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영화는 당시 모든 상을 휩쓸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워낙 장면 장면이 매혹적이라서 그 영화에 대한 관심이 깊었는데,
실제로 화면은 정지상태처럼 롱 샷처리를 해서 지리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장면만은 끔찍하게 아름다웠는데,
그 촬영지는 바로 임실 덕치마을 근처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천담천과 구담천 주변을 헤매돌면서 방앗간 등을 찾아 헤맸지만 정작 원하는 장소는 찾지 못하고 말았다. 벌써 몇 년의 세월이 흐른 것인가. 세월한번 빠르다 할 지경인데, 이제야 그 장소를 찾아냈다.
그리고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맨 뒤 자막에 순창 섬진강변이라는 자막을 보면서도 어딘가 궁금해 했었다.
복수는 나의 것은 화면 장면이 빼어난 것은 아니었고, 유괴범역을 맡았던 신하균과 송강호 등이 출연한 것으로 기억된다. 신장을 팔아 넘기는 장면은 욕지기가 날 정도였지만, 맨 뒷부분의 야외 강변 씬인 동진(송강호 역)이 류(신하균 역)의 아킬레스건을 자르며 복수하는 장면이 촬영됐던 곳이다. 별로 아름답지 않은 영화속 장면을 굳이 기억할 필요는 없을 테지만, 촬영한 곳이 순창이라는 것이 신기했다.
어쨌든 그 장소를 이번 순창여행에서 알게 됐다. 도대체 이 섬진강 물줄기는 얼마나 길고, 어떻게 흘러가는 것인가. 섬진강은 전라북도와 전라남도의 동부지역을 남류해 경상남도 하동군과 전라남도 광양시 경계에서 남해로 흘러드는 강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길이 225㎞이고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팔공산(1천151m)의 북쪽 1천80m 지점 서쪽 계곡에서 발원해 북서쪽으로 흐르다가 정읍시와 임실군의 경계에 이르러 갈담저수지(일명 옥정호)를 이룬다.
순창군, 곡성군, 구례군을 남동쪽으로 흐르며 하동군 금성면과 광양시 진월면 경계에서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이름도 바뀐다. 이 강의 상류에서 갈담저수지까지를 오원천, 곡성군 고달면과 오곡면 부근을 순자강이라 부른다.
순창군은 오수천이라고 하고, 장구목도 섬진강 지류중 하나이며 상류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천담마을을 지나 ‘장구목(순창군 동계면, 장군목이라고 표기되어 있다)’이라는 팻말따라 차 한대가 겨우 지나칠 수 있는 시멘트 도로를 따라 한참 달려가면 장구목 가든이라는 곳을 만난다. 이곳이 바로 앞서 말한 영화 촬영지인데, 가든 팻말에는 ‘춘향뎐’이라는 영화와 허준 드라마 촬영지라는 것들이 적혀 있다.
장구목은 옛날에 지역주민들이 왕래하던 큰 길목이었으며, 원래 이름은 그 주변에 장군의 명당이 있어서 ‘장군목’으로 불려졌는데, ‘장구목’으로 이름이 변형돼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혹자는 물 지류가 장구처럼 좁아진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도 한다.
우선 이곳에 펼쳐지는 바위들이 매우 독특하다. 영월의 요선정과 비슷한 형태지만 모양은 조금 많이 다르다. ‘요강바위’ 중간에는 사람 하나정도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구멍이 나 있는데, 오랜 물살이 회오리를 친 듯 물결무늬가 그대로 남아 있다. 맨 밑에 얄팍하게 물이 담겨져 있는데, 구멍 속의 물은 가뭄에도 절대 마르지 않는다고도 한다.
무엇보다 이 요강바위는 서울 구경을 다녀온 바위로 유명하다. 장구목이 아직 세상에 드러나기 이전 도시인들이 찾아와 마을 사람들에게 넓은 신작로를 내주겠다며 느닷없는 인심을 풀었다.
요강바위가 장구목에서 사라졌던 1992년까지만 해도 장구목은 작은 승용차 한 대 들어오지 못하는 오지였다. 넓혀진 길은 요강바위를 뽑아들 수 있는 중장비를 들여오는 통로였다. 어느날 갑자기 요강바위는 사라졌고, 다시 물가의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3년이라는 시간을 필요로 했다. 도둑들은 이 바위를 경기도 광주군의 야산에 숨겨 놓고 살 사람을 물색하고 있었다.
이 바위 한 덩어리의 값이 10억원을 넘었다. 어떤 주민이 이 바위가 섬진강 바위임을 알아채고 경찰에 신고했단다. 도둑은 붙잡혔고, 요강바위는 장물로 분류돼 전주지법 남원지청의 마당으로 운반됐다. 남원에서 이 물가까지 바위를 옮기는데 중장비 사용료 500만원이 들었다. 바위를 장구목으로 옮겨오는 데 필요한 돈 500만원은 모두 마을사람들이 추렴했다.
이 사건으로 장구목은 뜻하지 않게 유명세를 치렀으며 돌을 찾는 주민들의 심정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호기심 때문에 장구목을 찾은 사람들이 바위에 새겨진 물결의 아름다움을 소문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쨌든 강변 주변으로 펼쳐지는 기암이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부자가 찾아와 낚시를 즐기는 모습이나 멀리 눈길을 돌려 산길을 휘돌아가는 물길을 보는 눈빛이 부시다.
이곳에서는 앞서 말한 아름다운 시절에서 강가 빨랫줄에 미군들의 옷을 널어 놓은 장면이 촬영됐다. 전봇대가 없는 곳을 찾다가 장구목까지 흘러 들었다 한다. 지금이야 시멘트 길에 전봇대도 빽빽하지만 90년대 중반까지 장구목은 숨겨진 속살 같은 신비의 공간이었던 셈이다. 지금은 순창군에서 이곳에서 산책로를 만들 예정에 있다.

■자가운전 : 가장 빠른 방법은 임실 진매마을을 통해 천담마을을 거쳐 오는 것이다. 순창에서 오면 길이 많이 헷갈린다. 그래도 순창에서 남원가는 24번 국도를 따라가다 성계 삼거리-내월·인계방면으로 좌회전-다리를 두 개 건너서 2∼3분 정도 가다보면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장구목이라고 씌인 벽이 있다-장구목 방향으로 틀어 들어가면 10미터 지점의 갈림길에서 우회전-5분 정도 가면 나오는 도왕마을과 입석마을 갈림길에서 입석마을-3분 정도 더 가면 구미교-구미교를 건너 2분 정도 직진하면 장구목.
■맛집과 숙박 : 장구목 가든(063-653-3988, 653-3917) 하나 뿐이다. 메기, 쏘가리, 빠가 매운탕, 닭요리 등을 정갈한 밑반찬들과 함께 먹을 수 있으며 민박도 가능하다.
■주변관광지 : 불암사지 마애불, 회문산 자연 휴양림, 순창 전통 고추장 민속촌에서 체험 즐기기, 강천사 맨발 트레킹, 재래장터(1일, 6일) 등을 연계하면 된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