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고 오전에는 독실산으로 향한다. 신안군에서 가장 높은 산이지만 산정 경찰부대까지 차량이동이 가능하다. 일반 버스가 없기 때문에 민박집의 트럭을 이용해야 한다. 헬기장 표시에서 내려, ‘하늘 정원’이라는 팻말을 달아 놓은 경찰 레이다 기지에 들어서면 전경들이 친절하다. 시원한 뽕잎차를 한잔씩 나눠주기도 하고, 으레 정상까지 안내를 한다.

돌 계단 몇 개만 오르면 바로 정상이다. 지나치게 짧은 거리라서 다소 아쉽지만, 전망이 시원하다. 날 좋은 날에는 바다와 3구 마을까지 내려다 볼 수 있고 홍도, 흑산도, 만재도, 제주도가 눈에 밟힌다지만 아쉽게도 구름층이 두껍다. 하산길에 운좋게 후박나무를 채취하는 모자를 만난다. 칠순을 훌쩍 넘겼다는 할머니는 능숙하게 후박나무 껍질을 벗겨 내고 있다. 이 즈음이 아니면 껍질을 벗길 수 없다는 것이다. 주로 수령이 오래된 나무 껍질을 벗기는데, 젊은 아들은 톱으로 나무를 베어내주면 쓰러진 채로 껍질을 벗기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 것만으로도 충분한 수입이 되었는데, 지금은 그때나 가격대가 똑같아서 별 소득이 없다는 것이다. 후박나무 껍질은 기관지 등에 효험이 있는데, 물처럼 달여먹으면 건강에 좋다고 한다. 새순은 붉은 색을 띠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다시 2구로 향하는 해안길이 마치 울릉도 천부면쪽을 연상케 한다. 그렇게 오전 시간을 보내고 다시 점심을 먹고 오후 일정은 배를 타고 유람을 하는 일이다. 안내자로는 “가거도 멸치잡이 노래”의 보존회장인 최호길씨가 동반했다. 그의 이력은 매우 독특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뭍으로 나가 서울에 있는 서라벌 예대를 졸업하고 연극을 했고, 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1년정도만 있으려 했다가 할 일이 많아서, 섬에 아예 정착했다고 한다. 배는 십자굴을 비롯하여, 곰바위, 벼락바위, 중바위 모녀바위, 검은여(손가락바위), 개린여, 칼바위 등 이곳저곳 기암을 보여주면서 잠시 배를 멈추어 주었는데, 여느 곳과 다르게 유창하게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다. 그만큼 때가 묻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바다에서 보는 항리 마을과 병풍을 이룬 절벽, 섬등반도의 모습이 새롭다. 낚시배와 바위벽에 붙은 조개류를 따는 사람들, 갯바위 낚시객들을 스쳐 지나가면서 3구(대풍리)에 배가 멎는다. 가파른 벼랑길에 자그마한 더덕밭을 만들어 놓은 할머니를 만난 것은 3구다. 이 마을은 가거도 세 마을중에서 가장 민가가 작았는데, 교회가 있는 1구까지 가려면 족히 3시간 이상은 걸어 나가야 한단다. 그렇게 주마간산으로 3구를 벗어난다.

*국흘도 해조류 번식지와 등대

터널을 벗어나면 이번엔 가거도의 새끼섬인 국흘도(천연기념물 제341호)가 전설처럼 떠있다. 바다제비들의 고향이다. ‘국흘’이라는 독특한 섬 이름은 새들의 울음소리가 ‘구클구클’ 들린다 해서 붙었다. 배를 세우고 잠시 바위섬으로 오르니 평평한 공간이 나온다. 가까이 바라본 바윗돌이 매우 독특하다. 섬은 2구, 3구를 거쳐 1구로 오는 길목에서 등대로 가는 나무 계단을 만난다. 가거도 등대는 뱃길이 아니고서는 도보로 찾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것이다. 산허리를 3-4시간은 족히 걸려야 만날 수 있는 등대다. 등대 오르는 길목에서는 패총이 있던 자리를 지나면 산능선에 서 등대를 만나는데, 직원 사옥이 있다. 최근에 지은 듯한데, 벽돌식 집이 펜션처럼 번듯하다. 오로지 직원용이라서 일반인들은 잠을 청할 수 없단다. 등대가 있는 곳이 예전 선녀들이 춤을 추던 곳을 가무작지(歌舞作地)라는 곳이고 주변으로 가거도 8경인 회룡산이 펼쳐진다. 회룡산에는 전설이 흐르고 선녀의 눈물이 고여 항상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선녀봉이 있다. 배는 1구의 등대와 몽돌 해변인 동개해수욕장도 지나친다. 이 해수욕장 주변으로 펼쳐지는 마법의 성처럼 솟은 바위들이 있어 눈길을 끌지만 지금 공사중이다. 어쨌든 유람선은 제법 긴 시간동안 섬 주변을 돌았는데, 간간히 낚시꾼들을 태웠다. 그들은 정말로 많은 고기를 낚은 것을 볼 수 있다.

