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 시간을 정하진 않았다.
하지만 제방을 찾아와 샤워하는 동안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화가 난 선배의 목소리가 담긴 메모 한장.
식당에 갔다는 말에 그곳으로 내려갔는데, 선배는 발견할 수 없다. 대신 전날 같이 술자리를 했던 한 아줌마의 아이들이 다가와 정보를 준다.
같이 왔던 아줌마가 화가 나서 마카오로 가버렸다는 것이다.
전날 마신 숙취로 아직도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하다.
마카오 가는 지도도, 여행에 필수 조건인 시계도, 책자도 없으며, 영어 한마디 못하는 이 상황에서 난감하기 짝이 없다.

해외에 나와 자유여행이란 처음이다.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도대체 감이 오지 않는다. 무조건 버스 정류장으로 나선다. 낯익은 젊은 여학생 4명이 같은 버스에 오른다.
홍콩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옥토퍼스 카드’가 유용하다지만 그것도 만들지 않다. 어쨌든, 침사추이라는 곳에서 무작정 내렸다.
도대체 이 지하도는 어떻게 나가야 하는지, 마카오 가는 배 타는 곳이 어딘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나 붙잡고 길을 묻는다. 영어가 되지 않지만 순전히 ‘감’으로 이해한다. 단어 한마디를 던지면서 겨우 알아듣고 묻는 것이다.
첩첩 오지에서 서울에 막 상경한 촌뜨기다. 외모는 무지하게 능숙해 보이면서 하는 행동은 어설픈 정도가, 말이 아니다.
몇걸음 걸으면서 계속 길을 물었고, 페리호라는 표시에서 어설픈 발음으로 마카오를 내뱉었는데 묘하게 알아듣는다. 5분만 걸어가면 된다고 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계속 옷 진열관만 나오는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필자가 물어본 페리호는 유람선을 타는 곳이었고, 그 근처에 관광 안내소가 있었다는 점과 필자가 걸었던 쇼핑센터는 홍콩에서 이름난 하버시티라는 곳이었다.
몇 번을 묻고 하면서 겨우 마카오 배선착장(China Ferry Terminal)을 찾아냈고, 안되는 영어로 왕복권 배 티켓을 끊었다. 오후 1시에 출항해 막배인 6시에 나오는 것이다.
사람들이 따라가는대로 움직였고, 배안에 무사히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데, 한국사람들이 무더기로 들어온다. 40여분을 달려가야 한다는데, 거의 다 와서 한국사람에게 말을 붙인다.
혹시 옵션으로 왔느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했고, 그 버스에 같이 합류할 수 있느냐고 했더니 상관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현지 가이드가 나온다는 말을 듣고 그들보다 조금 일찍 나왔다. 중년의 여성이 여행사 이름을 써서 기다리고 있다. 그녀를 만나 상황을 설명하고 가격을 흥정한다. 아주 저렴한, 반 가격을 내고 한국인의 틈에 끼어 아주 편한 여행을 한다.
89년도에 여행사하는 남편따라 마카오에 왔다는 가이드 이선화씨(85366860105)는 생각보다 차분하고 정겨웠다. 이것저것 설명을 잘해준다. 전혀 알지 못한 정보를 이렇게 손쉽게 얻어낸 것이다.
마카오를 흐르는 물줄기는 보기에는 바다같이 보이지만 주강이라는 강이었다는 것, 그리고 이곳에 사람이 살았던 것은 오래전이었지만 포르투갈의 마르코 폴로가 정착하게 된 이유. 마카오라는 이름이 붙게 된 내역 등등. 중국인들은 외국인들이 와도 절대로 그들을 수용하지 않고, 그들이 중국화 되게 한다는 특징이 있다는 것 등이다.
지금 이곳 마카오에는 50층 아파트가 많이 생기고 있는데, 중국인들에게는 45층은 절대 분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44층 아파트를 지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더니 49라는 숫자는 너무나 좋아한다는 것이라는 것이다.
가이드를 말을 들으면서 첫 번째 도착한 곳은 관음당.
이 사원은 600년전, 원 왕조(1279~1308)때 설립되었고, 1844년 중국과 미국간의 우호무역협정이 최초로 체결된 장소이기도 하다. 눈길을 끄는 것은 천장에 달린 고깔 형태의 향 종이다.
그리고 18 나한전에는 마르코 폴로가 모셔져 있다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이곳의 종교는 무조건 베풀어 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한켠에서 윈타이신 사원처럼 산통 점을 친다. 돈을 내고 재미삼아 해보았고 그에 맞는 글자가 적힌 종이 한 장을 꺼내 뜻풀이를 한다. 그 종이는 3일후에는 태워 없애라는 것이다.
장소를 옮긴다. 마카오는 종로 정도의 거리라는 정보를 얻고 반나절이면 충분히 돌아본다고 했지만 실제로 이동거리는 많지 않지만 어쨌든 걸어서 여행지를 둘러보는 것은 힘든 일이다. 아무리 작아도 사람이 사는, 제법 구색 같은 섬이 어찌 만만하겠는가.
