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20여년간 솔루션 업체에 근무하면서 미국, 호주, 이스라엘 등 많은 나라의 IT 업체들과 교류를 해왔다.
최근에는 사업차 중국 상하이를 방문했다. 마침 잠시 여유가 있어 비가 오는 날인데도 웨이탄 황포 강변 정크 여객선에 탔다. 선상에서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현실이 교차됐다.
한국인은 역동적이다. 우리들은 목적을 이루기위해서 중국을 향해 왔다. 사업가, 직원 등 각양각색의 한국인들이 중국을 기회의 땅으로 여긴다.
펄벅 여사의 소설 ‘대지’속에 나오는 당시의 중국이 현재에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황제와 군신 그리고 노예라는 관계 속에서 중국을 대하고 현대라는 모순된 수레바퀴를 돌린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인들은 또 다른 한국을 칭타오와 소주 센양에 이식시킨다.
중국에서는 유독 강조되는 말이 있다. ‘관시’... 관시는 참으로 어려운 말이다. 최고위층에서부터 택시 운전기사까지 ‘마오쩌뚱’과 관시가 있다고 한다. 물론 관시는 사업의 승패에 절대적이다. 관시는 우리나라 말로 관계이다. “관계는 목적을 이뤄내기 위한 인관관계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겸허하고 성실한 자세만이 관시를 최적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인의 사고는 한마디로 실사구시에서 찾을 수 있다. 남성은 여성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지도 않다. 황제와 같은 권력을 누린 여성들의 위력을 보라. 전한의 여태후, 당의 측천무후, 청의 서태후 이외 효장문황후 등. 이 같은 걸출한 여걸들의 피를 이어받은 많은 여성 사업가들이 중국 기업을 이끌어간다. 그 배경으로 공산주의 체제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각종 사회적 의무와 일에서 제외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한편에서는 여성을 노예로 생각하고 고대의 관습(전족, 기타 처첩 제도)을 아직도 향유하는 일부 신흥 재벌과 권력층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나 절대적인 건설지향주의 국가로 다시 태동하는 중국은 활기차다. 먼지와 황사 등 각종 공해물질로 뒤덮인 상하이와 여타 도시에서 그들의 삶의 강인함은 그대로 묻어난다. 길거리 악취와 먼지 속에서도 음식을 먹으며 끝없이 떠들어대는 그들의 생존은 ‘삶’ 그 자체를 느끼게 한다.
이 곳은 최첨단과 16세기가 현존하는 나라다. 특히 상하이는 그런면에서 매우 인상적이다. 중국인들은 끝없는 경주를 유지해 왔다. 그들은 제동장치 없는 자동차처럼 절대가치를 ‘궁시’즉 돈벌이에 둔다. 모든 것의 절대가치를 오직 부의 축적에 뒀다. 재화가 사업의 승패를 가름 짓는 기준이다. 한국인들도 그 한가운데에 있다.
‘대동북아공영’, ‘백두산 주권’, ‘고구려 유적지 수몰사건’, ‘조선족 문제·고려인 통합’, ‘단동의 탈북자’등 언론에서만 접하던 한국인들의 문제를 눈으로 직접 보고 느낀 부분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찹찹할 정도다.
반면, 아직도 중국은 사업의 거점의 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우리는 우선 중국을 알아야 한다. 중국인의 사고방식과 그들의 문화를 알아야만 한다. 한국적인 주먹구구식의 운영방식은 그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이미 천년 전부터 실사구시에 젖어있는 그들에게는 철저한 경영만이 인정될 뿐이다. 우리 기업인들은 그들의 관시에서 이겨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되는 것도 없고 안돼는 것도 없는 나라”, “궁시 파 차이, 돈 많이 버세요” 등은 참으로 재미있는 부분이다. “
중국에서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권중호
(주)이엠씨에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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