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책은 인쇄된 낱장의 종이를 순서대로 추려서 책으로 만드는 것으로 책의 마무리 공정이라 할 수 있는 산업이다.
필자가 원고를 쓰고, 출판사에서 편집을 하고, 인쇄과정을 거쳐도 이는 아직 책이라 부를 수 없는 낱장의 종이에 불과하다.
■제책은 출판의 ‘완성’= 인쇄된 종이를 묶는 제책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한권의 책이 탄생하는 것이다. 지난해 국내에서 발간된 1억여권의 책도 모두 제책과정을 거쳐 독자들에게 선보였다.
제책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책과정을 통해 책이 나오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납으로 된 판에 문자를 조각하고 이 판들을 몇 장씩 고리에 끼워 묶어서 판이 흩어지는 것을 방지했다. 이것이 서류 등을 한 뭉치로 묶게 된 시초가 되었다.
이후 글씨를 쓰는 재료는 파피루스(papyrus)에서 양피지(羊皮紙) 등 동물의 가죽이 쓰였으며, 중국에서 식물성 섬유로 종이를 만들기 시작한 후 여러 가지 종류의 종이가 나왔으며 15세기에는 기계에 의한 제지법이 이뤄졌다.
■제책양식 다양하게 발전= 제책양식도 종이와 같은 피인쇄재료의 개발과 함께 발전됐다.
제책은 여러 종류로 분류되나, 크게 나눠 간이제책· 재래식 제책·양장제책으로 분류된다.
간이제책은 용지를 쌓고 옆의 한 면에만 풀칠을 해서 뭉치를 만드는 제책방식이며, 재래식 제책이란 옛날 고서 등의 제책 방식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제책은 일반적으로 양장제책 방식을 말한다. 이 양장제책도 종류가 다양하며, 양장·무선·중철 등이 있다.
양장제책은 책등을 수용성 풀을 묻혀 말린 다음 3면을 재단하고 책등에 아교를 묻혀 천, 겉둥지, 해드밴드 등의 보조재료로 책등을 더욱 견고하게 하고 표지를 싸는 방법으로 표지를 무선, 중철과 달리 함지, 가죽, 비닐 등으로 사용한다.
무선제책은 책을 꿰메는데 있어 철사와 실이 들어가지 않은 선이 없는 풀로만 책을 묶는 것으로 책등을 갈아낸 다음 무선용 접착제로 등을 묻혀 표지를 싸는 방법이다.
중철제책은 광고, 사보, 주간지, 팜플렛 같은 간단한 인쇄물로 보존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경우에 하는 제책 방법으로 책등을 철심으로 엮는다
■국내 업체 대부분 영세= 국내 제책업체는 현재 전국적으로 1천여 곳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 규모는 대형 업체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매우 영세하고 가족형 기업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국내 제책기술 수준은 80년대에 비해 크게 향상됐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공정의 대부분이 자동화돼 제책과정에서의 불량률을 크게 줄여 파본이 거의 나오지 않는 등 선진국의 80% 이상 수준까지 따라잡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제책업종은 특성상 출판시장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내 출판시장은 IMF 외환위기 이후 크게 위축된 상태. 여기에 인터넷의 급속한 발달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책을 보지 않는 경향이 확산되면서 더욱 타격을 입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발간된 책은 모두 1억1천900만권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지난 97년의 2억1천여만권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어든 수치다.
■출판시장 부진에 큰 영향= 여기에 경기부진과 맞물리면서 제책업계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편이다.
이와 함께 출판시장이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으로 급격히 선회하면서 그동안 대량생산에 적합한 기계를 들여놓고 사용하던 제책업계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효과를 내고 있다.
특히 제책업계는 기존의 수작업에서 일부 공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동화돼 있어 이런 출판시장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기가 힘든 형편이다.
인건비가 크게 오르면서 많은 업체들이 자동화에 나서고 기계 역시 고성능화돼 대량생산이 가능하지만 시장 변화로 기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
한 제책업체 대표는 “하루에 한 종류의 책만 제책하면 10만권까지 작업이 가능하지만 여러 종류의 책을 제책하다보니 하루에 3만~5만권 정도밖에 소화를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출판시장이 부진에 빠지면서 제책업계의 생산능력이 출판 수요를 오히려 초과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인쇄업계 제책분야 진출= 한편 최근에는 인쇄업체들이 제책을 겸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제책시설이 없는 일부 인쇄업체들이 제책물량까지 수주하고서 이를 다시 제책업체에 재하청을 주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
전덕수 이사장은 “제책업계는 인쇄업계에 비해 힘이 미약하기 때문에 뾰족한 수가 없다”면서 “공공구매 물품등록시 제책과 인쇄를 명확히 구분하고 생산시설증명을 확실히 하는 등의 방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국내 출판 문화 발전을 위해서는 출판·인쇄·제책 등 관련 분야가 함께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 조합의 입장이다.
■출판문화 발전의 동반자로= 전 이사장은 “인쇄와 제책의 역할 구분은 명확히 이뤄져야 하지만 인쇄, 출판 등 관련 업계가 공동으로 협력해야 출판문화의 발전과 공존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제책은 출판과 인쇄의 단순한 하부구조로 여겨져 왔지만 이제는 출판문화를 함께 발전시켜나가는 동등한 동반자로서의 위상이 재정립되야 한다는 것.
특히 최근 물류비 감소와 훼손 방지 등을 위해 인쇄와 제책의 일관공정이 늘어나는 추세에서 이런 협력관계 조성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의 생각이다.
전 이사장은 “지난 73년 대한제책공업협동조합이란 명칭으로 설립된 조합은 단체수의계약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등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다”면서 “그래도 조합원들의 협력으로 부유하지는 않지만 자생력을 키울 수 있었다”고 밝혔다.
34년의 짧지 않은 역사를 갖고 있는 조합은 제책산업 발전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제책박물관’ 설립의 꿈을 갖고 있다.
전 이사장은 “일반인들은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잘 모르고 있다”면서 “출판·인쇄분야 보다 제책에 대한 인지도가 낮다”고 지적하고 “숙원사업인 조합회관·제책박물관 건립 등을 통해 제책의 중요성을 알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