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으로 불어대는 가을 바람이 웬지 쓸쓸하다. 가벼운 미열과 함께 코가 맹맹해지면서 환절기의 진통이 느껴진다. 이런 계절은 웬지 가벼운 감기처럼 마음도 몸살을 앓는다. 이럴 때는 아무 생각없이 그저 당일 코스로 철지난 바닷가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이다. 딱히 볼거리도 할거리도 없는 그곳, 바닷가 한켠에 그리움이 배어든다.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지금도 마로니에는....”하는 이름 모를 카페에서 지나간 가요가 흘러 나올 때는 가슴속을 후벼 파는 듯 지나간 옛 사랑이 그리워진다.

관광 객 떠난 해변 정적만 남아

월곶 나들목을 나와 대부도 방아다리 선착장을 한참을 지난다. 대부도에서 시화방조제 공사가 몇 년간 지속된지는 헤아릴 수 없다. 선재대교와 영흥대교가 2000년 연결되었다지만 찾은 것은 처음이다. 세월은 이다지도 빠른 것인가. 대교가 생기면서 거리는 매우 짧다. 너무 가까워서 그런가. 배를 타는 즐거움이 사라져서 일까. 그저 볼거리도 많지 않다.
영흥도에 앞선 섬 선재도(仙才島). 빙 두른 해안선이 고작 12㎞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 밀물 때는 버선코처럼 오똑하게 수면 위로 튀어 오른 섬만 보이지만 막상 물이 빠지면 섬보다 더 너른 갯벌이 나타난다. 선재도라는 이름은 해변의 굴곡이 아름답고 물이 맑아 선녀들이 내려와 멱을 감았다고 해서 붙여졌단다. 이름만으로도 왠지 마음을 끄는 매력이 있지만 눈안에 들어오는 섬은 그다지 새롭지 않다.
물놀이 즐기는 사람들도, 동죽이나 조개 등을 잡는 갯벌체험객들이 사라진 바다는 정적이기 때문이리다. 철지난 바닷가가 다 그런 모습일텐데,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다.
영흥대교를 앞에 두고 멀리 화력발전소 송신탑 너머로 해가 지기 시작한다. 차를 돌려 측도쪽으로 달려간다. 바다 위로는 화력발전소를 잇는 철탑의 어수선함을 피하기 위해서다. 측도를 잇는 비포장 갯길을 앞에 두고 서녘으로 지는 해를 바라본다. 붉게 변한 칠면초와 바닷가에 피어난 갈대가 바람에 하늘거리는 사이로 진하디 진한 낙조가 서녘을 향해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다. 날씨가 흐리려나. 왜 저다지도 핏빛이란 말인가?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 탓에 온몸에 한기가 몰려온다.
차를 돌려 영흥대교를 건너고 다시 횟집촌을 비껴 선착장으로 나선다. 저녁 밤배에서 흐릿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밤일을 떠나려는지, 어부들의 통발 작업이 한창이다.
오후 7시가 되어야만 대교에 불이 켜진다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다. 어둠이 빨리 찾아온 곳에서의 기다림이라 더욱 그런 것이다. 해가 짧아진 것이 새삼 몸으로 느껴진다. 이제 서서히 차가운 겨울 속으로 계절이 빨려 들어가는 것이리라.
바다가 보이는, 멋진 비치 클럽(032-885-3500, www.beachclub.co.kr, 영흥면 내리)이라는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른 아침을 맞는다.
펜션이라지만, 내부 시설은 모텔 수준인 곳이지만 베란다에서 맞이한 정원은 매우 멋지다. 잔디와 울창한 소나무 숲사이로 만들어낸 산책로. 그래서 한달전부터 예약이 밀려든다니, 고개 외로 꼬는 여주인의 말이 이해된다.
전날 바지락 고추장 찌개와 대하, 전어구이를 푸짐하게 석식으로 먹었던 하늘가든(032-886-3916, 영흥면 내리)에서 조식을 해결한다. 연포탕이다. 순전히 갯벌에서 잡힌 낙지는 이제 씨알이 굵어졌다. 호박, 양파 등을 넣고 부글부글 끓어가는 국물에 산 낙지를 넣는다. 약간 짠 듯한 국물 맛은 순전히 낙지 속에 숨겨져 있는 소금 간기다. 1인분에 1만원꼴이다.
지독하게 한갓지게, 서두르지 않은 여행길이 나쁘진 않다. 영흥도에는 용담리, 장경리, 십리포 세군데의 해수욕장이 있다.
용담리를 빼고 장경리해변을 찾는다. 새로 짓고 있는 전망대를 빼고는 딱히 특징이 없다. 철지난 바닷가 저 멀리 조개를 캐는 아낙들의 모습이 보이고, 부부가 갯흙을 파고 뻘게를 잡는다. 한눈에 보기에도 불륜처럼 보이는 연인 한쌍이 넓지 않은 해안길을 따라 산책을 한다. 차를 타고 우루르 몰려온 사람들은 기념 사진 한 장 찍고 떠나가기 바쁘다. 딱히 할일이 없기 때문이다. 인적 뜸한 바닷가 카페에서 흘러간 가요가 흘러나온다. 같은 가요라도 계절에 따라 가슴에 와 닿는 느낌이 다르다. 바로 이것이다. 볼거기 없고, 얘깃거리 없어도 바로 이런 쓸쓸함을 느껴보기 위해서는 낯모를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는 것을.
이내 발길을 재촉해 십리포 해변을 찾아 나선다. 왕모래와 작은 자갈로 이뤄진 해변의 뒤편에는 서어나무(소사나무) 300여 그루가 자리잡고 있는, 특징있는 해수욕장이다. 태안에도 십리포구(의항 해수욕장)가 있는데, 이름이 같다. 소사나무 군락지는 보호를 위해 울타리를 쳐 두었다. 제법 바윗돌이 많은 바닷가에는 낙지와 소라를 잡은 동네 주민들이 밀물을 비껴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물이 많이 빠지는 때인지 제법 들자루가 무거워 보인다.
영흥도 바지락 해물칼국수(032-886-3644)에서 맛있는 만두와 칼국수로 점심을 떼우고 나서도 하루를 보내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남는다. 유료로 즐길 수 있는 영흥바다 낚시터(032-884-3058)를 찾는다. 파라솔 없이 의자가 빙둘러져 있는 낚시터에는 입질이 잘 되는 장소에만 사람들이 몰려 있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물이 매우 깨끗하게 보인다. 바닷물을 미리 받아 모터를 이용해 만들어진 인공낚시터. 입어료는 5만원. 제법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만 민물고기가 아닌 바닷물고기를 방류하니 두어마리만 잡아도 본전은 뽑는 셈이다.

