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녕의 가을은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화왕산(757m)의 억새군락지는 두말할 것도 없고, 관룡산(구룡산 740m)의 단풍숲과 용선대가 너른 품으로 다가오길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창녕의 화왕산 정상부근에는 10리가 넘는 억새밭이 펼쳐지는데, 억새 태우기를 통해 억새대가 크고 실해서 사람 키를 훌쩍 넘길 정도다. 억새사이로 난 길을 걷노라면 마치 천상에 서 있는 듯 황홀하다.

새벽같이 집을 나선다. 서두른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처음 화왕산을 찾았을 때, 축제를 앞두고 있었기에 차량을 정상까지 움직일 수 있었다. 그 정보를 그냥 간과하기 어려워 창녕군에 양해를 구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어렵다는 말이다. 대신 등산객들이 많지 않은 시간 평일이라면 중턱까지 차량 이동을 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아량을 베풀어 줬다.
중부내륙고속도를 타고 김천 분기점에서 다시 대구쪽으로 가서 구마고속도로를 갈아탔는데, 목적지인 영산나들목까지 그다지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아침까지 챙겨 먹을 정도로 시간은 여유롭다. 내년에 내륙고속도로만 완공된다면 당일코스로도 넉넉할 것 같다.
화왕산(757m)은 창녕읍에서 오르는 코스와 옥천면에서 오르는 코스 등이 대표적이다. 창녕읍내의 자하곡 매표소를 통하는 것이 최단 코스지만 경사도가 심한편이다. 대신 옥천면쪽은 거리는 길지만 걷는 것이 다소 편한 편이다.
특히 그쪽에는 꼭 가봐야 할 관룡산(구룡산 740m) 자락에 있는 관룡사가 있기에 옥천쪽을 택하는 것이 좋다.
산길을 따라 이동하는 동안에도 의외로 등산객들이 많다. 중턱 즈음에 철책이 있는 곳부터 등산을 시작한다 길은 넉넉하게 넓다. 가을 햇살이 뜨겁다. 중턱까지 손쉽게 이동해서인지, 등산이 힘겹지 않다.
고갯마루를 넘어서 억새군락지가 모습을 드러낼 초입에 허준 촬영장이 있다. 극중에서 허준이 대창풍 환자를 치료하는 집으로 이용했다는 세트장이다. 텅빈 억새군락지에 포인트가 생긴 것 같아 세트장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이제부터 바로 눈앞에 억새밭이다. 화왕산성(사적 제64호)의 동문을 올라서면서 은빛 억새밭이 아침 햇살에 은빛으로 출렁거린다. 5만 8천 평의 너른 억새밭이다.
이 산의 600m 지대에 있는 화왕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성으로 임진왜란 때 곽재우의 분전지다. 억새밭을 에둘러 싸고 있는 성곽은 등산로로 이용되고, 억새밭 중간중간에도 갈래머리를 탄 듯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우선 길을 따라 정상부근으로 오른다. 중간을 기점으로 산은 양쪽으로 나뉘어 있다. 중간 즈음에 삼지(三池)가 있다. 독특한 것은 선사 시대 화산으로 추정되는 3개의 못(龍池)인데, 그 주변으로 갈대가 자란다는 점이다.
그래서 멋진 억새는 물론이고 갈대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 창녕에서는 억새제 대신 갈대제(10월 20일, www.cng.go.kr)를 연다. 천성산의 화엄늪과 비슷한 형상인데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다.
특히 이 삼지와 창녕조씨 득성과 연계가 있다. 신라 진평왕 때 태사공 조계룡(창녕조씨 시조)이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을 알리는 돌 표시적이 억새밭 사이에 숨어 있다. 억새와 갈대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독특한 지형.
산허리를 끼고 사람 키보다 훨씬 큰 억새밭을 걷노라면 긴팔이 필요하다. 맑은 가을 하늘과 무수히 찾아든 등산객들의 형형색색 등산복이 바람결에 억새꽃과 같이 흔들거린다.
두어해마다 보름이면 억새태우기를 하면서 만들어진 억새밭은 시간이 지날 수록 멋진 모습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한없이 기분이 좋아지는 억새밭 여행이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도 인심이 넉넉하다. 더 오랫동안 이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싶지만 길을 서둘러 내려온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인근하고 있는 관룡사를 찾아보기 위함이다. 절집으로 들어가는 돌 계단으로 뻗어 나온 수령 오래된 나무에도 ‘가을색’을 입는 모습이 아름답다. 무엇보다 뒷산 병풍바위와 단풍, 그리고 건물들이 아우러진 모습은 장관이다.
관룡사는 전설에 따르면 원효대사가 백일기도를 마치는 날 화왕산 정상의 삼지(三池)에서 용 아홉 마리가 하늘로 오르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관룡사(창녕읍 옥천리)라 했다고 한다. 관룡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약사전(보물 146호)과 한 칸짜리 전각에 모셔진 석불좌상(보물 519호)이다.
또한 옥천은 고려말 신돈과 연관되어 있다. 신돈의 출생지이자 출가지가 옥천사터다. 신돈의 생모는 옥천사의 종이었다. 신돈이 죽자 절도 폐쇄됐고, 그 뒤 고쳐 지으려다 신돈의 일로 그만두었다고 동국여지승람은 기록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곳을 찾을 이유는 관룡산 중턱, 관룡사 서편 능선인 ‘용선대’가 있기 때문이다. 절집에서 0.68km. 1km도 채 안되는 거리. 석가여래좌상(보물 295호)이 있는 너른 바위는 참으로 ‘멋진’ 곳이다.
여래불 앞으로 관룡산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옥천 마을도 굽이굽이 모습을 드러난다. 금방이라도 땅 밑으로 떨어질 것 같은 위태로움에 현기증이 느껴지는 그곳에 단풍 든 관룡산이 눈 속으로 스며든다.

■찾아 가는 길:영동고속도로 여주 분기점에서 중부 내륙고속도로 이용. 김천 분기점에서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해 대구 방면으로 가면 다시 중부내륙고속도로(옛 구마고속도로)를 만난다. 이 길을 따라 가 창녕 나들목으로 나오면 된다.
■별미집과 숙박:걸어야 하기 때문에 도시락은 필수코스다. 화왕산 가는 길목에 있는 고향보리밥(055-521-2516)을 비롯해 토종닭 등을 파는 토속음식점이 많다. 또한 창녕읍에서 우포가는 길목에 있는 현대쌈밥(055-533-7242)집의 해물뚝배기가 괜찮다. 숙박은 창녕읍내의 모텔을 이용하거나 영산면쪽의 민박집이나 부곡온천쪽을 이용하면 된다.
■주변볼거리:그 외에도 우포늪의 철새떼를 연계하면 되고, 함박산 약수터(영산면 교리면사무소:055-536-3001)의 수질은 인근에 소문나 있다. 또 약수터 200m 아래 영산 석빙고(사적 제 169호)가 있으며 부곡온천도 함께 경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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