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고 단아한 분위기의 ‘선교장’
대관령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강릉은 언제 찾아도 아름답다. 포구, 산, 호수, 바다 등 푸름 가득한 자연은 도시민들의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씻어준다. 강릉은 땅 전체가 관광지이지만 먼저 예스러움과 고풍스러움이 물씬한 선교장으로 가보자. 강릉의 전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옛 가옥으로 경포호와 인접해 있다.
선교장(중요 민속문화재 제5호)은 가옥의 규모도 크지만 4천여 점에 이르는 장서와 손때 묻은 생활유물, 거기에다 아담한 연못이며 널찍한 정원까지 갖추어 놓아 살림집으로서는 드물게 완벽한 짜임새를 보여주고 있다. 개인 주택으로는 가장 넓다는 이 살림집은 조선 시대 상류 계층이었던 전주 이씨 일가의 저택으로 지금도 그 후손이 살고 있다.
선교장(船橋莊)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의 옛 지명 배다리에서 유래한 것이다. 경포호가 지금의 크기보다 훨씬 더 넓었을 때 배를 타고 건넌다고 하여 배다리 마을(船橋里)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그 넓이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경포호는 한때 오죽헌에서 강릉대학으로 가는 길목까지 30리에 이르는 긴 호수였다고 한다.
강릉 사람들은 선교장을 곧잘 아흔 아홉 칸 집이라고 부르는데, 지금은 쉰다섯 칸만 남아 아쉬움을 더해준다. 그래도 각각의 건물들이 보여주는 멋은 현대인들에게 전통의 향기를 물씬 느끼게 해준다. 세월의 부침에 따라 약간의 손질을 거치다 보니 본래의 모습을 조금 잃어버린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99칸 집이었을까? 그 당시 조선시대 양반들의 집은 어떤 경우에도 아흔 아홉 칸을 넘을 수 없었다고 한다. 돈과 권세를 드날렸던 양반들에게 99칸의 의미는 자못 큰 것이었다. 궁궐의 법도를 지키기 위해서도 99칸 이상은 지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선교유거(仙橋幽居)라는 현판이 붙은 솟을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옛 사대부 집안의 체취가 그대로 느껴진다. 안채며 사랑채인 열화당이 우선 눈에 띈다. 세월의 때가 묻은 돌계단이며 처마가 예사롭지 않다. 대청, 사랑방, 참방, 누마루가 합쳐진 구조로 툇마루 앞에는 햇볕을 막도록 차양을 쳐 두었다. 작은 대청과 큰 대청 사이에는 ㄴ자형의 방이 있다.
선교장이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것은 1984년 6월로, 주욱 늘어선 방마다 조선시대의 세간살이, 식생활용구, 서화 등이 전시되어 있고 손때 묻은 소품들이 가득해 당시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선교장 앞에 세워진 민속 박물관에는 조선 시대의 의복을 비롯하여 우리 조상들이 쓰던 여러 가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갖가지 모양의 장승이 눈길을 끌고, 연못 위에 세워진 ‘활래정’이란 정자가 꽤나 멋스럽다. 활래정은 선교장 정원에 판 인공 연못 위에 세운 정자로 순조 16년(1816), 그러니까 열화당을 세운 다음 해에 세웠다. 정자 이름은 주자(朱子)의 시 [관서유감(觀西有感)] 중 『위유두원활수래(爲有頭源活水來)』에서 따왔다고 한다. 벽면 전부가 띠살문으로 되어 있으며 방과 마루를 연결하는 복도 옆에 접객용 다실(茶室)이 있다.
선교장은 전체 건물들이 자유스럽고도 단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기후, 장소 같은 지역적인 특성을 잘 살린 집으로 평가받고 있다. 선교장은 크게 안채, 열화당, 동별당, 서별당, 행랑, 활래정, 연지당으로 배치돼 있다. 이들 건물들은 그 당시 상류층 주택의 위세를 짐작케 해주고 있으며 조선후기의 주거생활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선교장 주변으로는 유명한 경포대와 산책로가 있는 경포호수가 있고, 율곡의 탄생지인 오죽헌이 있으며 호수 남쪽인 초당동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을 썼던 허균과 중국에까지 필명을 드날렸던 불우한 여류시인 허난설헌이 살았던 생가가 남아 있어 함께 둘러보길 권한다.