*사람도 날려버릴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어대는 섬등반도와 짝지 해변

섬에서 3일째, 아침 잠시 맑아진 듯한 섬은 다시 안개가 끼기 시작한다. 다시 첫날 오른 섬등반도를 오른다. 바람이 심해서 마치 대관령 목장의 초지위나 소백산 정상에 선 듯한 착각을 일게 한다. 1백고지 정도인데도 마시 아고산지대에서 느껴지는 그런 기분이 든다. 산능선에서 바라본 2구 풍광에 넋을 잃고 만다. 멀리서 보면 마치 아스라이 보이던 소매물도 같은 느낌도 든다. 1구에서 2구를 잇는 시멘트 길은 흑산도 상라봉 길과 조금은 닮아 있다. 바람 덕분인지 덥지 않다.
그렇게 한참이나 섬등허리에서 놀다가 이곳에서 ‘짝지 해수욕장’이라고 부르는 곳을 찾기로 한다. 갯돌이 깔린 해변인데, 지역 사투리로 짱돌이 변해서 짝지로 불린다는 곳이다. 협곡으로 내려가는 시멘트 계단 사이로 벼랑 같은 바위가 있어서 무서울 정도로 회오리 바람으로 일렁거린다. 길 중간 즈음에 솟대가 있다. 나무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극락정토라는 글씨도 쓰여 있다. 무슨 무속인이나 마을에서 해신제를 지내면서 해 놓은 줄 알았더니. 이 솟대는 영화를 위해서 만든 것이란다. 섬을 벗어나 빌려다본 극락도 살인사건에서 첫 장면, 형사가 살인사건을 조사하기 내린 곳이 이 짝지 해변 방파제였고,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서 화면에는 극락도라는 글씨가 그대로 쓰여 있었다.
검은 갯돌에 파도가 치면서 ‘짜르르, 짜르르’ 몽돌 소리가 나고, 아스라이 검은 해변이 길게 이어진다. 한참을 흰 파도를 보면서 해변에 주저 앉아 있었다. 묘한 그리움이 가슴속을 헤집고 다닌다. 무슨 연유인지는 알 수 없다. 단지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이 밀려온다.
오후 시간에는 이장이 운행하는 어선을 타고 갯돌로 나간다. 그곳에서 만사 제쳐두고 거북손과 삿갓조개를 따는 체험을 한다. 겨우 30분 정도 채취하고 나서 배를 타고 나올 수밖에 없었지만, 제법 재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만찬은 화려했다. 돌돔회와 삿갓조개를 넣고 끓여낸 된장뚝배기는 여느 곳에서 맛볼 수 없는 맛을 내주었다. 모두 모여 술 한잔을 하고, 섬을 떠나기 아쉬운 마음에,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그리움을 가슴속에 깊이 숨겨 뒀다. 한번쯤은, 이 여름, 피서철을 겨냥해서 한번은 가봐야 할 멋진 섬이 아닐런지.

■교통편:가거도로 바로 가는 배편은 없다.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도초·비금도∼흑산도∼홍도∼태도를 거쳐 들어간다. 4시간 소요. 배편은 1일 1회 운항(목포 오전 8시, 가거도 낮12시30분 출발)된다. 가거도로 가는 뱃길은 주의보가 떨어지면 결항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항상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또 배멀미에 충분히 대비하는 것이 좋다. 동양고속 (061-243-2111-4, www.ihongdo.co,kr, 홀수일)과 남해고속(061-244-9915, 짝수일)이 번갈아 다닌다. 이용요금은 4만7550원.
■기타 정보:가거도에 유람선은 없다. 10명 기준 1인당 2만∼3만원을 내면 어선을 이용해 가거도를 한바퀴 돌며 명소를 안내해준다.
■숙박:가거도항에는 숙식을 겸하는 식당과 여관이 많다. 그중에서 2구쪽에 자리를 잡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섬누리(061-246-3418, 011-9663-3392, sumnuri.com)가 독보적이다. 이곳은 양식장이 없다. 100% 자연산 회를 저렴한 값에 먹을 수 있다. 특히, 싱싱한 전복과 뿔소라, 해삼 등이 별미다. 흑산면 가거도 출장소(061-246-5400)
■운항시간은 선사사정에 따라 변동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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