왔다는 것이다. 등짐을 짊어진 배낭이 무거워서 잠시의 대화도 힘겨워 했으며 선글라스를 벗어주면서 벌레 물린 눈을 보여주었다.
유럽이 세 번째라는 그녀. 속내는 알 수 없지만 흉내내는 여행이 아닌, 자기 만의 유럽 여행을 제대로 만끽하고 있는 듯하다.
어쨌든 이렇게 자그마한 소읍을 여행하는 일에 솔솔 재미가 붙는다. 비슷비슷한 골목길 걷는 것도 좋고 으레 만나는 바에서 막 뽑아낸 커피 한잔 마시는 일이나 과일가게 들어가서 먹고 싶은 과일 몇 개 비닐봉지에 담고 다니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되었다.
특별히 말할 이유 없고, 매일 같은 사람을 볼 필요도 없으며 소읍이니 반나절이면 아무리 길을 헤맨다 해도 원하는 곳은 다 둘러볼 수 있다.
이곳은 1986년에 지정된 세계문화유산지인데 박물관 도시로 불린다. 구시가지를 둘러싼 성벽은 길이가 6km. 프랑스 건축가 보방이 제시한 모델에 따라 지었다고 하는데 시내 탐험을 하면서 만나는 성벽은 눈길을 잡아 끌기에 충분했다.
에부라의 역사는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15세기에는 포르투갈 왕의 거소였고 16∼18세기 건축들은 브라질이 포르투갈 건축에 영향을 주었던 곳이다. 맑은 날씨 덕분이기도 하지만 왠지 깨끗하고 잔잔한 느낌이 드는 것은 건물들이 보편적으로 흰빛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흰 도시’라고도 부른다. 이곳은 로마 시대에 고도 300m 정도의 언덕 위에 성채 도시로 탄생했는데 그 후 이슬람교도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레콩키스타의 거점이 되었다. 특히 이 도시에는 포르투갈의 황금 시대에 독특한 건축 양식이 생겨났으며, 그 양식은 신대륙 식민지도시 건설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러나 1580년에 포르투갈이 에스파냐 왕실에 합병되자, 에부라의 화려하던 시대도 막을 내렸다.
에보라 박물관을 지나면 제법 번화가인 듯한 Giralda 광장을 만나고 그곳에 있는 인포멘션에서 지도 한 장 받고, 그저 체크해주는 곳을 찾아다니면 되는 일이다. 골목에 있는 바에 앉아 꼴두기를 이용한 메뉴를 시켜 제법 맛있는 점심을 먹는다. 그저 길목따라 가다 손쉽게 만날 수 있던 곳이 대학이다.
1559년에 창설된 연륜 깊은 에스피리투산투 대학은 16~18세기에는 쿠임브라에 필적하는 지적 중심이었다고 한다. 르네상스 양식 건물인데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어둠침침한 대리석 벽으로 된 넓은 회랑. 건물 창너머로 운동장이 보이고 그 앞으로도 건물이 이어진다. 마치 요새처럼 보이는 건물. 특히 교실 입구에는 강의 과목을 장식 타일로 표시해 놓았다.
그곳에서 다시 성벽을 따라 가서 만난 곳은 공원 비슷하게 꾸며 놓은 곳이다. 이곳에서는 전부는 아니지만 시내 북쪽지역이 조망되었는데 멀리 카사발랑카라는 곳이 보인다. 그 밑으로도 예사롭지 않은 것이 보이는데 바로 수도교다. 이 수도교도 로마시대의 흔적을 보여준 것중 하나이다. 공원 앞쪽에서는 부서진 건축조각은 ‘디아나 신전’. 이 또한 로마 시대에 지은 건축물이다. 지금은 콜로네이드만 남아 있는데, 이 곳에서는 젊은이들이 무대를 만들고 있다. 고건축물과 현대적인 것이 어우러진 것이 에부라 현실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곳을 나와 다시 광장쪽으로 나와 ‘해골집’으로 불리는 성 프란시스코 성당을 찾았고 이름도 모른체 그저 눈도장만 찍고 돌아서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에는 언어가 통하지 않고 자료가 전혀 없어서 나름대로 에보라를 보고 왔다 해도 미흡한 점이 많다. 어쨌든 이곳은 이슬람교도가 지배한 시대의 자취가 남아 있다는 점과 한번쯤 찾으면 좋을 곳이라는 것이다.
그날 제법 만족스러운 여행을 했고 리스본에 도착했을 때는 시간이 넉넉할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벨렝탑을 보러 갔다가 또 한번의 우여곡절을 겪는다. 그것 또한 지금 생각하면 에피소드로 남겨질 이야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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