가볍게 나서는 당일치기 여행

웬지 영화속에 무술 단역 배우같은 느낌이 드는 낚시터 관계자가 친절하게 캔 커피 한잔을 선물한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다. 입질 잘하는 사람은 셀수 없이 많은 물고기를 잡아서 가져 간다고 한다. 어장 중간으로 나갈 수도 있다는데, 아가씨는 공짜로도 옮겨줄 수 있지만 아줌마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스갯말로 질문한다. 할머니 아가씨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좀더 생각해봐야겠단다. 어쨌든, 낚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하루 정도 시간을 보내기에는 괜찮을 듯 싶다.
이것 뿐 아니다. 이곳에는 화력발전소와 인천시수산종묘배양연구소(032-883-0398)가 있다. 화력발전소 출입은 일반인은 힘들지만 종묘배양연구소는 체험이 가능한 공간이다.
인천시가 운영하는 수산종묘배양연구소는 고급 어류, 패류, 갑각류의 종묘를 대량 방류하고 지역 특산품종을 개발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해양수산 체험 학습관과 갯벌체험장을 함께 운영하고 있어 물고기를 직접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다. 토, 일, 공휴일과 국경일을 제외하고 단체관람을 할 수 있고 관람료는 따로 없다. 전화로 미리 예약을 해야 하며 개인 관람객은 받지 않는다.
어쨌든 영흥도는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으며,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하였으나, 고구려, 신라가 한강유역을 장악하는데 따라 소속이 바뀌었다. 나오는 길목, 잠시 차를 세우고 물빠진 목섬을 바라보는 것으로 영흥도 여행을 끝을 맺는다. 그저 가슴 답답한데, 갈 곳 마땅치 않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당일 여행을 떠나보면 좋을 곳이다.

■자가 운전:서해안고속도로 당진. 안산방면으로 진행해 월곶IC에서 시화방조제를 거쳐 대부도를 지나면 선재도와 연결되고 여기서 다리를 건너면 영흥도에 닿는다. 버스는 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선재도를 거쳐 영흥도까지 가는 차(태화버스 032-883-5111)를 이용할 수 있다. 또는 인천 연안부두나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에서 대부해운(카페리호)을 타도 된다. 기타 문의: 영흥면사무소(032-886-7800~2)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