특히 경포 해변길을 따라 5분쯤 내려가면 강문마을이 나오는데 경포호의 물이 바다로 흐르는 곳에 자리한 작은 포구다. 경포팔경의 하나인 강문어화(江門漁火)는 강문 앞바다에서 밤에 불을 밝히고 고기잡이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말로 밤바다를 환히 밝힌 불빛은 길손의 마음을 환상으로 이끈다. 강문마을에는 이색적인 볼거리가 하나 있다. 바로 하늘을 향해 키를 올린 솟대이다. 일명 ‘진또배기’라고 부르는 이 솟대는 Y자 모양의 긴 나무 꼭대기에 세 마리의 나무 기러기를 깎아 올린 것으로 바람과 불, 물의 3가지 재난을 막아 마을의 안녕과 농사가 잘되고, 고기가 많이 잡히기를 비는 상징물이다. 또 이곳의 진또배기는 우리나라에 흩어져 있는 솟대 가운데 조형미가 가장 뛰어나다고 한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비상을 꿈꾸는 그 몸짓에서 어떤 경건함마저 읽을 수 있다. 옛 사람들은 솟대를 장승, 돌탑, 서낭당, 선돌, 당산나무와 함께 마을지킴이로 떠받들어 왔는데, 하늘로 길게 뻗어 올라간 솟대가 마을의 액을 물리치고 복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었다. 솟대는 주로 마을 입구에 세우는데, 장승이나 당산나무와 같이 서 있는 경우가 많다.
해변길은 남쪽으로 쭉 이어진다. 그 끝머리에는 바다낚시터로 좋은 안목항이 있다. 안목은 원래 ‘앞목’이었다고 한다. 마을 앞에 있는 길목이란 뜻이다. 일본인들이 앞목을 발음하기 어렵다고 해서 안목으로 고쳐 부른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강릉의 젖줄인 남대천 하류에 있는 자그마한 항구로 남대천의 큰 물줄기와 거대한 동해의 파도가 맞부딪쳐 힘겨루기를 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저 멀리 대관령의 준봉들이 아스라하고 백사장을 박차고 오르는 갈매기의 날갯짓도 언제나 볼 수 있다.
강릉-주문진을 잇는 7번 국도변에 있는 오죽헌은 신사임당의 사연과 발자취가 배어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신사임당이 용꿈을 꾸고 율곡을 낳았다는 몽룡실, 율곡 영정을 모신 문성사, 신사임당과 율곡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는 율곡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주위에는 수 백 년 된 노송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 운치를 한층 더한다. 이밖에 정동진, 모래시계공원, 헌화로, 금진항, 대관령옛길, 오대산 소금강, 사천항, 영진포구, 주문진항 등도 강릉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곳들이다.

땀 흘린 뒤의 신명나는 잔치, 강릉 단오제
오는 6월 4일부터 11일까지 남대천 일원에서는 단오제(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가 성대하게 펼쳐진다. 단오는 우리 민족의 멋과 흥이 담긴 아름다운 명절이다. 조선시대 때는 설날 추석과 함께 3대 명절로 꼽힐 정도였다. 해마다 6월이면 강릉 남대천을 비롯해 영광 법성포, 서울 등지에서 단오제 행사가 열린다. 그 중에서도 강릉 남대천은 단오제가 가장 성대하게 치러지는 곳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릉단오제는 이 고장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강릉 남대천변에서 화려하게 치러지는 단오제는 이 지역 사람들의 긍지이자 자부심이다. 강릉 사람들이 가꿔온 강릉만의 전통으로 해마다 축제 기간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든다. 모내기를 끝낸 농민들은 물론이고 전국에서 찾아온 장돌뱅이, 그리고 관광객들이 어우러져 한바탕 신명을 돋운다.
강릉단오제는 음력 4월 5일 신주(神酒)를 빚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신주는 신에게 바치는 가장 중요한 제물이다. 신주는 강릉시장으로부터 쌀을 받아 과거 관청으로 쓰였던 건물인 칠사당에서 빚는다. 이때 혹시나 생길지 모를 부정을 몰아내기 위해 배가 볼록한 독 안에 술밥이 담기면 창호지로 깨끗이 주둥이를 여민 다음 금줄을 두른다. 신주빚기가 끝나고 이어서 4월 보름에는 대관령에 올라가 산신제를 올리고 서낭신을 모셔오게 된다. 산신제를 먼저 지내고 이어서 국사성황신위의 위패를 모시고 행하는 서낭제에서는 강릉시장이 초헌관을 맡아 민 관 협동의 모습을 보여준다.
