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것도 직업병의 하나일 것 같다. 벌써 몇 개월동안 중국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막상 가보면 여행이라기보다는 돈 많이 들고, 몸도 힘들어서
당분간은 중국땅을 밟지 않으리라 하던 생각이 귀국하고 나면 어찌된 영문인지,
모든 일들이 아련한 ‘추억’이라는 단어로만 기억되니 말이다.
잠시 한가한 틈을 이유로 백두산 들꽃 기행을 하기로 마음 먹는다.

한참을 달려 백두산 천지로

이번 여행의 시작은 그저 고생 많이 해서 못다한 ‘다이어트’라도 할까 하는 생각이었다. 패키지 여행상품이었고, 역시 배를 이용했는데, 하지만 5박6일의 긴 여정은 백두산의 아름다운 들꽃 감상과 운좋게 천지를 맑은 시야에서 바라봤다는 만족감으로 채워질 수 없을 만큼 힘이 들었다. 아무리 좋은 풍광이라도, 기분에 따라 얼마나 크게 좌우되는지 다시 한번 느끼게 한 여행이다.
배는 대련(다롄)이라는 곳에 입성했는데, 대련이라는 곳은 한눈에 봐도 맑고, 잘 사는 도회지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역시 조선족 가이드가 차에 올랐고, 어설픈 상식으로 대련이라는 곳을 소개하고 있다. 조선족 특유의 말투가 배인 젊은 여자가이드는 “이곳은 복장산업이 발달됐고, 교통의 요지이며, 환경의 도시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나중에 들은 말로는 대련이라는 곳은 여순감옥, 안시성 등이 있고, 광장의 도시이며, 러시아, 일본인 지배를 받은 곳으로 아직도 타운을 이루고 있으며 머지 않아 ‘대련한인타운’도 형성된다는 것이다. 한국으로 치자면 ‘대전시’정도란다. 해양도시지만 산동성과 달리 날씨가 매우 맑다. 그냥 관광버스를 타고 무작정 백두산을 향해 간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다.
고속도로를 따라 근 5시간 이상을 달려가 만난 곳이 단동이다. 호텔국제구락부의 동해관(0415-617-5000)이라는 한식집에서 요기를 하고 또 달려간다.
길은 가도가도 끝이 없다. 목적지는 ‘통화’를 지나서 만나는 ‘백산’이라는 곳이다. 이번 여행길에 합류된 사람들은 평균연령이 60대 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대차이는 물론 문화적인 것들이 전혀 맞지 않은 사람들과의 긴 여행은 한마디로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첫날보다 날이 지날수록 신경은 날카로워져서 그 어떤 아름다운 풍치조차 행복스럽지 않았던 것을 미리 말해두고 싶다.
어쨌든 근 9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리고 달려서 도착한 길림성 백산시의 한인식당(경복궁(0439-3222591)도 기다리다 지쳤는지, 음식도 탐탁지 않다. 요녕성을 넘어서 길림성으로 넘어오는 시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길고 지루하기만 하다.
정말 한마디로 지독하게 큰 나라라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게 한다. 차창으로는 옥수수밭이 스쳐 지나가는 것만이 뇌리에 남아 있을 뿐이다. 어쨌든 자정에 가까웠던 것 같고, 시골마을이라고 할 수 있는 병관(0439-329-1900)에 아주 잠시 잠깐 눈을 부치고 나서 백두산을 향해 달려간다.
마침 토요일이라서 관광객들이 많아서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만들었다는 백두산 서파 삼문앞에서 셔틀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의 햇살은 따가웠다. 일찍 서둘렀음에도 셔틀을 기다리는 사람의 수는 길기만 하다.

들꽃천지속 서늘하고 해맑은 기운이

올 봄에 찾았던 코스와는 다르다. 백두산은 서파, 북파, 동파, 남파 등 네군데 코스가 있는데, 대표적인 곳은 서파와 북파다. 그리고 들꽃 기행은 으레 ‘송강하’ 서파코스를 택한다는 것이다.
천지를 중심으로 북파는 험준한 산세를 자랑하며 서파는 완만한 고산지대를 이루고 있는데, 주로 여름철 들꽃감상은 서파쪽으로 향한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오르는 대형버스는 한눈에 봐도 시설이 좋다. 그럴 수밖에 없을 듯하다. 워낙 가파른 길을 오르려면 차체가 좋아야 할 것이다.
어느 지점에 들꽃단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지만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그저 차창밖으로 군침을 질질 흘리는 이리가 될 수밖에. 차는 정상을 앞에 두고 멈추었고, 20여분정도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주차장 주변으로도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있다.
마치 노란 물감을 들인 듯하다. 몸이 편치않은 사람들은 왕복 5만원을 주고 이동해주는 가마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내 살아생전 한번은 백두산에 와보고 싶은 70대를 넘은 노인’들은 그저 가마가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길 이외에는 못 들어가게 공안들이 소리를 친다. 중국도 제법 이제 지켜야 하는 문화유산에 대한 의식이 트이는 듯하다. 날씨도 운좋게 맑다. 한여름인데도 더위가 없이 시원한 바람이 분다. 추울 정도는 아니어서 긴 옷을 준비하지 않을 만큼 쾌적한 날씨다.
정상을 향해 잇는 사람들의 물결이 춤을 춘다. 천지는 원없이 넓다. 한마디로 감격스럽다는 표현이외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여행길에 지쳐 심장 깊숙이 박힌 울혈 덩어리가 뭉쳐 있었지만 지금 이순간은 행복에 겨워야 한다.
단체로 움직이는 여행상품이니 사진촬영에만 신경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웬일인지 가슴 한켠이 싸하니 아파온다. 민족분쟁이니 그런 거창한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노천명님의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라는 싯구가 떠오르면서, 백두산 천지와 들꽃 기행에서도 그런 기분을 갖게 한다. 아름다움 뒤로 슬픈 기운이 감싸온다. 그 이유는 분명히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백두산 천지의 서늘한 기운, 해맑은 기운은 오랫동안 가슴 한켠속에 남아 슬픔 한자락을 내뿜어내고 있다.
바쁜 일정임에도 ‘금강대협곡’의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울창한 원시림을 따라 걷는 울창한 백두산 숲길에서 산 기운이 물씬 풍겨난다. 용암이 흘러간 자국과 세월이 빚어 놓은 거대한 금강대협곡이 나무 계단을 따라 이어지지는데, 정작 절반만 보고 끝을 맺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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