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5년 설립된 한국체인사업협동조합은 정부가 유통산업발전법에 의거해 지정한 90개의 지정체인사업자들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지정체인사업자는 중소유통업조직화, 협업화 사업을 통해서 유통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지정한 사업주체로 일반인들에게는 흔히 체인본사(본부)로 알려져 있다.
이들 체인본사는 가맹점으로 가입한 일반 소매점포에 생필품 및 주류를 공급하고, 각 가맹점은 체인본사에서 공급받은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것이다.
■국내 최대의 생필품 유통망 자랑= 조합 관계자는 “쉽게 말해 소매점에서 판매하는 상품을 공급하는 도매물류 사업자로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조합에 가입된 90개 체인사업자는 평균 500~600곳 정도의 가맹 소매점을 거느리고 있다. 전국적으로 따지면 약 5만개의 소매점이 체인사업자들에게서 물품을 공급받고 있다.
조합은 국내 유통분야에서 최대의 조직망을 자랑하고 있다.
조합에 가입한 체인사업자의 가맹 소매점 역시 넓은 의미로 조합의 회원사로 볼 수 있으며 전국의 소매유통상점이 약 10만개로 추산되고 있으니 그중의 절반 가까이가 조합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셈이다.
각 체인사업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3천여명의 영업사원과 900여대의 배송차량 역시 전국 최대 규모.
■대형 유통점 공세에 큰 타격= 하지만 지난 96년 유통시장 개방 이후 대형 유통점들이 도심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체인사업자와 가맹 소매점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
중소기업중앙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관련 기관에 따르면 1996년 이후 대형할인점은 전국적으로 28개에서 275개로 247개가 증가했다.
이에 반해 4인 이하 영세 소매업체는 1996년 70여만개에서 2004년 62만여개로 줄어드는 등 매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또 대형 유통점 1개가 들어서면 주변의 소형점포 4천여 곳이 타격을 받는 등 주변상권이 초토화된다는 연구자료도 있다.
최 이사장은 “흔히 동네 수퍼, 구멍가게로 불리는 소형 유통점들은 일반인들에게 낙후되고 지저분한 곳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대형 유통점의 등장 이후 생존 위기에 내몰린 영세 소상공인들도 기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영세 독립점포들의 개별적인 자구 노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체인사업조합 등 업종별 단체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개별 점포가 가지는 한계를 협동조합 등을 통해 하나로 모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동네수퍼 힘모아 ‘햇빛촌’ 출범= 조합이 지난해부터 추진해 오고 있는 공동 브랜드 ‘햇빛촌’ 사업은 이런 관점에서 여러 가지 큰 의미를 갖고 있다.
개별 점포나 이들이 물품을 공급받는 체인사업자들의 가격협상력은 대형 유통점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
“5만개의 점포에서 하나씩만 팔아도 5만개를 팔 수 있습니다. 햇빛촌이라는 이름으로 5만개 소매점포가 하나로 뭉치면 그 구매력은 대형 유통점 못지않게 됩니다. 당연히 가격협상력 또한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조합 김승훈 사업본부장은 햇빛촌과 조합, 가맹점포가 갖고 있는 잠재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900여대의 배송차량은 이미 햇빛촌 브랜드가 부각되도록 모두 새로 도색을 했고 가맹 점포의 간판 역시 수도권을 중심으로 교체되고 있다. 전국 골목골목에 자리잡고 있는 동네 수퍼와 구멍가게들이 햇빛촌이라는 새옷을 입게 되는 것이다.
■우수한 PB상품 저렴한 가격에= 조합은 이런 잠재력을 바탕으로 자체브랜드(PB) 상품도 출시할 계획이다. 현재 커피믹스와 쌀국수 2종류의 제품이 햇빛촌 브랜드를 달고 출시됐다.
이런 PB 상품들은 점포 진열대에 따로 ‘PB존’을 만들어 소비자들을 공략할 계획이다. 특히 조합은 햇빛촌 PB 상품을 식음료 등 생필품 외에도 중소기업이 생산한 우수한 제품으로 확대할 계획이어서 판로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제조업체들에게 도움이 될 전망이다.
김 본부장은 “국내 유통구조가 왜곡되면서 중소제조업체는 대형 유통점말고는 판로가 막혀있는 상황”이라며 “그러나 대형 유통점은 점포에 물건을 들여놓을 때 무거운 입점비를 요구하고, 전단 제작비용, 각종 행사비 분담을 강요하는 등 횡포가 심각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조합은 현재 200개 업체와 PB상품 출시를 협의하고 있으며 제품군별로 1~2개씩을 선정, 3개월 안에 15개 정도의 제품을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다.
또 햇빛촌 사업이 자리를 잡으면 농어민·지방자치단체와 협약을 맺어 계약재배·생산한 농수산물을 각 가맹점포에서 판매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다.
■적극적 정부 지원 아쉬워= 아직 넘어야 할 산도 많이 남아 있다.
조합 주도로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대형 유통점의 공세에 지칠대로 지쳐있던 조합원들을 설득해 움직이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간판을 새로 교체하고 차량을 도색하는데 드는 비용도 큰 부담이었다.
회원사들도 조합의 설득에 이대로 가다가는 더 큰 위기에 내몰리게 된다는 생각으로 햇빛촌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가맹 점포들 역시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업계와 협동조합의 자구 노력에 정부가 무관심한 것도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또 정부의 담당부서와 담당자가 자주 바뀌는 바람에 사업 추진이 지연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최 이사장은 “무엇보다도 영세 점포를 조직화하는 것이 급선무”라면서 “이들을 IT와 접목시켜 제대로 된 판매와 재고관리 시스템 등 인프라를 구축해주는 것은 정부의 몫”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햇빛촌을 비롯한 민간주도의 사업의 경우 시범점포 설치를 정부에서 지원하고 이에 대한 성공사례를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고 최 이사장은 지적했다.
또 그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규모 공동물류단지의 경우 소량 다품목을 공급받아야 하는 지역밀착형 소규모 점포의 현실과는 다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고 덧붙였다.
최 이사장은 “그동안 서민들의 삶과 함께 해온 동네 소규모 유통점이 활성화되도록 지원해 주는 것이 중소상인과 기업을 살려 경제활성화를 이뤄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며 “중소유통이 살아나면 최근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양극화도 일정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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