유교식 제사가 끝나면 무당이 굿을 한다. 굿은 부정을 물리치는 굿과 서낭을 모시는 것으로 간단히 치러진다. 이어서 신목(神木)을 베는데 신목은 국사서낭신의 신체의 기능을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요란한 제금 소리와 무녀의 축원으로 신장부가 잡은 나무가 떨리며 신이 내리면 베어서 내려오는데, 이때 사람들은 오색의 예단을 걸며 소원성취를 빈다. 위패와 신목을 모신 일행은 신명나는 무악을 울리면서 대관령을 내려온다.
단오날은 일 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이라 하여 오(午)시를 맞아 약쑥과 익모초를 뜯어 말렸다. 또 대추가 막 열리기 시작하는 때여서 대추나무 사이에 돌을 끼워 더 많은 대추가 열리기를 기원하는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라는 풍습도 전해온다. 막 수확한 밀로 국수를 해먹고 수리취를 넣어 둥글게 절편을 만들어 먹었다. 올 한 해도 더위 타지 말고 건강하라고 단오부채를 선물하기도 했다.
강릉 남대천변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장꾼들과 관광객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행사장에는 만물상이 따로 없을 정도로 갖가지 물품들이 가득하다. 밤이 되면 겹겹이 쳐진 휘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들로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룬다. 직장에서 퇴근한 사람들까지 가세해 낮보다 밤이 더 붐빌 정도이다. 모내기를 끝낸 농부들이며 아기를 업은 엄마, 삼삼오오 짝을 지어 찾아온 학생들까지, 무엇보다 지역 주민들의 참여 열기가 뜨겁다.
민속명절인 강릉단오제 행사에서 난장의 풍경은 모든 것을 압도한다. 단오제는 난장에서 시작해 난장에서 끝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드넓은 남대천 행사장에는 밥장수, 술장수, 떡장수 등 온갖 먹는 것에서 시작하여 옷이나 운동화, 모자, 악세사리, 인형, 농기구와 같은 각종 잡화가 쌓여있고 거기에 서커스 같은 상업적인 공연물과 약장수, 고리던지기 등 장사꾼까지 모여들어 백 여 만 인파로 북적이는 것이 바로 단오장이다. 강릉단오제위원회(033-640-4950).

■여행수첩(지역번호 033)=영동고속도로 강릉 나들목을 빠져나와 강릉 시내로 간다. 강릉시내를 가로지르는 남대천이 단오제 행사장이다. 경포대와 선교장, 강문항, 안목항은 강릉시내에서 10분 거리다. 허균 생가가 있는 초당동은 바닷물을 간수로 쓴 ‘초당순두부’로 유명한 마을. 허균생가 앞에 그 옛날 초당순두부(653-1547) 등 여러 순두부집이 있다. 선교장 가는 길(난곡동 서지마을)에 있는 서지초가뜰(646-4430)은 강릉의 전통 한정식(못밥, 질상, 진지상)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대물림 손맛을 자랑한다. 못밥은 모내기철에 일꾼들을 위해 차린 음식을 말하며 들판이나 논두렁에 펼쳐놓고 먹던 밥이라 하여 들밥이라고도 한다. 질상은 못밥보다 한 등급 높은 상차림으로 못밥 차림에다 모판에 뿌리고 남은 볍씨를 찧어 만든 씨종지떡이 더 나온다. 쑥, 호박, 대추, 밤 등을 넣어 찐 씨종지떡은 영양은 물론 맛도 특별하다. 못밥 8천원, 질상 1만원. 중앙시장 2층 해성식당(648-4313)은 삼숙이탕이 유명하고, 성남동 로얄호텔 뒤편의 옛날집(646-8624)은 오색약수돌솥밥이 맛있다. 강릉에는 커피 맛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 있다. 안목항 부근에 있는 보혜미안(원두커피, 662-5365)과 구정면 어단리에 있는 테라로사(648-2760, www.terarosa.com)가 바로 그곳으로 커피 마니들이 즐겨 찾는다. 경포해변에 깔끔하고 세련된 숙박시설이 많다. 황토와 솔내음(653-7514 www.hwangtosol.co.kr), 휴심펜션(642-5075), 경포바다펜션(644-6222) 등과 선교장(648-5303)의 한옥에서도 숙박이 가능하다.

글: 김 초 록(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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