마카오 구석에는 나름대로 포르투갈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성지다. 지난 99년 12월 20일 중국으로 반환된 뒤부터 자치정부가 통치하고 있는데 마카오는 예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똑같고, 마카오 반도의 서남부에 모여 있는 건축물들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금 이곳에 ‘동서양 역사의 중심’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는 교회나 사원, 광장 등은 모두 30개에 달한다. 대부분은 본국으로 돌아간 포르투갈 사람들의 자취다.
버스 안에서 포르투갈 건물 그대로 남은 곳의 학교를 만난다. 들러가고 싶지만 차는 멈추질 않는다. 학교 뒤켠에 성지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가톨릭 사제 서품을 받았던 김대건 신부도 마카오의 파리외방선교회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차는 골목에 세워주었고,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돌 길을 따라 걸으니 박물관이 나오고 그 앞으로 건축물이 무너지고 앞부분만 남은 성바오로 성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화재로 인해 건물은 소실되고 앞쪽의 정문과 토대만 쓸쓸하게 서 있는 성당 앞은 관광객으로 가득하다. 중국에 처음으로 건설된 서양식 대학이었으나 오늘날에는 황량하게 터만 잔존해 있다. 바로 앞 박물관 앞으로는 성벽이 있는데, 딱히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란다.
폐허된 성지에서 한참이나 시간을 보낸다. 계단 및 골목으로는 무수한 관광인파가 물결처럼 출렁거린다. 성 바오로 성당에서 세나도 광장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결국 목적지는 세나도 광장. 먹거리 쇼핑단지가 이어지고, 구석구석 골목은 묘한 매력을 자아낸다. 행여 길을 잘못들으면 헤어나지 못할 것만 같다. 두툼한 육포와 마카오 과자, 계란빵 같은 먹을거리를 파는 작은 가게부터 옷, 화장품 등 각종 잡화를 다루는 상점까지 실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거의 구할 수 있다. 맛도 좋고 실제로 홍콩보다 물가가 싸고 쇼핑몰 또한 저렴하단다. 그 정보를 알았다면 조금 더 시간을 할애할 것을. 시계가 없는 바람에, 야외 커피광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어쨌든 세나도 광장 주위는 유서 깊은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세나도(Senado)는 포르투갈어로 의회를 뜻하는데, 여전히 인민총회 건물이 주인공처럼 서 있다. 400년 전부터 약국 영업을 시작해 지금도 약품을 매매하고 있는 곳을 비롯해 자선단체였던 자애당 등 수백 년의 세월을 거친 건물이 즐비하다. 오가는 사람은 바뀌었어도 광장은 그대로인 셈이다. 마카오 정부는 해마다 건물의 외부를 칠해서 깔끔하게 유지하고 있다.
여행의 1막은 이곳에서 내리고 마카오의 대명사격으로 알려진 카지노장으로 장소를 옮긴다. 카지노장 주변으로 긴 다리가 이어지고 그 다리를 건너면 선착장이다. 카지노장의 건물은 겉으로 보기에도 현혹적이다. 건물 근사한 곳에서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온다.
이미 마카오에 대한 매력은 50% 정도 점수가 가미된 상황에서 더 좋았다고 느꼈던 것은 카지노장 주변을 돌아다니면서다.
자유시간 동안 한적한 거리를 걸으면서 식당가와 길거리 음악밴드 등을 보는 재미가 좋다. 가로등 불빛을 따라 노래 선율이 흐르고 강변으로도 나름대로 볼거리 즐길거리를 만들어 두었다. 집집마다 기웃거리면서 명함을 받아 챙긴다. 한결같이 사람들은 친절하다. Talau Ttiri(85328727202)는 포장마차 같은 모습인데, 강변을 사이에 두고 서예도 써주고 전통 옷을 입고 사진을 찍어주는 젊은 남녀, 식당 등이 있다. Afrikana(8532993678)는 초가집 형태의 건물이 튀고, 아마도 구운 양고기 전문점인 듯하다.
또 한군데는 이태리 음식점인 San Lorenzo's(8532972838)이다. 개장하느라 정신이 없던 그곳에서 귀에 익은 팝송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이 분위기가 너무 좋아 마카오에서 하룻밤을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참으로 행복한 거리다. 실제 마카오를 제대로 보진 못했다. 이곳에는 중국 음식점의 숫자에 버금가는 포르투갈 음식점이 산재해 있다는데, 그것조차 먹어보지도 못했다.
마카오에서 판매되는 포르투갈의 와인이나 맥주도 맛보지 못했다. 또한 포르투갈 음식의 단골 메뉴인 대구 살 크로켓이나 짭짤한 소시지, 소스를 넣고 살짝 조린 바지락도 못먹었다.
그 외 포르투갈 요리에 마카오의 역사와 지리적 조건이 더해진 매캐니즈 푸드(Macanese Food)인 ‘아프리칸 치킨(African Chicken)’등등 미련이 많다. 그 외 전당포 박물관, 와인 박물관 등등 마카오에서 못보고 온 곳이 많다. 기회된다면 마카오는 한번 더 가보고 싶은 여행지다. 카지노장은 정작 관심없어서 일행들과 헤어져 혼자서 오후 6시 배에 올라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온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아도 친절하게 어느 지점에서 몇 번으로 갈아타라면서 버스 숫자를 적어주는 사람들. 운전자에게 내려주라고 말해주는 친절. 그들의 친절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홍콩의 4일 밤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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