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에 애병필승(哀兵必勝)이라는 말이 있다. 억압을 받아 비분에 떨치고 일어난 군대나 세력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가깝게는 일본의 강점기에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핍박을 받았고 그 이전에도 중국으로부터 수없이 외침을 받았다. 조선 시대 중기 이후 소모적인 당쟁과 국력의 약화가 전화를 초래한 점도 있지만 중원과 주변을 통일하려는 북방 민족들의 야심이 빚어낸 결과였다. 수 천년을 걸쳐 강대국과 이웃하면서 때로는 그들과 대적하거나 화친하면서 오늘날까지 우리의 영토와 언어가 지켜진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참 대단한 민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가경쟁력 원천은 ‘기업’

우리가 긴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지만 현재와 같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기술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60년대 이전과 같이 세계 무대에서 ‘천덕꾸러기’신세를 면할 수 없다. 그것이 냉엄한 국제사회의 질서이기도 하다.
필리핀은 60년대 까지만 해도 우리의 꿈이었다. 60년대 중반에 박정희 대통령이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에게 박대를 당한 것은 외교비사를 통해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며 경제개발에 전념하게 한 요인이 됐다는 설도 있다. 50년대에 출판된 우리 나라의 어떤 백과사전을 보니 당시 아시아의 앞선 나라들을 소개하면서 국회 의사당 건물을 중심으로 잘 정돈된 시가지가 펼쳐진 마닐라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러나 몇 년 전 들른 마닐라에서 만난 건 냉방도 안 되는 지프니 속에 가득찬 사람들과 울퉁불퉁한 외곽 도로였다. 필리핀이 앞으로 잘되리라 생각하지만 정정의 불안과 만연된 부패의 사슬을 끊는 데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세계경제포럼이 우리 나라의 국가 경쟁력 순위를 11위로 평가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지난 해에 비해 무려 12계단이나 상승한 것이다. 우리에 대한 평가가 급상승한 배경이 ‘높은 교육수준, 과학기술 수준, 기업 혁신, 거시경제 안정성, 기업활동 성숙도’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가 경쟁력의 원천은 역시 기업에 있다.
더구나 탄탄한 경제적 기반 없이 질 좋은 교육과 과학기술 수준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사실상 전 부문이 기업의 역할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국가 경쟁력에서 10위 이내에 든 나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미국과 영국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국토가 너무 협소하거나 전쟁으로 산업기반이 완전 파괴됐던 나라, 혹은 너무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데다 인구도 많지 않아 경쟁력을 갖추는데 매우 불리한 나라들이다. 이러한 조건이 우리에게 어쩐지 친숙하기조차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이 모든 장애를 가지고 출발했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을 둘러 싼 환경이 쉬운 때가 별로 없었지만 특히 대외 의존도가 높을 수 밖에 없는 우리 경제 구조상, 요즘은 더욱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배럴당 100달러를 육박하는 고유가와 원화가치의 절상은 늘 그렇지만 욱일승천하려는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곤 한다. 유가의 급등은 국가 경제에도 타격이지만 개별 경제에도 많은 부담을 준다.

환율·고유가 경제체질 강화 ‘보약’

우리가 평소에 쓰지 않는 단위라 생소할 지 모르나 1배럴이 약 159 리터니, 배럴 당 90달러라 할 때 리터 당 약 500원쯤 하는 셈이다. 우리가 주유소에서 기름을 살 때는 리터 당 1500원이 넘으니 운반비, 정유비 및 유통 마진을 고려한다 해도 세금이 지나친 것은 사실이다. 얼마 전 만난 독일 어느 대기업의 박사에 의하면 원유 채굴 단가는 리터 당 80원 남짓 한다고 하니 석유 자원이 사실상 없는 우리 나라는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 경제 운용을 잘하고 있다 할 만하다.
우리에게 환율과 고유가는 우리 경제가 지고 갈 천형이지만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는 데는 더없이 좋은 보약이 됐다. 역사가 주는 교훈은 시대가 달라도 공통점이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민족만이 오랫동안 번영을 누린다는 점이다.

김광훈
ASE Korea 품질 관리 본부 선임 부장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